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로스쿨과 새싹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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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로스쿨과 새싹비빔밥
  • 법률저널
  • 승인 2009.04.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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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의 문제점
 
(1) 젓가락과 포크
 
법률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법원에서 내린 판결이 상식에 맞아야 한다는 점에선 영미법체계나 우리가 속한 대륙법체계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 등이 속한 영미법체계 아래에서는 원칙상 상식(common sense)이 곧 법(common law)이 될 수 있지만 대륙법체계에선 원칙상 상식이 바로 법이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영미법체계와 달리 대륙법체계는 민법전을 갖고 있어서 법률분쟁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들 사이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상식이 아니라 민법에 따라 해결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재화)이나 용역(서비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 사이의 거래(去來)에서 주는 것(가는 것, 去)은 의무이고 받는 것(오는 것, 來)은 권리이다.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재화와 용역을 충당하는 여러 가지 거래유형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모아 놓은 것이 바로 민법전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서구에 못지않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생활은 누려왔음에도 일본식민지 아래에서 서구의 민법전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일상 거래에서 주고받을 것을 따로 모아 놓은 민법전이 없었다.  보통 거래를 할 때는 주는 것(의무)과 받는 것(권리)을 서로 약속하기 마련이고, 설사 거래 당시에 뭘 주고 뭘 받을 지 분명하게 정해 놓지 않아 거래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생기더라도 보통은 그 때 그 곳에서 그런 거래를 할 때 늘 하던대로 주고받으면 되므로 따로 일상거래를 유형화해서 주고받을 것을 모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따로 민법전을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오늘날 서구문명의 뿌리가 된 고대 희랍에서 과거 우리처럼 따로 민법전을 마련해 두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민법전의 모태가 된 로마법을 만들어 낸 고대 로마에서는 왜 일상거래를 유형화해서 주고받을 것을 따로 모아 둘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서쪽으론 스페인까지, 동쪽으론 인도까지 통하는 길과 숙박시설을 표시한 지도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고 고대 로마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거래관습이 서로 달라서 거래 당시에 서로 주고받을 것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경우에 거래당사자들 사이에 늘 하던대로 주고받을 경우 주고받을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툼이 끊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동아시아를 주름잡았던 광개토대왕이나 지중해를 호수로 삼고 인도에까지 이르렀던 알렉산더대왕의 왕국과 달리 로마제국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다툼을 해결한 사례가 상당히 쌓였고, 거기다가 로마에는 고대 희랍에서 발달된 학문을 익힌 지식층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사례를 분석하여 유형화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이 나폴레옹민법전을 만든 것이나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독일이 논란 끝에 민법전을 만든 것이나 대동아제국을 세우겠다고 설쳤던 일본이 민법전을 만든 것은 바로 민법이 제국의 법이라는 것을 반증해 준다.  비록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 되었지만 섬나라 일본이 그나마 로마법을 계수한 대륙법을 들여와서 민법전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를 통해 건너간 고도로 관념화된 한자문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은 섬나라지만 섬나라 영국의 법체계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한자문명을 바탕으로 대륙법체계를 받아들였고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 자리잡고 있지만 섬나라 영국의 식민지 아래에서 종주국인 영국의 영향으로 영국법체계를 받아들였다.  