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의 기본적 임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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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기본적 임무에 관하여
  • 임정수
  • 승인 2009.07.1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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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변호사 법무법인 한승 · 전 서울고등법원 판사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유치원에서 배운 것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에 이미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도 다만 그렇게 실천을 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으로 돌아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질문을 받았던 혹은 스스로 물어보았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물론 특기와 구체적 적성에 맞추어, 가수나 화가가 되겠다,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한 사람들은 별도로 치고 그다지 특기나 적성과 무관하다고 할 직종으로 보자면, 강도나 사기꾼이 되겠다, 모리배가 되겠다고 답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대신, 의사가 되겠다, 판검사가 되겠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답을 한 사람은 적지 않았으리라. 이어 ‘왜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떤 답을 했던가. 세부적인 답변이야 갈렸겠지만, 대체로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취지가 많았을 터이다.


그럼, 이처럼 어린 시절에 장래 희망 중 하나로 자주 꼽히던 인기 직종인 법조인이 된 사람이나 막 법조인이 되려는 도상에 있는 사람은 같은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가? 과연 같은 답을 할 것인가?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드는 아름다운 시 <무지개>에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그 아이의 꿈과 마음이 성인이 된 법조인이나 예비 법조인에게 얼마나 남아 있을 것인가? 아마 정직한 사람이라면 ‘인권 옹호’ 또는 ‘정의 실현’과 같은 이상적인 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어릴 적의 꿈과 포부는 법조인의 현실과는 무관한 것이고 과연 그래도 좋은 일인가? 그리운 추억과 함께 소박한 차원에서나마 한 번 생각해 보자.


자주 혹은 많은 작품을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에게 몇 년이 흘러도 잘 잊히지 않는 영화로 ‘그린 마일(Green Mile)'이 있다.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교도관 역을 맡았고 사형수가 집행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교도소가 그 배경이다.
사람의 병과 고통을 치유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거인이 어느 날 사형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거인은 악한에게 유괴되어 처참하게 살해된 자매를 살려보려고 그들을 부둥켜안고 ‘내가 너무 늦었어’라는 탄식을 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었다. 교도관은 거인을 비롯한 사형수들과 생활하는 동안 거인의 착한 성품과 가히 신적인 능력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교도소 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해 거인이나 교도관 모두 어린 자매를 살해한 진범이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거인의 사형집행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교도관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다. 교도관은 고심 끝에 거인에게 ‘원한다면 탈옥을 시켜주겠다’고 말한다. 너무나 선량한 거인은 교도관의 제안을 당연히 거절한다. 교도관은 거인에게 묻는다.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왜 나의 기적을 죽였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답변해야 하는가요?” 거인은 “친절을 베풀었다고 대답하세요”라고 말하고, 전기의자로 향한다.


꼭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불완전한 이 세상을 살다보면 그린 마일의 상황처럼 자기 자신이나 주변 사람과 관련하여 옳지 않은 일, 잘못된 일을 알거나 접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을 하는 것 같다. 저항하거나 순응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도리어 잘못을 이용하는 등등으로.


법조인은 직업적으로 분쟁과 범죄를 다루는 관계로 잘못된 일을 일반인들보다 훨씬 자주 접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나아가 필자는 법조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것을 본분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법조인은 각각의 직역에 따라 역할과 직분이 다르지만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잘못된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남다른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전형적으로, 판사에게는 ‘너의 목숨을 거두어 들인다’라고 명령할, 이 지상의 유일무이한 권위와 권력이 있고, 당연히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상응한 권능이 있다. 법조인들은 바로 그 일을 하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만약 그린 마일에서 거인의 무고함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이 교도관이 아니라 법조인이었다면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현실적 방도도 여러 모로 강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필자는 특히 예비 법조인이나 신입 법조인이 ‘법조인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임을, 그를 위한 지혜를 가다듬고 용기를 길러야 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적어도 자기의 업무에서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노력과 조화되는 범위에서 다른 세속적 가치를 추구해야 어릴 적 꿈이 어른이 된 뒤에도 그나마 보존되고 실현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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