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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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08.0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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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그대가 가증스럽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내 친구 중에는 깡패 출신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학창시절 때 종종 친구들에게서 10원, 20원을 갈취하기도 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친구나 후배들에게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학교 앞 구멍가게 식당 가락국수 한 그릇이 10원이었으니 어린 학생들 입장에서는 10원의 가치가 적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또래 친구들은 그 어마어마한(?) 용돈을 빼앗기고도 끽소리를 못했다. 말을 꺼냈다가는, 그 녀석은 선생님께 꾸중 한 번 들으면 그만이었지만, 그 아이는 하굣길 골목길에서 또 한 번 그 녀석에게 복수를 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지금 같으면 그런 폭력이 용납되지 않을 것 같지만, 지금도 그런 폭력은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그게 최신판 학교에서의 왕따이고, 개별적 이지메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친구는 내게는 잘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 녀석의 특별과외교사(?)였으니 잘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일제고사를 한 번 치르는 것 가지고도 시험을 봐야 한다거나 말아야 한다거나 찬반 양쪽의 시비가 대단하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은 학교에서는 매월 시험을 봤고, 그것마저 부족하여 모의고사라는 명목의 시험도 종종 보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시험을 자주 본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것은 당연한 평가과정으로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방학 때를 빼고 서른 번이 넘는 시험을 보았으니 보기도 많이 보았다.  


당시 반에서 공부를 제법 했던 터라, 시험문제로 나올 만한 문제는 7-80퍼센트 정도는 찍을 수 있었기에 시험보기 하루 전날 그 녀석을 불러 앉혀 놓고, 이 문제가 나오면 이게 정답이고, 저 문제가 나오면 저게 정답이니 그냥 그것만 열심히 기억해 두라고 훈수 겸 특별과외를 시키고는 했었다. 평소에 공부를 전혀 하지 않던 그 녀석도 내 과외(?) 덕분이었던지 시험 때마다 70점 가까운 점수를 맞았고, 그 녀석 말에 의하면 어찌 네가 찍어준 문제가 그리 꼭 나오느냐는 것이었고, 그 비결을 알려달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한 반에 70명 가까운 친구들이 우글거리던 그 시절, 70점 가까운 점수는 적어도 반에서 30등 안쪽의 점수였으니, 그 녀석은 투자에 대한 반사이익이 대단했던 셈이다. 요즘처럼 점수상향평준화가 되어 있지 않던 그 시절, 90점 정도가 반에서 1등을 했으니, 그 녀석은 시험문제의 상당수를 찍어주는(?) 내가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지만, 그게 그 녀석이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는 시간에 책상머리에 열심히 앉아 있던 결과였음을 지금은 알 수 있으려나.


특별과외 도중 그 녀석에게 아이들 그만 괴롭히고 공부 열심히 하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종종 하고는 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난폭하고 사납기만 하던 그 녀석, 학교에서 말썽꾸러기, 사고뭉치로 소문난 그 녀석이 양처럼 온순해져서는 내 말을 묵묵히 들으며 “그래야 하는데”라며 말을 흐리던 기억이 새롭다.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유일한 모범생(?)인 내가 그 녀석은 몹시도 고마웠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녀석이 내게 한 말은 “내가 너를 지켜 줄께”였다. 아니 연애하면서 여자 친구를 향한 사랑의 고백도 아니고, 자기가 나를 지켜주겠다니? 하지만 그게 그 녀석 방식의 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던 것이다. 주먹을 잘 썼을 뿐 단순했던 그 녀석은 공부 잘 하는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해코지(?) 당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나에 대한 우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 녀석은 학교를 중퇴하고 말았지만, 그 녀석이 내게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폭력도 힘이야”라는 그 말이......


