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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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07.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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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계와 천성관ㆍ백용호 인사청문회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며칠 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DVD로 보았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쓴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원작소설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각색하여 만든 영화다.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일흔 살의 노인으로 태어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이 점차 젊어지면서 일생 동안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여인은 점차 나이가 들어가고 주인공은 점차 젊어져간다. 어느 시점 두 사람은 실제 나이와 몸의 나이가 비슷해지는데, 그때 최선을 다해 서로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만, 안타깝게도 세월의 역방향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헤어진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계 이야기가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하나 틀리지 않다.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의 사퇴 소식에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렇게 시퍼렇게 벼리던 칼날의 날카로움은 그가 퇴임하는 이 순간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박연차 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이 며칠 전에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결심공판일에 구형도 하는 것이 기본인데도 차후에 서면으로 하겠다고 재판부에 의견을 개진했고, 덩달아 재판부도 추후에 검찰 구형이 서면으로 제출되는 것과 다른 관련 피고인들의 재판진행절차를 고려하여 선고기일을 잡으려는지 구형도 듣지 않은 채 재판을 끝내었다. 참 이상한 모습의 재판 종결이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불과 두어 달 후 자신이 이렇게 옷을 벗고 민간인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그 수사를 잘 한 공로로 승진의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으로 더욱 열심히 수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의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중수부장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물줄기는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이인규 중수부장은 온갖 비난의 중심에 놓이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내정하였고, 그 여파로 이인규 중수부장은 본인의 의사에 어긋나게 옷을 벗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어쩌면 지금 그는 토사구팽당했다는 억울한 심정으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볼 수만 있다면, 오늘 후회할 일을 어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리석은 게 인간이기에 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똑 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려고 한다. 그런데 청문회를 위해 제출된 서류에 의하면 건축업자로부터 15억 원이 넘는 거액의 사채를 빌려 25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매입하였는데, 그렇게 빌린 돈에 대한 이자지급약정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 돈을 빌려준 이웃은 건축업자라고 한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에게 무이자로 15억 원이 넘는 거액의 돈을 빌려준 그 건축업자는 도대체 얼마나 부자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얼마나 마음이 착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검찰총장 내정자를 위해 그렇게 무이자로 그런 거액의 돈을 빌려줄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싶어 존경스러워진다. 그 분이 가난한 서민이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도 많은 돈을 기부하였거나 봉사하였기를 바랄 뿐이다. 가난한(?) 노무현 전 대통령 자녀들의 집을 사 주기 위해 돈을 건네준 박연차 회장의 모습이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얼굴 위로 클로즈업 되니 이 일을 어쩌랴.


문득 내가 사업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검사시보로 모 지청에서 근무하던 때, 나를 지도하셨던 부장검사께서 회식 자리에서 나를 포함한 여러 검사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대로 옮기면, 지방에서 유지입네 하며 껍죽대는 건설업자들은 대부분 지방토호세력들로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니 젊은 검사들이 그들과 얽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작은 것에 얽히게 되면 어마어마하게 본전 뽑으려고 검사들을 괴롭히니 그런 어려움 당하기 싫으면 아예 건설업자와는 사적으로 상종도 하지 말라고 훈시 겸 당부를 했었다. 왜 그 말이 지금 갑자기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말은 두고두고 내 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적지 않은 건설업자들이 건축허가에서부터 준공허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음을 직간접으로 체험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으니, 그때 부장검사의 그 말씀은 어느 사이 내게 하나의 확신이 되어 버렸으니 이 일을 어쩌랴. 물론 지금도 성실하게 법을 준수하며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불법을 저지르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설업자가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과 결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이 신문지상 등을 통해 보도되고 있고, 이권 있는 곳에 부패는 있을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는가?

 
또 하나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타고 다니는 고급승용차가 모 건설업체가 리스한 자동차라는 것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계약금으로 1700만원을 지급하고서도 매월 160여만원의 사용료를 내어야 하는 자동차를 원래 리스한 회사 역시 건설업체라고 한다. 천성관 내정자는 집을 살 때도 건축업자로부터 돈을 빌리고, 승용차도 건축업자가 리스한 자동차를 얻어 타고 다녔다니, 그가 뭐라고 변명해도 그는 건축업자와 상당한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오죽하면 오이밭에 가서는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을까. 우리 대법원 판례는 국가공무원이 무이자로 돈을 빌릴 경우 직무와 연관이 있으면 이자 상당액을 뇌물죄로 처벌하고 있다. 혹시라도 천성관 내정자가 그 건축업자의 건축사업에 대하여 어떤 포괄적 편의를 제공해 주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천성관 내정자가 가지고 있던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자리는 狐假虎威에서 여우를 앞세운 호랑이 구실을 하기에 충분한 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15억 원이 넘는 돈을 무이자로 빌렸거나, 한 달 리스사용료가 160만원이 넘는 승용차를 1년이 넘도록 무상으로 타고 다녔다면 그거야말로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공직의 프리미엄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천성관 내정자는 청문회 자료 제출 직전에 리스사용자를 건설업체에서 본인 가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전에 아파트 단지에 주차 차량으로 등록한 것은 차를 탔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업체에게 주차장 편의시설을 이용하도록 편의를 위해 거짓으로 신고를 도와주었다고 변명하고 있다. 만일 그 말이 거짓말이라면 정말 검찰총장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설사 그 말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차량을 아파트 단지에 불법주차시키도록 거짓말로 주차신고증을 발급받아 준 것이라면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으니 어찌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투기성 부동산 거래를 하였고, 4억 원 가까운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여 등록세 및 취득세 등의 세금을 포탈하였다는 것이 청문회에서 밝혀졌다. 국가 세금업무를 총괄해야 할 국세청장 후보자가 각종 세금 포탈을 위해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별 것이 아닌 양 치부되는 현실은 정녕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천성관 내정자나 백용호 내정자 모두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임명받을 것이다. 야당이 아무리 청문회에서 지적하고 고함친들, 이명박 대통령은 내정자들의 그러한 사소한(?) 하자에 신경 쓰는 심약한 대통령이 아니니 그리 개의치 않고, 그들의 능력을 높이 사 임명하게 되었다고 변호하면서 임명을 강행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어쩌면 얼마 후 임기를 채울지, 아니면 또 다른 일로 낙마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인규 중수부장이 옷을 벗듯 그만 두게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가듯, 거꾸로 가고 있으니 그러한 하자를 가진 자를 권력핵심의 수장으로 임명한들 무슨 탈이 있겠는가? 이틀 전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이임하였다.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이임사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인권 의식 부족과 소통 노력 부재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는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최근 들어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새 정부 출범 이래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대해 강한 책임을 통감하고, 새로 취임할 후임자가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길 바라는 소망으로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정부는 인수위 시절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부터 시작해 지난 3월 말 적정절차 없이 유엔 결의가 채택한 독립성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기구의 축소를 감행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면서 “좌파 정부의 유산이라는 단세포적 정치논리의 포로가 되어 인권에 관한 한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안경환 인권위원장도 토사구팽당한 셈이다.


세월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토사구팽될 것이고, 나도, 너도 모두 토사구팽될 것이다. 하지만 왜 나는 지금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도는 시계의 초침이 되고 싶은 것일까?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시계는 미래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가? 당신을 토사구팽하기 위해 당신의 시계가 지금도 예외 없이 째깍 거리고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어리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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