대륙법계에 속한 독일, 프랑스에서 직관을 중시하는 관념철학이 발달했고 영미법계에 속한 영국이나 미국에서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철학이나 실용주의가 발달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법체계와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이에 뗄 수 없는 연관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똥처럼 보이더라도 어제까지 없었던 똥같은 된장이 오늘 새로 생겼을 수도 있으므로 꼭 찍어먹어 보고 확인을 하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고방식과 똥인지 된장인지 척보면 알 수 있다는 직관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그 사회를 규율하는 법체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주체적으로 로마법에 바탕을 둔 대륙법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긴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맞는 대륙법체계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뿌린 씨앗이 맺은 열매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수천 년 세월 동안 일본은 자기의 고유한 문명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우리나라를 통해 발달된 대륙의 문명을 받아들이기에 바빴기 때문에 일본의 문화는 중국보다 우리와 훨씬 많이 닮아 있어서 우리 문화를 베껴 간 일본이 자기들에게 맞는 법체계를 들여와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지만 결국 우리에게도 맞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수천 년 간 단련된 베끼는 습성을 발휘하여 바다 건너 온 발달된 근대 서구문명을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국권까지 집어 삼켰지만 역사를 되짚어보면 우리나라는 일본을 키운 젖줄이었고 일본에서 한류는 한 순간 지나가는 열풍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흐른 도도한 물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로마법에 기초한 민법을 받아들여 마치 우리가 만든 것처럼 마음대로 고쳐 가면서 쓸 수 있는 것도 로마법 탄생의 바탕이 된 고대 희랍 사람들의 학문활동 못지않는 왕성한 학문활동을 한 우리 선조들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대륙법체계에서 민법은 단지 개인들 사이의 사법상 거래를 규율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역사상 나라와 국민사이의 공법관계가 절대권력자인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에 따라 규율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랜 역사를 가지고 개인들 사이의 사법관계[=거래]를 규율해 온 발달된 私法의 法理들이 公法關係에도 널리 쓰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민법은 공·사법을 아우르는 전체법질서에서 기본법으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일상거래을 규율하는 민법에 대한 이해 없이는 민사판결뿐만 아니라 행정법원의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 나아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재산범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사판결까지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어떤 법체계가 민법전을 갖고 있는 지 여부에 따라 그 법체계에서 법학교육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법전이 없는 미국법체계에서는 대학교육을 통해 폭넓은 상식을 쌓은 뒤에서야 비로소 대학원에서 상식에 맞는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법학교육을 시작한다.  반면 민법전을 갖고 있는 대륙법계 나라들이 대학때부터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거래에서 발생한 다툼을 해결한 결과를 담아 놓은 민법전을 가르치는 법학교육을 시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법체계의 차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한편 거래에서 다툼이 생기면 민법전이 따로 없어서 상식에 따른 합리적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미국법체계에서 합리적 사고방식을 기르는 대학교육은 바로 법학교육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다(미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민법전이 없으면서도 대학에서부터 법학을 가르친다.  오늘날 복잡해진 사회를 규율하기위해 전문화된 법률들을 제대로 가르치려고 법학교육시기를 앞당긴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본다면 지구상 주요나라들 가운데 우리만 빼고 모두 대학부터 법학교육을 시작하는 셈이다.  물론 민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짧은 시간에 가능한 일이라면 일정기간 합리적 사고방식을 먼저 기른 다음에 민법을 가르치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문제는 오랜 인류역사를 통한 거래경험을 일반화·유형화하여 담아 놓은 민법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학습능력이 뛰어난 보통사람의 경우 하루 10시간씩 5년 정도)이 걸린다는 점이다. 


