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어떤 하루-“2009. 6. 9.”
상태바
똘똘이의 어떤 하루-“2009. 6. 9.”
  • 법률저널
  • 승인 2009.07.24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학무 39기 사법연수생 hmkim@cyworld.com
  

검찰시보 생활은 지도검사님의 배려 덕에 그리 바쁘지 않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방 분위기도 9시 출근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6시에 퇴근하는 분위기였고(검찰시보의 경우 업무량이 많기 때문에 심한 경우 거의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검사님께서도 특별히 일을 많이 주지는 않으셨기 때문에 다른 시보들에 비해 여유롭게 검찰시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9. 6. 9.은 시보들 중에서도, 아니 제 인생에서도 제일 바쁘고 기억에 남는 하루를 보낸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음 회까지는 2009. 6. 9.에 있었던 일들을 2회에 걸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보름 전에 이미 공판실로부터 증인신문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꼼짝없이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법정에 잡혀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월요일에 출근을 해보니 주말 사이 살인사건이 발생해 있었습니다. 범행 장소는 서울이었지만 피의자가 제가 시보로 근무하던 청의 관할에 있어 저희 청으로 이송되어 온 것입니다. 지역신문에는 이미 보도가 된 사건으로 친구 사이인 피의자와 피해자가 말다툼을 하던 중 살인까지 이르게 되었고, 겁이 난 피의자는 이를 은닉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사체를 토막 내어 유기한 사안이었습니다. 제가 있던 검사실이 강력전담이라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이 사건으로 저희 방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한 10여분이 지났을까요, 부장님으로부터 모든 시보들은 교육 목적상 부검에 직접 참관한다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멀쩡한 사체를 부검해도 무서울 지경에 토막 난 사체를 부검하다니...평소 같으면 적극적으로 임했겠지만 (사실 적극적으로 지원하긴 했습니다) 막상 토막 난 시신을 보러간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무서운 마음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국과수는 태어나서 처음 가보지만 생각보다 멋진 곳은 아니었습니다. 수도권의 모든 살인사건 부검과 교통사고의 조사 등을 도맡아 하면서도 열악한 환경에 몇 명 되지 않는 부검의들이 그 많은 사건을 처리한다고 하니 정말 그들의 사명감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국과수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장례식장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조도 병원처럼 되어있었고 장례식장 앞에 상주나 손님들이 담배를 피우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듯이 부검이 이루어지는 건물 앞에도 담당 형사들이 담배를 피우며 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상주가 누구인지 장례식장 입구에 모니터로 안내를 하는 것처럼 부검장의 로비에도 모니터를 통해서 오늘의 부검 일정이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시보들을 인솔하신 검사님께서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를 설명해주셨고, 살인사건에 있어서 부검이 필요한 이유 등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검사님은 부검장에 들어갈 경우 사체의 냄새 때문에 괴로울 수 있는데, 굳이 얼굴을 찡그린다거나 마스크 위로 자신의 손을 이용하여 코를 막는 등 부검의나 부검을 직접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검장에 직접 들어갈 시보들의 지원을 받으셨는데 9명의 시보 중에 저를 포함하여 3명의 시보가 자원하였고, 저희들은 부검장에 직접 들어가서 진행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검사님과 나머지 시보들은 부검장 옆에 있는 상황실에서 카메라를 통해 부검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부검가운과 마스크를 쓰고 부검장에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깨끗한 부검장에 놀랐는데, (이것도 사실은 몇 년 전에 예산을 지원받아 대대적인 정비 공사를 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환경을 구비할 수 있었을 뿐이지 지금도 지방의 경우에는 일반 대형 병원에서 부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환기시설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많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님께서 왜 굳이 그런 설명을 하셨는지 부검장에 입실하자마자 제 코로 단 1초도 지나지 않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그대로 제 코에 전달되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한 달도 더 지난 그 때의 장면과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참관했던 부검을 담당하시던 분은 여성 부검의였는데, 마치 영화 “와일드 키드”의 한채영을 연상케 하는 부검의의 미모에 두 번 놀랐습니다. 저런 미모의 여의사가 왜 이렇게 험한 일을 하실까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나중에 부검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그분이 보여준 프로의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로 존경심도 느껴졌습니다.

 

부검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력들이 투입되었습니다. 부검을 하는 데는 부검의 한명과 5명 정도의 업무보조 요원들이 있었는데 어떤 분은 부검의를 도와 시체를 직접 자르거나 절단하고, 어떤 분은 사진을 전담으로 해서 부검감정서에 첨부할 사진만을 찍는 분도 계셨고, 또 어떤 분은 마무리로 사체를 봉합하는 일을 주로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부검은 매뉴얼에 따라 부검의의 집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는데, 경찰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와 사체의 상태를 비교해가면서 하나하나 사인을 찾아갔습니다. 마치 미국 드라마 CSI의 한 장면을 연상하시면 될 듯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제 코도 부검장 특유의 냄새에 익숙해져 갔고, 이제는 부검 장면 하나하나, 부검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하나하나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안정도 찾게 되었습니다.

 

해부되는 사체의 모습을 보면서 참 죽음 앞에 인간의 육신이라는 것이 정말로 허망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억울하게 사망한 피해자의 사인을 밝혀내고, 아울러 피의자의 정확한 죄책을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부검은 반드시 필요한 수사의 한 과정이지만 만약 내가 유가족이라면 저 장면을 목격하는 심정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니 절로 숙연해지는 분위기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확한 부검은 반드시 필요한 수사과정일 것입니다.

 

그렇게 2시간이 조금 더 걸린 부검이 끝이 났고, 여기까지가 제가 2009. 6. 9.에 보낸 오전 일정입니다. 다시 청에 복귀하니 점심시간도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었고, 모두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지만 전 오후에 증인신문 일정이 잡혀있어, 허기진 배를 쥐어 잡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날 오후 법정에서 그리고 일과가 끝난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 회에 계속 연재토록 하겠습니다. ^^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