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배심은 유죄평결을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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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배심은 유죄평결을 내리지 않는다”
  • 오사라
  • 승인 2009.07.1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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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오 (Sara Oh)

한국외대 / 전 미국 매릴랜드 주 지방법원 Commissioner(Magistrate)

 

필자는 Commissioner 법관으로 올해 초 2월까지만 해도 미국의 지방즉결재판소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평소 배심원제도를 동경하고 예찬도 하는 편이다. 국민참여재판제도가 한국에 도입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역시, 글로벌 한국!’ 하고 좋게 느꼈던 것이 기억난다. 한국과 미국의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서로 차이점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국민참여가 법조인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미국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첫째로 국민의 참여는 자칫하면 지루해 질 수 있는 재판에 역동적인 요소를 제공한다. 미국 각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재치있는 변호사들이 배심원을 설득하는 모습은 마치 장기자랑 무대를 방불케 한다. 이것은 판사 혼자서 판결하는 즉결재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서민 배심원의 마음을 얻으려는 엘리트 법률 공방전은 치열하다. 배심원이 선정된 관할구역의 향토 문화와 각 배심원의 배경을 부각하는 전략 또한 눈에 띈다. 예를 들자면 경상도 법원에 가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다. TV 드라마 배우를 능가하는 솜씨를 발휘하는 베테랑 법조인들은 배심원의 눈물을 끌어낼 수 있는 감동적인 웅변과 웃음을 자아내는 코믹한 행동의 연출도 서슴지 않는다. 울고 웃으며 눈물을 닦다 보면 어느새 배심원석에 비치된 클리넥스 상자는 그만 동이 나고 만다. “웃는 배심은 유죄평결을 내리지 않는다”던 미국 로스쿨 교수들의 경험적 이론이 생각난다.

 

재판석에 앉은 법관으로서는 Court TV 드라마를 시민 배심원과 함께 웃으며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으니 재미가 만점이다. 만일 독자가 법조인의 커리어를 선택하고자 하는 이유가 소크라테스식 논쟁과 학구적 도전을 즐기기 때문이라면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변호사나 판검사의 역할은 대단히 매력적일 것이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말하는 것을 꽤 좋아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는데 개인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법관이 국민참여재판을 좋아할 실무적 이유도 있다. 법관의 일이 약간이나마 수월할 수 있다는 통념이 그것이다. 사건의 결정권이 판사에게만 100% 쏠려있지 않기 때문에 중대한 재판석의 책임적 스트레스가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덜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통상적으로 미국에서는 배심제라고 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즉결재판에 비해 시간제한의 제약이 적으며 여유있는 속도로 운행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 차이는 있지만, 미국 지방법원 즉결재판소 소속 판사들이 배심재판소로 발령 받으면 몹시 기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한번은 어떤 판사가 장장 8번의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결국 9번째에 배심재판소로 전직하는데 성공하신 것을 본 적이 있다. 축하 피로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판사의 끈질긴 노력에 갈채를 보냈다. 즉결재판소의 판사들은 어렵고 값비싼 선거출마까지 감수하며 배심재판소로의 전직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필자도 앞으로 미국에 돌아가게 되면 훗날 멋진 승진의 날이 오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물론 어디나 장단점은 있다. 경우에 따라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시민 배심원의 공감대를 맞추려면 변호 준비에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하는데, 받을 수임료가 즉결재판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다면 실익이 없다고 느껴지게 된다. 소규모의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배심원재판은 민사상 분쟁의 소송가액이 다소 큰 경우나 징역형의 가능성이 있는 중죄를 다루는 사건에만 쓰이는 것이 통례이다. 대다수의 주 (state)가 배심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최소량의 소송가액과 형량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렇지만 법조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꼭 돈의 액수로만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보고 있는 공판에서 올바른 변론을 소신있게 표현하는 변호사는 시민의 눈에 크게 띄게 마련이다. 변호사의 법정에서의 성공이 하루아침에 사회적 유명인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미국의 노련한 법조인들은 잘 알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법조인이 국민 앞에서 그의 경쟁력과 개인기를 발휘하고 명예를 빛낼 수 있는 귀한 기회인 것이다. 아울러 시민 배심원과 더불어 재판에 임하는 것은 시민의 안녕과 정의를 위해 수고하는 법조인이 인생에서 해볼 만한 보람차고 아름다운 경험이다. 이제 세계화 시대에 한국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시민과 손잡고 역사를 이끄는 훌륭한 법조인 리더를 많이 배출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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