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어떤 하루(6)-국선변호이야기(1) 국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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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이의 어떤 하루(6)-국선변호이야기(1) 국선재벌?
  • 법률저널
  • 승인 2009.05.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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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무 39기 사법연수생 hmkim@cyworld.com
 

오늘부터 다음 호까지는 국선변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시보들이 법원에서 국선변호를 하게 되면 소정의 수당이 지급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선변호를 많이 배당받은 시보를 소위 ‘국선재벌’이라고 부르는데 저 역시 국선을 영장 4건, 본안 4건을 하여 국선재벌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처음 배당받은 사건은 특수절도 사건이었습니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새벽 3시 경에 후배와 함께 손수레를 끌고 가다가 리모델링을 위해 방치된 연립주택에서 철문 등을 절취하다 입건된 사안입니다. 이 피고인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배움의 시간도 짧았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어 후배와 함께 고물상 한 귀퉁이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시가 20만원 상당의 철문을 절취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입니다.

 

사안 자체가 워낙 경미하고 피해자도 처벌을 원치 않는 등 정상이 참작되어 검사님께서도 불구속 기소를 하셨지만 제1회 공판기일에 불출석하여 판사님께서 구속영장을 발부하셨고, 지명수배 상태에서 체포·구속까지 된 상태였습니다.

 

처음 법원 계장님으로부터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앞이 캄캄했습니다. 형사적인 법리야 둘째 치고, 변호인에게는 열람·등사권, 피고인 접견권이 있다고 수없이 배워왔지만 정작 사건기록은 어디 가서 복사를 해야 하고, 피고인 접견은 어떤 절차를 거쳐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입니다. 2학기 시험과 동시에 모든 지식이 날아간 터라 형사변호사 교재와 연수원 기록 등을 찾아보고, 검찰청, 구치소에 문의해가며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제일 먼저 판사님께서 발부하신 국선변호인선정결정문을 가지고 검찰청의 공판검사실에서 기록을 복사합니다. 시보들끼리 농담으로 시보 생활 중에 제일 힘든 것이 기록복사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정식 변호사가 되면 기록복사야 직원 분들이 해주시지만 아직 반 변호사(?)인 저희들로서는 기록복사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복사한 사건기록을 시보실에 조용히 앉자 정독합니다. 연수원에서 배운 대로 메모도 해가면서 피고인이 범행사실을 자백하는지 다투는지도 살피고 자백을 한다고 해도 그를 뒷받침할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지 정상자료는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한 후 사건의 대강이 파악되면 구치소에 팩스로 접견신청서를 발송하고 정해진 시간에 구치소에서 피고인접견을 합니다.

 

처음으로 해본 피고인접견도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후에 피고인 접견과 관련해서 별도로 자세히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인들과 달리 변호인은 접견절차나 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데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전경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삼엄한 경비, 구치소라는 장소가 주는 분위기 자체가 기선을 제압하지만 연수생 신분증을 제시하며 접견을 왔다고 하면 깍듯하게 돌변하는 그들의 자세와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통제된 구역에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다는 ‘특권(?)’이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피고인 접견을 통해 기록에서 부족한 피고인의 변명과 정상자료들을 수집하고 가끔은 피고인의 인생사를 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피고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살아왔던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되고 피고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간혹 접견을 하다보면 피고인들이 구치소 내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는데 구치소 안에는 우리가 힘들게 공부한 형사법 지식을 몸소 실천을 통해 온몸으로 익히신 분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간혹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럴싸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구치소 안에서는 ‘사법연수생 국선변호인을 만나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연수생 때야 누구나 그렇듯이 모든 것이 생소하지만 그렇기에 열정이 있고 자신의 시간과 발품을 팔아서라도 무죄를 받아내고자 하는 열의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연수생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기존 법조인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냉정한 평가일 수도 있기에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록검토와 피고인 접견 등을 통해 수집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피고인 신문사항과 변론요지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시보들에게 배당되는 사건은 시간적 제약 때문에 대부분은 자백사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백사건인 경우 법리적으로 크게 어려운 점이 없고 위에서 설명한 절차상의 문제도 처음에만 낯설 뿐 한번 정도 경험을 해보면 누구나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면 제 첫 국선변호 사건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끝이 났습니다. 드라마틱한 장면도 없었고 그렇게 기억에 남을 만큼 어려운 사건도 아니었지만 그저 제 첫 사건이라는 면에서 평생에 남을 추억으로 제 가슴 한 구석에 남겨두고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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