민법전이 따로 없어서 문제가 된 사안 자체에서 상식에 맞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방법, 곧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는 법을 가르치는 미국식 법학교육에 비해 민법전을 통해 일상거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한꺼번에 가르치는 방법, 곧 숲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갖도록 가르치는 대륙법체계의 법학교육은 교육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고 아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척보고 아는 법을 가르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일본이 로스쿨을 도입하면서도 미국과 달리 대학에서 법학교육을 유지한 것도 선택사항이라기 보다는 법체계에 따른 현실이 반영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된다.  똑같이 로스쿨을 도입했지만 일본은 법학교육기간이 이전보다 2-3년이 늘어난 6년이나 7년인 반면에 우리는 이전보다 1년이 줄어든 3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원인을 단순히 법조문에 사용된 한자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한자를 한글로 풀어 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 견해는 일본처럼 한자사용이 일상화된 나라나 독일처럼 우리의 한자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법조문에 사용된 예가 드문 나라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따로 법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들은 그 사람이 아무리 자기분야의 전문지식이 뛰어나거나 상식이 풍부하더라도 민법전의 법률용어가 암호처럼 여겨지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아무리 쉬운 말을 쓰더라도 그 말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의미와 달리 전체법체계 안에서 다른 법률용어와 사이에서 함께 이해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면 전체법체계에 대한 이해없이 그 말을 읽고 쓸 줄 아는 것만으론 그 말이 쓰인 법조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순 없다.  나폴레옹민법전을 만들게 한 직업군인 나폴레옹이나 물리학을 전공한 메르켈 독일 총리도 따로 법률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경영학을 전공한 이명박 대통령이 고백한 것처럼 재판정에서 법률가들이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런 예는 꼭 법률용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항공기조종사들이 쓰는 영어의 의미를 변호사인 오바마 미국대통령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쉬운 단어로 된 영어라도 그 단어가 일상용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항공기조종사들끼리 약속한 의미인 전문용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법학과 신입생들에게 선생님들의 강의가 분명히 우리말인데 마치 외국어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대륙법체계에서는 법률분쟁이 생겼을 때 법조문을 무시하고 상식에 따라 해결할 순 없다.  하지만 상식에 따른 합리적인 해결책은 사람마다 그 결론이 크게 다를 수 있는 반면에 법률에 따른 해결책은 일정범위 안에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영미법체계는 법관이 어떤 사안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갖는 해결책을 찾는데 있어서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할 순 있지만 사건당사자들은 그 결론을 쉽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안정성에 문제가 있는 반면 대륙법체계에서는 법관의 재량권이 줄어드는 대신 그 사안에 있어서 결론을 일정범위에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안정성 면에선 뛰어나다.  어느 법체계가 더 우수한 지는 법체계만 놓고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체계가 속한 법공동체의 현실을 얼마나 잘 규율할 수 있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륙법계에 속한 우리나라에서 도입한 로스쿨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서독의 몇몇 주(Land)에서 영미식 로스쿨을 도입했다가 학생들의 학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온 적이 있다.  오늘날 대륙법계 나라들의 법학교육방법은 나름대로 법체계에 맞는 효율적인 교육방법을 찾아서 도달한 최선책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김치를 포기 채 밥상에 올려놓고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 가면서 먹는다고 안되는 건 아니지만 김치는 역시 부엌 도마 위에서 썰어서 접시에 담아 상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것이 어울린다.  정 포크와 나이프로 폼나게 먹고 싶으면 양식이 우리 몸에 맞는 지는 제쳐 두고라도 우선 김치와 밥 대신에 스테이크로 메뉴부터 바꾸는 것이 차례에 맞다.  우리가 도입한 로스쿨이 이름뿐인 로스쿨이라면 하나마나고 제대로 된 로스쿨이라면 우리법체계와는 맞지 않는 교육방식이다.  영미식법학교육을 하려면 먼저 법체계부터 영미식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  우리사회를 규율하는 법체계는 그대로 두고 교육방법만 바꾼다고 법체계가 달라지진 않는다.  영미법체계가 우리에게 맞는 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굳이 영미법체계를 닮고 싶으면 로스쿨을 도입하기에 앞서서 우리나라 민법부터 폐지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민법교육을 대학이 아니라 대학원에서 시작한다고 우리나라 변호사가 국제변호사가 되는 건 아니다.  민법교육의 때를 놓치면 우리법조차 제대로 이해 못하는 부실한 한국변호사를 길러 낼 뿐이지 우리법뿐만 아니라 외국법까지 능통한 유능한 국제변호사를 기를 순 없다.  오히려 우리법에 대한 교육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서 뒤에 외국법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외국에서도 변호사자격을 딴 한국변호사를 많이 길러내는 지름길이다.  영재교육이 필요한 곳은 자연과학분야만이 아니다.  법학영재교육이 불가능한 로스쿨제도의 도입이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켜낼 국제감각을 가진 법률가양성에 미칠 영향도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배워 두면 쓰임새가 많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쓸 수 있는 포크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인류의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민법 또한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제대로 익혀 두면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포크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려면 따로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젓가락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사람이 포크를 쓰는 데 따로 큰 노력을 들일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민법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서 숲을 보는 눈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는 눈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변호사들이 유능한 미국변호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적어도 미국변호사가 유능한 우리나라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훨씬 크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 로스쿨의 도입으로 3년 동안 날림으로 배운 한국변호사들에게 유능한 국제변호사가 되길 기대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로스쿨수료증이 변호사자격증이나 다를 바 없다면 기대가능성은 더더욱 줄어 들 수밖에 없다.  제대로 가르쳐만 놓으면 굳이 변호사자격증이 없어도 제 몫은 하지만 변호사가 가진 것이 변호사자격증뿐이고 우리 법원의 판결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런 변호사와 법률상담을 하는 것은 동료 의사들의 처방전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에게 우리 몸의 건강과 생명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리처럼 대륙법계에 속한 일본과의 법률분쟁이나 갈수록 거래규모가 커져가는 중국과의 법률분쟁에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제대로 지켜내려면 우리법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데 수험기간은 제외하고 법률가가 되기 위한 정규교육만 따지더라도 법학교육 4년과 사법연수원교육 2년을 합쳐 6년 동안의 교육과정이 로스쿨 3년으로 반토막이 나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의 의뢰인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2) 대학高
 
