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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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 신평
  • 승인 2009.07.3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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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평(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중국 인민대 객좌교수)

 

아스라이 먼 길이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진 길이었다. 그냥 길 따라 걸었다. 동행자도 간혹 있었으나 언뜻 보면 혼자이었다. 세월의 아쉬움 혹은 분노 혹은 절망,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때로는 쌓였다가도 길을 가다보면 모두 사라졌다. 무작정 걸은 길에 시간의 구획도 잊어버렸는데, 산 너머로 불그레한 황혼이 나타난다. 들판은 차츰 축축한 밤 냄새가 난다. 어디선가 컹컹 짐승 짖는 소리도 난다. 아, 밤에 달빛이라도 조금 비추어졌으면 좋으련만. 정처 없이 걸어오느라 행색은 초라하고, 이제 닥칠 밤의 어두움이 나를 짓누르지 않을까 참으로 무섭다.

 

연구실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가다듬으니 대충 이렇게 삶을 관통하는 사고의 궤적이 이루어진다. 몇 년 전에  상하이 루쉰 기념관에서 사온 조그마한 루쉰 동상이 가만히 책상 한 구석에 있다. 그의 고집스런 얼굴표정은 나를 피한 채 연구실 창문 밖을 쳐다본다. 루쉰과는 차원이 틀리겠으나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용납되기 힘들었던 내 고집이었다.

 

필자는 원래 법학이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다 알겠으나 그때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개인의 적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성적에 따라 법과대학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법학 책을 펴놓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도저히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서야 겨우 법서를 읽을 수 있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우습게도 생각되겠으나, 정작 본인에게는 미치도록 괴로운 일이었다. 제 멋대로 정의(定議)한 정의(正義), 그에 따라 철저하게 기득권 질서에 봉사하도록 임무 지워진 법학, 이것이 어린 법학도인 내 머리에 박혀진 법학에 관한 고정관념이었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노쇠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처절한 사투 끝에 겨우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포커에 미친 듯이 몰두하여, 어느 덧 상대방의 패가 거의 보이는 타짜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이런 경위를 겪어 여하튼 법관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여느 법관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 연수 후 발간한 책이나 다른 기고문에서 법원현실을 냉정하게 비판한 것이 결국 큰 물의를 빚으며 법관직을 떠나게 되었다. 변호사 문을 열어놓으니 한 달에 사건을 수임한 것이 고작 착수금 200만원의 사건 한 건뿐이었다. 처자식들을 생각하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몸을 뒤척이며, 내가 판사 시절에 잘못된 판결을 내려 그 죄를 받는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운이 트여 차츰 변호사를 잘 하게 되고, 농사도 지으며 한 세상 더 원 없이 마칠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살벌한 법조계의 한 틈에 끼어 억지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완수하는 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다.

 

변호사에서 다시 교수로 직업을 바꾸었다. 대학에 들어오니 편했다. 책 속에 묻혀 지내는 게 그리도 행복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듯이 생각되었다. 적지 않은 연구결과물로 산출했다. 하지만 교수들 간에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파벌싸움의 여파는 내게로 밀려왔다.  현실부적응자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연구실 독방에 갇혀 지내긴 해도 이상하게 그 싸움에 초연하기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법관에서 변호사로, 다시 대학교수로 변신을 거듭하며 좋은 것 다해보았다는 인상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내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실패를 거듭한 인생이었다. 어디에도 마음을 온전히 둘 수 없었다. 무엇 하나 두드러지게 남긴 것도 없다. 세월은 지나 어느 새 밤으로 접어드는 인생의 길, 기력은 빠지고 길은 잘 안보이고 무섭고 두렵기만 한다. 이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꿈꾸는 청년들이여! 부디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아 보람된 인생을 살길 바란다. 그런 바람을 담아 이 글을 썼으니, 내 말이 허황하게 들리는 사람은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그냥 흘러버려도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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