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 진검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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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 진검승부
  • 법률저널
  • 승인 2009.05.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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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나는 지난 해 1월, 본보에 “노무현 예찬론”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취임하기 직전, 세상의 모든 관심이 온통 이명박 대통령에게 쏠려 있을 때,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5년간 공과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쓴 글이 노무현 예찬론이다. 그 글은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또 많은 이들이 비판을 했었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경복궁에서 열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63년의 생을 마감하고, 영면의 길로 들어가는 장례의식이 행해지는 날이다. 그는 오늘 한 줌의 재로 변할 것이고,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한 채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게 될 것이다.


그가 운명을 달리하던 그 날, 나는 새벽 일찍 학교 연구실로 출근을 했었고, 연구 중이던 논문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고, 울먹이는 친구의 음성이 들려왔다. “노무현대통령이 자살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였다.


그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섬광처럼 스치는 것은 “마지막 진검승부”를 벌렸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 이 양반이 목숨을 걸고 마지막 진검승부를 벌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통증이 몰려오며 가슴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6년간 본보의 이 칼럼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그가 추구해왔던 정책이 정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박수를 보냈고,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때는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가 탄핵소추를 당했을 때 소추한 측을 비난하며 노무현을 옹호했고, 행정수도이전에관한법률이 위헌판결을 받았을 때도 그러한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전효숙헌법재판소장임명반대파동 때도 그 반대가 부당함을 헌법적 관점에서 평하였고 학술논문도 발표하였다. 사립학교법을 당초 원안에서 후퇴하여 개악하며 적당히 타협할 때도 그 부당함을 비판하였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도 적극 반대하며 비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추진했던 남북정책이나 지역갈등해소, 경제정책의 올바른 방향, 서민보호대책의 수립 및 부동산투기억제책을 시행할 때에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이러한 글들을 모아 지난 해 10월 “노무현 예찬론”이라는 한 권의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저 책을 낼 때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심이 돌아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어 거대여당으로 탈바꿈한 상태였고, 여론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극에 달해 있어서, 내가 저런 제목의 책을 낸다고 할 때 몇몇 지인들이 걱정까지 해 줄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었지만 그래도 참여정부에 대한 약간의 평가와 우리 사회가 변화해가야 할 방향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내겠다고 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춘추전국시대의 장군 오기는 그의 병법서 吳子兵法에서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를 역설하였다.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위 말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겨우 남은 13척의 해군력으로 일본의 막강한 군사력과 마지막 노량해전에 출정하기 직전 부하들에게 말했다는 생즉사사즉생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의 죽음 소식을 접했을 때, 불현 듯 저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왜 노무현 그가 자기 목숨을 내던지며 마지막 진검승부를 벌려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가 역사에서 이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죽은 공명이 사마중달을 혼비백산케 했듯,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은 죽음으로써 누군가를 혼비백산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으로써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도 인간으로서 흠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이었겠지만, 그래도 그가 마지막 자존심으로 붙잡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도덕성과 순결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했다는 말 “꿋꿋하게 살지”라는 말이 묘하게 대비되어 온다. 무엇이 꿋꿋하게 사는 것일까, 수천억을 부정축재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골프를 치며 자신의 노후를 즐기고 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꿋꿋하게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그렇게 꿋꿋하게 살지 못했을까? 사람의 格이 달라서일까? 


민심은 묘한 것이라, 살아 생전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비난하던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살았을 때 좀 더 그의 생각을 읽고 협조를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저렇게 그의 분향소 앞에서 몇 시간동안 조문 차례를 기다리며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서 있는 순박한 백성들은 어디에 숨어 살고 있었기에, 노무현 그가 거대언론으로부터 왜곡되고 잘못된 보도에 시달리며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을 때, 한나라당으로부터 그의 정책이 비난받고 조롱거리가 되고 있었을 때, 왜 침묵하고 전혀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을 뿐 그를 사랑하고 지지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를 비난하고 깍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사람들은 소박한 서민들의 애도물결 뒤에서 여전히 그를 비난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서 속을 썩이더니 죽어서도 속을 썩인다고 노무현 그를 비난하면서 이 진검승부를 어떻게 피해갈까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장례식 때 소요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니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옛말이 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도둑은 제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알고, 누군가로부터 추궁당할 것을 홀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저 말을 들으면서, 노무현 그의 영정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애도하는 순수한 국민들은 그 누구도 장례식날 소요를 꿈꾸고 있지 않을 텐데도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 떠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바라보며, 스스로도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음을 알고 저리 겁을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뜨거운 추모물결이 장례시까지 계속되다 어느 한 순간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정지되고 잊혀질까 봐 또 두렵다. 정이 많은 국민이라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정에 끌려 슬픔을 함께 하지만 또 다른 정에 쉽게 끌리는 습성이 우리에게 없다고 할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 이후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5년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조명되었으면 한다.