고등학생들은 오로지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괜찮은 대학에 가기 위해 내신성적을 관리하면서 수능시험에 목을 맨다.  로스쿨의 도입으로 이제 대학교도 고등학교 못지않은 붕어빵공장으로 탈바꿈할 조짐이 보인다.  대학 4년 동안 보다 좋은 로스쿨을 가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면서 법학적성시험(LEET)에 목을 맬 것이다.  이제 대학교에 입학해도 등록금이 비싸졌고 교복을 입지 않는 것 말고는 고등학교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대학교는 학문의 전당이라기보다 로스쿨에 가기 위한 통과과정에 지나지 않고 자기의 전공에 대한 애착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교에서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있다고 해도 학생들이 받아들일 마음이 없고 4년간 정성들여 가르쳐서 이제 귀가 트일만 하면 로스쿨에 간다고 훌쩍 떠나 버리면 학문을 업으로 삼아 한 삶을 불태우는 학자들로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지금도 전공공부보다 사법시험에 몰두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로스쿨의 도입으로 이제 상황이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법학전공자에 비해 불리한 여건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비법학전공자들은 사법시험에 도전하기가 쉽기 않았지만 이제 누구나 같은 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보다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 누구나 쉽게 로스쿨을 목표로 삼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스쿨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 준비와 영어공부에 밀려 정작 전공공부에 쏟을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위기를 선언했던 인문학은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해 법학교육이 유지되는 대학에서의 법학교육 또한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도 정작 법률가가 되는 길은 거의 막혀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전공이 의미를 잃고 단지 학점 따는 공부에 그친다면 더 이상 대학은 대학이 아니고 대학생은 대학생이 아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교문 밖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한 학점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대학도 학생들의 관심에 부응하여 학점을 퍼주다 보니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학점이 부풀려져 있어서 학점은 이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가늠하는 척도로서의 기능을 상당부분 잃어 버렸다. 