그 녀석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 녀석을 동화시켜 보려던 내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모두 경원시하던 그 친구를 끝까지 껴안고 공부도 가르치며 좋은 말도 하면서 가까이 지냈던 경험을 통해 내가 배웠던 것이 하나 있다면, 폭력보다는 따뜻한 말이 더 무서운 힘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몇 분의 선생님이, 아니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도 그 녀석 편을 들면서 따뜻하게 이해하고 감싸주었더라면 그 친구가 학교를 제대로 마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 친구는 사회에 나가 거칠게 생활하더니 어느 순간 마음을 잡고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당시에 공부 잘 하던 모범생 친구들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잘 사는 모습을 결과로 보여주고 있으니,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친구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에 한이 맺혀 있었는지, 자기 자식들에 대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 8월 5일,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은 평양을 전격 방문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3시간 동안의 면담을 통해, 국경선을 침범하여 간첩활동을 한 죄로 140일이 넘도록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 여기자 유나 리와 로라 링을 석방시켰다. 그는 개선장군처럼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세비행기에 두 명의 여기자를 태우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빌 클린턴이 그녀들을 석방시키는데 들어간 비용은 비행기를 임차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 정도 아니었을까?


같은 날, 대한민국 평택 땅에서는 전쟁 아닌 전쟁, 폭력 대 폭력이 난무했다. 집단해고에 맞서 장기 농성 중인 500여 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들의 장기 농성을 진압하기 위한 사용자측의 용역원들과 경찰 병력이 사생결단이라도 내려는 듯 죽기 살기로 쫓고 쫓기는 처참한 폭력이 난무하고 있었다. 벌써 몇 사람의 노동자들이 공장 지붕에서 땅으로 추락하여 생사를 오가고 있고, 또 다시 어떠한 참사가 추가로 발생할지 예측불허다.


여기저기서 화염이 난무하고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최루액이, 물대포가 난무하는 가운데 사제총에서 쏟아져 나온 볼트와 나트가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벌써 장기 파업에 따른 수천억 원의 직접 재산손실이 났다. 거기에 쌍용자동차 브랜드 이미지 추락에 따른 보이지 않는 손실을 더하면 그 피해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진압경찰들의 유지관리비는 그 얼마이겠으며, 관련된 사람들이 스트레스 받아 병원에서 치료받는 비용은 그 얼마이겠는가?


쌍용자동차 사용자측에서 약 2000여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겠다는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는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쌍용자동차를 넘겨준 일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스스로 자생하지 못한 쌍용자동차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것이다. 진압경찰들의 유지관리비가 그 얼마일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을 5,000만 원 정도라고 본다면, 2,000명의 해고대상 근로자들에게 연간 지급되는 임금 총액은 1,000억 원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지금 파업으로 본 피해액수가 2,000억 원이 넘는다는 발표를 볼 때, 파업이 없었더라면 2년간 2,000명의 근로자들을 해고하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는 돈이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일을 시키지 않고 그 돈이 날아가 버린 것이 현명한가, 아니면 일을 시키고 그 돈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가? 이런 바보 셈법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들을 평화롭게 일을 시키고 2,000억 원의 돈을 임금으로 지급했더라면, 그 2,000명이 만들어내는 생산부가가치는 얼마일 것이며, 쌍용자동차의 대외브랜드 상승가치는 또 얼마일 것이며, 평택시에 공급될 소비자금을 통한 지역경제발전은 얼마일 것이며, 쌍용자동차 가족과 우리 국민이 누릴 행복가치는 또 그 얼마이겠는가?  정리해고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근로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보상이 이루어진 뒤 정리해고가 이루어졌더라면 저렇게 극렬한 정리해고투쟁이 벌어졌을까? 도대체 경찰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겠다는 사람을 전쟁터에서 적을 사살하듯 죽이려고 저렇게 야단일까?


빌 클린턴의 여유로운 말과 미소 속으로 쌍용자동차의 화염과 폭력이 클로즈 업 된다. 권력이라는 폭력을 가진 자들이여, 폭력으로 무엇을 해결했는가? 여전히 폭력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가증스럽다. 나는 폭력을 맹신하는 당신이 가증스럽다. 아 어쩌랴, 클린턴의 저 미소 뒤에도 어마어마한 국가폭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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