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인권개선 기능위해선 헌법적 독립기관 돼야”
“인권법교육 체계화 노력할 터”
“인권위 조직 축소는 단지 한 국가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인권상황의 후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인권위가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권 최고 담당자의 인식변화가 절실합니다”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정부가 단행한 인권위 조직 축소와 관련, “매우 안타깝고 서글프다”는 말로 운을 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인권변호사를 거쳐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본부장을 역임한 후 모교로 돌아와 인권법 전임교수로 강단에 선 박 교수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단연 ‘20%가 넘는 인원이 감축된 인권위 관련 사안을 어떻게 보나’였다. 박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인권이 후퇴국면으로 들어선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위기 처한 인권위, 국제사회도 주목
현재 한국은 유엔 국가인권기구조정위원회의 부의장국이다. 올해 차기 의장국에 한국이 선출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인권위는 국가인권기구의 중심에 있어 왔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의 인권위의 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이자 국제인권상황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 위험에 처하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국내 인권상황 또한 이번 정부 들어서 급박하게 나빠져 가고 있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촛불시위사태 이후 집회, 시위, 표현의 자유가 우려할 만할 정도로 후퇴하고 있다”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전경과 경찰차량이 서울 시청광장을 에워싸고 도로변을 점령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문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정부에서는 조문이 폭력시위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예방적 조치를 취한다고 하지만 헌법상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시위의 자유는 정부가 그런 우려를 한다는 사실 만으로 기본권을 제한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위 시정권고 수용률 낮아…인식변화가 뒤따라야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를 “지난 두 정부와 현 정부가 인권위를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진단했다. 그는 “정부가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정부에 비우호적 기관’이라는 생각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인권위가 놓인 갈림길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인권위가 살아남아 인권개선에 계속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권 최고 담당자의 인식변화가 이루어져야 국가기관에서 인권위의 시정권고를 수용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사회에 인권위가 제도적 뿌리 튼튼히 내리기 위해서는 법률에 근거한 기관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헌법적 기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며 “헌법적 독립기관으로 위상을 공고히 할 때 이런 사태가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향후 헌법 개정에 있어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인권위의 헌법기관화를 요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10년간의 미안함, 인권변호사로 갚아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시위하는 동기들의 시위대열을 보면서도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 했던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러웠다”는 박 교수는 가슴에 ‘나중에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품었다. 박 교수는 그때의 약속을 10년 후 인권문제에 앞장 선 법률가로서 지켜왔다.
지난 해 11월 법원은 강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15년을 복역했던 정원섭(74·목사)씨에 대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3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이 날 박 교수는 누구보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 교수가 이 사건에서 일정 기간 주심변호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교수신분이 되고나서도 대리인으로 앞장설 수는 없어도 뒤에서 도왔던 그다. 지난 10년간 당사자와 인간적 유대를 맺어온 박 교수로서는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대단히 크지 않을 수 없다.
박 교수는 “40년 가까운 시간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해 온 그를 볼 때, 또 그 과정에서 법조인이 어떤 일을 해왔나를 생각할 때 역사적 교훈이 큰 사건”이라고 소회했다. 일반 형사사건 재심에 있어서 판결을 뒤집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상황에 따라 때로 용이해지는 정치적 사건과 달리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관련 증거와 공판기록마저도 원본을 구할 수 없는 제도 때문에 재심을 통해 구제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 남은 대법원 최종판결에 대해 “무죄판결이 나올 것이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세상 변화시키는 공익인권 변호사 탄생하길
박 교수는 “우리 학생들이 모두 공익 인권 변호사가 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로펌과 기업에 들어가 활동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단 몇 명이라도 공익인권 변호사가 탄생한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 할 것”이라고 바랐다.
로스쿨은 학생 스스로의 동기가 있어야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입학 초기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익인권법연구회를 창립해 활동하기를 권면했다. 덕분에 한양대 로스쿨 재학생은 전국 로스쿨 중 처음으로 공익인권법연구회 창립에 첫 발을 딛게 됐다.
박 교수는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익인권 관련한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학교측에 제안하고 있다”며 “공익인권 소송을 많이 맡아 온 변호사들이 직접 참여하는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박 교수는 “공익인권법분야는 사회적 흐름과 밀접하기 때문에 낙관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면 학생들도 동력을 잃을 수 있고 학교에서도 관심을 덜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러한 우려 또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제”라며 향후 노력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인권법 연구 집중할 터
한국의 인권법의 상황을 국제화시키는데 기여해야겠다는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인권제도 연구가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동참”하겠다고 힘 줘 말했다.
또 인권법 교수로서는 “공익인권법 분야 관련해서는 한양로스쿨이 전국 로스쿨 중 ‘가장 교육의 질의 좋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의 인권법교육의 역사가 길지가 않기 때문에 인권법교육의 체계화를 위한 연구 역시 앞으로 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허윤정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