학생들의 감수성과 학자들의 전문지식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우리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가야 할 대학에서 사회문제는 더 이상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고 대학생들은 우리사회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리가 아니라 오로지 취직을 위한 학점만을 추구함에 따라 학문의 전당은 학점의 전당으로 바뀌어 버렸다.  대학에는 대학생들에게 학점을 보장해 주는 지나간 문제와 그 해답이 있을 뿐 오늘의 문제와 곧 닥칠 내일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로서 인식조차 안되고 있다.  학내선거에서도 춤과 노래로 눈과 귀를 자극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더 이상 유세를 들으려고 모이지도 않고 중·고등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가 우리사회의 문제해결을 외칠 때 대학생들은 교문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연예인 불러 놓고 학점을 추구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다. 


우리사회의 문제가 더 이상 문제로서 인식조차 안 된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이제 우리가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만다. 


로스쿨의 도입은 불 난 대학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그 동안 초·중·고등학교의 주입식교육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숨을 쉬던 대학교육마저 숨이 끊기고 대학교는 이름만 대학교이고 이제 고등학교와 다름없이 되어 버릴 것이다.  조만간 법학적성시험은 전공을 불문하고 대학생들의 졸업시험이 될 것이다. 
 
(3) 새싹비빔밥 - 미드필더, 대학원생이 사라진다
 
대학의 경쟁력은 교수들보다 아직 잠자고 있지만 곧 빛을 낼 샛별들인 대학원생에 달려 있다.  대학원생들을 이끄는 교수가 축구의 골잡이라면 대학원생들은 미드필더들이다.  축구의 주도권을 골잡이들이 아니라 미드필더싸움에서 결정되듯이 대학의 경쟁력도 얼마나 뛰어난 대학원생들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다 보니 대학4년 동안 웬만한 노력을 쏟지 않으면 졸업 후 세상에 나와 바로 돈이 되는 지식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저 4년 동안 전문지식을 얻기 위한 기초지식을 쌓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가슴을 설레게 한 푸른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한 학생들로 붐비게 될 로스쿨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새싹들을 비벼 먹을 새싹비빔밥이다.  우주가 팽창하는 것을 관측하여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자신의 이론을 고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허블도 대학졸업 후 안정된 직업을 바라는 부모의 뜻에 따라 로스쿨에 진학했던 전직변호사였다.  그래도 허블은 변호사 일을 팽개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보다 여건이 안 좋은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변호사의 길로 접어 든 뒤에 다시 자신의 꿈을 좇아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  허블이 처음부터 자신의 꿈을 따라 갔다면 인류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때문에 외국대학으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새싹들을 빼앗기던 우리나라 자연과학분야도 이제 여태껏 보지 못한 거대한 블랙홀 로스쿨을 만나게 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잘라먹을 로스쿨이 말아먹을 대학은 바로 우리의 미래다.  한 번 말아먹은 대학을 다시 일으켜 세워 새싹들을 길러낼 때까지 세상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새싹을 비벼 먹고 대학을 말아먹은 로스쿨이 대한민국까지 말아먹을 날도 멀지 않았다.


눈앞의 경제위기는 요란하게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지만 곧 닥칠 교육위기는 보이지도 않는 땅 밑에서 지금 소리도 없이 뿌리를 갉아먹고 있다.  바람에 부러진 가지에서도 봄이 오면 새순이 돋지만 뿌리 없는 나무는 봄이 오면 겨우내 멀쩡했던 가지도 말라버린다.     
 
(4) 닫힌 사회로 가는 첫걸음, 로스쿨
 
로스쿨을 마치는 데 필요한 1억9천만원(공부하느라 쓸 돈 1억원+3년간 못 번 돈 9천만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1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없어 금쪽같은 아들딸이 하고 싶다는 공부를 못 시키는 부모마음이 신분사회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길동이의 설움 못지않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워도 큰 부잣집에 태어나지 않으면 이제 법률가가 되기 위한 공부는 하기 어렵게 돼 버렸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업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은 제쳐 두고, 나라 전체로 보더라도 4860만 명 가운데서 뽑은 법률가와 486만 명 가운데서 뽑은 법률가는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로스쿨을 마치는 데 필요한 1억 9천만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만 법률가를 뽑아 우리의 국익을 지키게 하는 것은 키190cm이상인 사람들 중에서만 축구국가대표를 뽑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국과 일본도 꺽다리 한국대표들에게 코웃음을 칠 게 뻔하다.  축구에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키가 큰 건 아니듯이 법률가 소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부잣집에만 태어나란 법이 없기 때문에 돈으로 법률가의 문턱을 만드는 건 우리나라 전체 법률가들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법률가가 되는데 많은 돈이 들어가면 빚을 내서 겨우 법률가가 된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리 부잣집에 태어나서 법률가 된 사람이라도 본전 생각이 나서 돈을 좇게 된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법률가들이 돈에 얽매이면 돈에 의해 법이 왜곡되기 쉬워진다.  돈에 의해 왜곡된 법이 사회를 다스리면 겉으론 법에 따라 움직이는 법치사회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돈에 따라 움직이는 돈치사회인 것이다.  돈 없는 사람들의 소리는 이제 메아리를 들을 수 없게 되고 돈 없는 사람들의 설움도 점점 쌓여만 간다.  해방 후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출범함에 따라 비록 궁(宮)은 비었지만 신분사회의 꼭지점인 황제와 함께 사라졌던 길동이의 설움이 이제 못 가진 자의 설움으로 새로운 모습을 띠고 태어나게 된다.  열린사회를 향해 마음껏 달려 왔던 대한민국은 신분사회의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닫힌 사회인 돈치사회를 향해 줄달음치게 된다.      

