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사시 1차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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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사시 1차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 법률저널
  • 승인 2002.05.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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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대
고려대 법대 교수·법학박사

  법무부가 사법시험을 주관한 첫해의 사시 1차 합격자가 지난 5월 1일 발표되었다. 전체 합격자는 2640명, 컷트라인은 83.5점으로서 지난 해의 87.96보다 4.5점이 하락하였다. 그만큼 시험이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이 합격자수는 지난해의 2406명 보다 234명이 증가된 수치이다. 따라서 올 해의 사시 2차 응시인원은 총 5046명에 이른다.


  사법시험이 주관부서가 행자부에서 법무부로 이관되면서 법무부는 여러 가지로 차별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였다. 시험내용과 관련해서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신경향이라는 것을 도입하였고, 지문도 종래의 시험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길게 구성하여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시험 관리차원에서는 공개행정을 표방하여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 불필요한 루머가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합격자를 발표하면서 수험생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각종 통계를 함께 발표한 것도 신선한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법무부의 시험관리는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고, 앞으로 경험이 축적되면 더 나은 제도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이를 위하여 사시 1차의 시험내용과 관련된 몇 가지 고언을 발전적 측면에서 하고자 한다. 법무부는 시험관리를 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사실 시험내용을 결정하는 것과는 직접적 관련은 없다. 그러나 일정한 방침을 정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유도할 수는 있기 때문에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법무부는 새로운 시험유형으로 신경향이라는 것을 선보였다. 이것은 시험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써 매우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심층적 테스트를 위해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모델이 고스란히 일본 사법시험에서 따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알기로 법무부는 이에 대한 출제의뢰를 하면서 일본의 기출문제집을 출제위원 모두에게 출제자료로 송부하였다는데, 이것은 문화적 독립국에서 취할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구법이 곧 일본법이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법문화가 일본에 가깝기 때문에 출제유형정도는 그대로 베껴 쓰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더욱 법문화적 독립을 꾀해야 한다는 역사적 요청에 직면해 있다고 해야 옳다. 2차 시험에서도 새로운 출제방식이 논의되고 있다는데,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계속 확인해야 하는 이 시점에 일본 법무성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은 한민족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참고로 하되, 그러나 내 것으로 만드는 수고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 그것이 재창조이다.


  올해 사시 1차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판례문제가 대폭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기본 3법은 모두 70-80%가 판례의 내용과 관련을 맺는 문제로 출제가 되었다. 최근 들어 판례의 출제비중이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오답시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출제를 위해 합숙했던 교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론문제를 출제하려고 해도 조금이라도 오답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제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판례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실토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대륙법계에서 판례의 학문적 비중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판례가 영미법계처럼 규범적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법원의 판결기준이 되는 것은 판례가 아니고 법률이다. 판례는 더 나은 법률해석을 위하여 비판해야 할 대상이지 암기하여 추종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판례비판이라는 독자적 학문 활동영역이 있는 것이나, 대법원의 판결도 심심치 않게 세상의 변화에 따라서 판례변경을 하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법시험 2차에서 판례를 변형한 문제가 출제되는 것은, 그것이 내용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고 가공의 사건이 아닌 현실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테스트함으로써 실무와 이론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좋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에게 법률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즉 판례라는 결론을 무비판적으로 따먹기만 하는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러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론문제의 비중을 최소한 50%이상, 판례는 그 이하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설사 복수정답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다소 늘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기본서를 제대로 익히지 않고 기계적 방법으로 판례를 암기하여 1차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훌륭한 법률가의 조건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리걸 마인드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판례의 지나친 출제비중은 시험관리주체나 출제위원 모두 무사안일주의 이외의 다른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현재 선택은 8과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각 과목간의 난이도 조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데, 그것은 각 과목의 고유한 특성, 예정되어 있는 범위의 차이 등으로 인해 근본적 해결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선책과목의 비중을 더 축소하여 사시 1차의 부담을 줄인다는 원래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외국어시험이 토플, 토익 등으로 대체되는 것처럼 어느 과목에 일정 점수 이상을 취득하면 그것으로써 선택과목을 영원히 면제받을 수 있는 패스제의 도입을 적극 고려해 볼만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쉬운 과목에 대한 쏠림현상은 해마다 반복될 것이고, 난이도에 대한 시비 또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시 1차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합격인원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지난해보다 올해 234명을 더 합격시킨 것도 그런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는 데, 지금과 같은 수험인구의 증가추세를 감안하면 매년 3000명 이상을 합격시키더라도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다. 문제는 채점이다. 현재와 같은 4인 출제위원이 각 문제를 두 번 채점하여 평균을 내는 방식은, 올해의 사시 2차 응시인원 5046명에다 군법무관까지 합친 숫자를 생각하면 이미 적정한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법률저널의 여론조사에서 대학교수들은 적정한 답안지 채점분량을 1000매 정도로 잡고 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두 가지의 선택가능성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1년에 2회의 시험을 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다음으로는 지금도 논의되고 있는 분할채점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시험관리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후자가 현실적 대안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이 경우에 해결해야 할 과제는 조 편성을 달리 했을 때의 채점의 공정성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행의 2회 채점을 평균하는 방식에 1회 채점을 추가해 3회로 평균을 내면 그 오차는 현저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현재 대학입학시험의 논술채점에서 부분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2개조로 나누어 채점한다고 가정하면, 출제위원 4인을 2개조의 각 문제에 1명씩 배정하고, 채점에만 관여하는 채점위원 8명을 추가로 선정하여 각 2명씩 배정하면 문제당 3회의 채점을 평균하여 최종 점수를 낼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방법에 드는 경제적 비용, 예컨대 8인 채점인원의 추가 그리고 문제당 1인이 추가됨으로써 늘어나는 채점기간 등은 1년 2회 시험의 부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실현할 수 있는 사시1차 합격자의 증원, 출제위원의 채점부담감경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시행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사법시험의 본 시험은 2차 시험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는 본말이 전도되어 1차 관문의 통과가 관건이고, 2차는 면 과락만 하면 최종 합격할 수 있다는 이상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험생들은 1차 시험에 전력투구하고, 2차는 요약집 등으로 적당히 공부함으로써 정작 필요한 법률지식은 습득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로 되어 있다. 학생들은 공부해야 할 분량과 상관없이 기본서를 충실히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1차는 판례집을 달달 외우면 합격할 수 있으니 그만이고, 케이스로 치는 2차는 분량을 절반 이하로 줄인 요약집을 가지고 문제를 푸는 요령만 적당히 익히면 최소한 합격권에는 들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한 사람이 나중에 복잡한 공소장과 판결문을 어떻게 작성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사법연수원 교수들은 입소하는 연수원생들의 질이 너무 낮아서 실무교육을 시키는 데 적잖은 애로가 있다는 말을 벌써 몇 해 전부터 해오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자기들과 달리 대량으로 합격한 사람들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의 탓으로 돌리곤 하였다. 그러나 현행 시험제도를 보면 이 말이 쓸데없는 푸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1차부담은 최대한 줄이고 그 대신 2차 부담을 늘려라",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해결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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