참 이상했다. 그가 자살이라는 마지막 진검승부를 행하기 일주일 전, 나는 이상하게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고, 마치 무엇에 홀린 듯 본보 5월 15일자 칼럼을 통해 “불쌍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한 마디”라는 글을 썼다. 그 글이 그의 살아 생전 내가 그를 위해 쓴 마지막 글이 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랴? 어쩌면 공개된 신문지상을 통해 그를 향해 “불쌍한 사람”이라며 위로를 보낸 마지막 글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글을 써야겠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힌 건, 끊임없이 검찰에 의해 소환되는 그의 가족들과 후원자들을 보면서,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소환조사하고서도 3주가 지나도록 기소 여부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한 채 추가 증거를 확보해야 할 요량으로 그의 딸이 구입하였다고 알려진 미국 집에 대한 매입자금을 추가수사하는 것을 보면서, 검찰이 노무현 그를 아예 결딴을 내려고 작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권력으로부터 멀리 떠나 시골촌부처럼 살아가고 있는 그가 너무나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아 불쌍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노무현 그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도덕성에 가해진 심대한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한 쪽의 유서만을 남겨 놓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그 자체만으로는 비난받을 행동이다. 누구 말마따나 꿋꿋하게 살았어야지 하는 질책을 받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순수를 지향하는 사람은 순결한 영혼에 타격을 받으면 이를 견디지 못한다. 오죽 하면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까?


어린 손녀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빙과를 사주기 위해 마을 구멍가게에 들리는 그의 소탈한 모습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면서, 오리농법을 통해 재배하여 수확한 노무현표쌀을 보면서, 농사짓고 살게 그를 그냥 놓아두지 하는 생각을 강하게 갖지 않을 수 없다. 농사지으며, 동네 주민들이나 봉하마을을 찾는 서민들과 함께 잔디밭에 털퍼덕 주저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낄낄대며 소탈하게 웃는 그를 그냥 그렇게 살게 놓아두지, 왜 검찰은 그렇게 집요하게 수사망을 좁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죄를 지었으니까......? 그냥 할 말이 없다.


그는 자기 목숨을 내던지는 마지막 진검승부를 통해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옥죄어 오는 권력을 향해 이제 그만 놓아달라고 절규했을지도 모른다. 시대역행적으로, 1970년대로 돌아가고 있는 정치사회현상을 2010년을 향한 방향으로 그만 돌려놓으라고 항변하였는지도 모른다. 북핵실험과 우리 정부의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 참여로 인해 빚어진 북한의 군사적 타격 위험을 대서픽설한 신문의 1면과 몇 장 뒤의 중국과 대만의 “양안 적대관계 끝났다”라는 제호 아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우보승 대만 집권 국민당 주석간의 악수하며 웃는 모습의 사진이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직을 물러난 뒤 봉하마을에서 행한 귀향보고 도중 그가 남겼던 한 마디, “내가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었던 것은 ‘국민통합’이었고,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는 ‘전국정당’의 출현”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번 그의 죽음을 통해 국민통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현재 세상이 굴러가는 것을 보면, 국민통합보다는 분열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죽음의 길을 택하면서 남긴 그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그의 유서 내용은 철학적이다. 도의 경지에 이르른 선승의 한 마디 같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는 죽어 역사가 되었고, 역사가 되어서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그를 애도하며 슬퍼하는 국민들이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는 절벽에서 추락하는 그 짧은 순간 “참 편안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나 봉하마을에서 귀향보고할 때 “야아~, 기분 좋다.”라고 했던 것처럼. 그렇지만 그가 그렇게 밟고 싶었던, 모든 국민들이 단단히 밟아도 무너지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그 땅에 부딪히는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내 몸이 바스라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져온다. 것이다.


그의 영혼이 안식하기를 기도하고 슬퍼하는 그의 가족들이 위로받기를 기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하나님의 용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진검승부에서 칼을 맞은 자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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