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식어버린 국수와 어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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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식어버린 국수와 어미니
  • 법률저널
  • 승인 2009.05.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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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언제나 어버이날이 되면 그렇지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살아계신다면 참 잘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친구들 중에는 살아계신 부모님들께서 노환이나 치매증상을 보여 고생이 여간 아닌 친구들도 있다. 너무 오래 사는 것도 복만은 아니겠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너희들은 부모님이 살아계시니 참 좋겠다라는 생각도 함께 갖게 된다. 선배들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자신들의 뇌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늙으신 부모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나이가 스스로 되어서일까?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자신의 늙은 모습이 부모님의 마지막 늙은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거울 속의 자신 모습에서 부모님의 모습이 보여서가 아닐까......


사십대 후반에 나를 낳으신 부모님은 요샛말로 늦둥이를 보신 것이 미안했던지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하시고는 했었다. 다행히 내가 스무 살이 넘고서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지만, 벌써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 아들의 지금 나이쯤에 내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아들 나이에 부모님을 여윈 내 마음을 내 아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여전히 아들 눈에는 내가 직장생활과 사회활동을 나름대로 하고 있으니 나와의 이별은 전혀 상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부모와 자식은 어떤 관계일까를 생각해본다. 나는 비오는 날이면 목이 메어 국수를 잘 먹지 못한다. 비오는 날 국수에 대한 사무치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초여름이었지 않나 싶다. 몹시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무슨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를 갔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학교에 납부하여야 했던 학급비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그때는 학기초가 되면 모든 학생이 학급비라는 명목으로 조금씩 돈을 내어 기금을 마련하고는 했다. 그 돈으로 비, 쓰레받기, 물통이나 주전자 등 청소도구를 사고는 했었다. 아마 그때 돈으로 20원이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며칠째 그 돈을 주지 않아 돈을 걷는 아이에게 창피하기도 해서 나는 몹시 화가 났었다. 당시 고급담배 아리랑 한 값이 20원 정도 했었으니 담배 한 갑의 여윳돈이 어머니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날도 나는 철없이 그 돈을 달라고 떼를 썼고, 어머니는 그 돈이 없어 주지 못하고 내일 주마고 나를 달랬었다. 그 말에 화가 난 나는 아침밥도 먹지 않고 등교를 했던 것이다. 소위 말해 굶는 단식투쟁을 한 것이다. 물론 어머니 가슴에 못이 될 “엄마 미워”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서 말이다. 학급비를 주지 못하신 어머니의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그때 얼마나 어머니를 슬프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새삼스레 반성해 본다. 


아침을 굶어 배가 고팠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어 참고 수업을 받아야 했다. 배속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났고, 선생님의 수업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밥 굶고 온 생각에 골몰해 있던 4교시가 끝나갈 무렵 아이들이 교실 창밖을 내다보며 조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아니 거기에 키 작은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께서는 아침을 굶은 막내가 점심까지 굶을 것이 안쓰러우셨는지 냄비에 국수를 담아 오신 것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5킬로미터가 넘는 먼 길이었는데, 막내를 먹이겠다는 일념만으로 비가 몹시 내리는 그 길을 어머니는 시장 대바구니에 냄비국수를 담아서 가지고 오신 것이었다. 당시에는 보온통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라 이미 국수는 식어있었고 불어 터져 있었다. 철없는 친구들은 그 국수를 보면서 “와, 맛 있겠다” 탄성을 질렀지만, 나는 그때 왜 그리 창피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어머니의 비 젖은 남루한 모습이 초라해서 부끄러웠고, 국수를 담은 양은 냄비 한쪽이 찌그러져 있는 것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식어서 불어 터진 국수를 얼굴 빨개져서 먹어야 했던 일이 무엇보다도 창피했었다. 하지만 내가 국수를 다 먹을 때까지 나를 말없이 지켜보시며 내가 그 국수를 다 먹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나는 빈 그릇을 주섬주섬 챙겨 교문을 나서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후로 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다는 자책감에 혼자 시달려야 했다. 그 자책감은 어느 날부터인지 어머니께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골학교였지만 다행히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것을 항상 자랑스러워 하셨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매주일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의 계단을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다니던 교회가 워낙 높은 곳에 있어서 넓직한 돌계단이 거의 5,60개는 족히 되었다. 그 높은 계단을 오르시는 것을 무릎관절이 부실하셨던 늙으신 어머니는 무척이나 힘들어 하셨다. 내 손을 붙잡고 그 계단을 오르시다가 도중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시면서 하늘 한 번 바라보시던 어머니, 내 손을 잡고 교회 계단을 오르시며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해 하셨는지 모른다. 내가 스무 살이 넘어 처음 번 돈으로 어머님께 맛있는 냉면을 사 드렸을 때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지금도 비오는 날 국수를 먹으려면 이상하니 목이 멘다. 어린 시절 그날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내는 따끈따끈한 칼국수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참 신기해 한다. 밀가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내가 칼국수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어머니께서 끓여주셨던 비에 젖은 식어빠진 국수에 얽힌 슬픈 추억, 아니 그 식어빠진 국수가 너무나 나를 따뜻하게 덥혀 주었던 소중한 추억이 있기에 칼국수를 좋아한다. 칼국수를 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어머니를 만난다.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막내를 어머니께서 살아계셔서 보실 수 있다면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해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면 어느 시인의 시구절처럼, 어머니께서 사흘만 살아 돌아오신다면 참 좋겠다라는 꿈을 꾸기도 한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모두들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부모님께 오늘 하루만이라도 효도하여야 되겠다는 각오를 하는 날이다. 물론 더러는 부모를 힘들게 하는 자식들도 있을 것이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취학을 못해, 사업에 실패해, 몸이 병들어, 가정불화가 있어 부모님을 노심초사케 하는 자식들도 있을 것이다.


이태백, 사오정이라는 실직자들을 일컫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자신들이 실직상태에 있으니, 자신들의 곤고함 때문에 부모님을 챙기지 못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니 핵가족조차 붕괴시대를 맞아 부모에 대한 봉양을 게을리하는 사회풍조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풍요가 넘쳐나는 사회이지만, 지금도 학급비를 챙겨주시지 못하셨던 내 어머니 같은 가난한 부모님이 어딘가에 계실 것이고, 마음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마음에 사랑이 있고, 서로를 향한 신뢰가 있다면 그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형제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다짐했으면 한다. 행복은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도 우리의 부모님들은 비를 맞고 먼 길을 걸어오고 계신다. 아니 부모인 나는 내 자식을 위해 그렇게 먼 길을 걸어갈 각오가 되어 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일수록 마주잡은 서로의 체온이 더 따뜻하지 않겠는가?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어찌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가 남에게 잘 할 것이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당신도 식어버린 국수에 얽힌 것 같은 어머니에 대한 나의 추억 같은 추억이 당신 마음속에 한 송이 꽃으로 자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행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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