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어떤 하루-“사람의 입장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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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이의 어떤 하루-“사람의 입장이라는 것”
  • 법률저널
  • 승인 2009.06.0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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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무 제39기 사법연수생 hmkim@cyworld.com

 

검찰시보로 배당받은 사건 중에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거리에서 신호위반으로 사고를 냈고 그 결과 170만원 상당의 수리비와 3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의 경우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거나 당사자 간에 합의가 되어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지만 이 케이스의 경우에는 신호위반이라는 중과실이 있었기 때문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단서조항에 해당하여 처벌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목격자도 6명이나 되고 목격자의 신분이나 피해자와의 관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제는 피의자만이 자신은 절대 신호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러서 한번 조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피의자를 소환했고 조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피의자는 여전히 자신은 절대 신호위반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고, 6명의 목격자 진술과 사고 장소의 신호체계 등을 분석한 경찰자료를 제시하며 피의자를 설득했지만 피의자는 여전히 “No" 였습니다. 사실 경찰에서 수사된 사항만 하더라도 유죄를 받기에는 충분했고 더 이상의 수사도 필요 없는 상황이었지만 피의자의 나이가 고령이고 탄원서도 제출한 상태라 뭔가 진짜 억울한 점이 있나...있으면 풀어줘야지 하는 마음에 소환한 것입니다.

 

그렇게 2시간이 넘는 조사와 설득의 과정이 있었지만 피의자는 끝까지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교통과 경찰관까지 검사실로 소환해서 협동으로 설득했지만 피의자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사가 끝나갈 무렵 피의자는 저에게 “검사님 한번만 사고현장에 가서 저와 같이 신호등을 봐주세요.”라고 애원했고, 저는 밀린 일 때문에, 그리고 솔직히 시보가 검찰청 차를 동원해서 매일 수십 건식 올라오는 교통사고 때문에 현장검증을 나간다는 것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닌지라 정중히 거절하고 최대한 선처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돌려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검사님과 상의 후에 벌금 150만원의 구(求)약식을 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저 역시 송사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저희 가족의 전 재산이 걸린 일이었는데, 그 때는 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게 가족 중에 저 밖에 없었고, 유일하게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고시생이었기에 제가 변호사 선임부터 상담 그리고 각종 고소장 작성 및 조사에 모두 참여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저 역시 참고인으로서 조사에 임하고 시청이나 구청에 각종 민원을 제기하면서 정말이지 애타는 심정으로 해당기관의 답변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이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이래서 돈이 필요하고, 권력이 필요한 것인가, 정말이지 한번만 내 말대로 수사를 했다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텐데....왜 피의자와 고소인의 대질한번 없이 이렇게 쉽게 무혐의 처분이 나오는 것이지....그 당시의 저로서는 우리가 배운 교과서대로 진행하지 않는 수사기관들이 정말이지 원망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반드시 이번 시험에 합격하고 말겠다고 이를 갈기도 했구요.

 

저희 집 송사는 제가 1차 시험을 앞둔 11월에 터져서 해를 거듭하고 제가 2차 시험(재시)을 모두 마치고 합격자 발표 한 달 전인 2007. 9.에 서울 고등법원의 확정판결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10월에 제가 2차 시험에 합격을 했고 그렇게 저희 집의 아픔과 슬픔은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고, 지금 검찰시보로 근무하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늘 한번만 사고현장에 같이 가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한숨만 쉬며 집으로 돌아가는 피의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예전의 그 일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2~3년 전에 내가 그렇게 애태웠던 우리집 사건도 수사했던 기관의 입장에서는 증거가 불충분한 매일 처리하는 그저 그런 사건 중에 하나였을 수도 있겠구나... 그들 나름대로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억울했을 수도 있겠구나.......실제로 내가 시보로 와보니까 이렇게 야근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데.....하는 생각도 드는 반면, 피의자는 집에 가면서 분명 나를 원망했겠지.....60세의 피의자는 분명 “역시 저것들은 배우기만 배웠지....에이그 한심한 것들....사건 현장에 나가서 한번만 보면 알 수 있을 것을 책상에 앉아서 종이 쪼가리만 보고 판단하는 것들....”이런 생각을 하겠지 하고 생각하니 검사실을 떠나는 피의자의 뒷모습이 씁쓸하게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교과서에서처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만 생각을 해보면 쉽게 쉽게 일을 풀어갈 수 있겠지만 때론 그 주변의 환경 때문에 때론 자신의 잘못된 오해 때문에 때론 그저 이유 없는 귀차니즘 때문에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경찰에서 검사님 앞으로 결재서류가 올라왔습니다. 제가 조사한 교통사고 피의자가 검찰조사도 신뢰하지 못했는지 다시금 경찰서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참다못한 경찰이 피의자를 직접 불러 순찰차에 태우고 당시 피의자가 운행했던 그 경로를 그대로 운행하는 검증을 실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과는 피의자가 신호체계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으며 피의자 역시 순순히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검사님께서 “김 시보님이 조사한 그 사건 피의자 참 대단하네요.”하면서 결과를 알려주실 때, 그 사람 참 고약하다라는 생각보다 아 그 때 조금만 더 설득해서 돌려보낼걸...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왜 지금에 와서 이 정도 밖에 하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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