 
2. 문제점 해결방안의 모색
 
현행 로스쿨 제도는 대학 4년 동안 학점관리하면서 영어공부하고 법학적성시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학생들이 로스쿨 3년 과정을 마치고 나면 각자 전공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과 실무지식을 갖춘 전문법조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4년간 전공공부만 몰두해도 전문지식을 얻기보다는 전문지식을 얻기 위한 기초지식만 겨우 얻을 수 있는 현실이나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4년 동안 방학도 없이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휴학을 밥 먹듯해도 실무지식은 커녕 우리나라 법과 판결을 이해하기 위한 법률지식을 얻기에도 벅찬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머리가 좋고 적응력이 뛰어나니까 로스쿨 제도도 곧 정착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목소리가 제도는 좋은데 현실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푸념으로 바뀔 날도 멀지 않았다.  지역균형개발이라는 로스쿨도입명분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의 국민들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로스쿨법을 민생법안이라며 날치기로 통과시킨 정치인들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금 법학교육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은 정체불명의 로스쿨을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들여온 정부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로스쿨을 미끼삼아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 보겠다고 교육현실은 무시한 채 로스쿨도입에 찬성했다가 로스쿨인가를 받지 못하거나 로스쿨정원이 적게 배정되자 떡밥이 적다고 투덜대는 대학들 책임도 적지 않다. 


전문법조인을 만들려면 법조인들에게 전문지식을 갖도록 만들거나 전문가들에게 법률지식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기 위해 이제 막 기초지식을 겨우 얻었을까 말까 한 새싹들은 데려다가 법률지식과 실무지식을 짬뽕하여 짧은 기간 동안 날림으로 가르치려 들다가는 우리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는 새싹을 잘라 버릴 뿐만 아니라 이름만 변호사일 뿐 우리법과 판결에 대한 이해수준은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는 법조인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전문법조인을 만들려면 우선 제대로 된 법조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법과 판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현실을 반영하여 4년의 법학교육은 5년으로 늘려야 한다.  몇몇 대학의 건축학과의 경우 현실에 맞게 교육기간을 5년으로 늘린 것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법조인들에 대한 전문지식교육은 강제하기보다는 당분간 법률시장에 맡겨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로스쿨은 전문가가 되려는 새싹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데려다가 법학교육을 시켜야 한다.  입학자격을 엄격히 제한하여 의사, 한의사, 기술사, 회계사 등 전문자격증이나 박사학위 취득 후 일정기간 이상 전문분야에 종사하여 제대로 된 전문지식을 익힌 사람들을 데려다가 3년 간 법률지식을 가르친 다음 변호사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 


현재의 사법시험은 유지하되 응시자격은 법학과 졸업생으로 한정해야 한다.  다만 법치사회에서 법률이 종이 속의 글씨가 아니라 실제 법에 따라 사회가 움직이려면 법률지식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넓혀야 하므로 법률지식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고려하여 법학과 정원은 폐지되기 전의 정원이나 현재의 정원의 20퍼센트 정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법학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법시험과 로스쿨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변호사시험의 정원은 현재 잠정적으로 변호사 배출정원으로 합의된 1500명과 각 시험응시대상의 정원 및 현재 사법시험합격자의 법학전공자와 비전공자의 비율 등을 감안하여 사법시험 1200명(80퍼센트), 변호사시험 300명(20퍼센트)으로 나누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올해 로스쿨 입학생의 경우는 입학 당시 일정비율 이상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으므로 신뢰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로스쿨을 졸업하거나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사법시험 응시자격도 함께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시법시험 합격생이나 변호사시험 합격생 모두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실무교육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로스쿨이 아닌 현행 법과대학의 석·박사과정 이수를 위한 일반대학원도 그대로 존치시켜 학문으로서 법학 발전의 길을 열어 둬야 한다.  그리고 로스쿨 교육내용과 법과대학 교육내용이 겹치는 경우 굳이 따로 수업할 필요 없이 함께 수업은 받되 평가는 따로 한다면 주어진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쿨 입학생의 경우 변호사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자기분야의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로스쿨낭인들이 생겨날 염려는 없다.  그리고 설사 변호사자격이 없더라도 제대로 공부하여 우리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면 각자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데도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도움을 받으리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로스쿨을 도입하는 계기가 된 사법시험제도에 대한 개선책이다.  우선 5년으로 늘어난 법학교육기간이 재학 중 무더기 휴학사태는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늘어난 학비부담을 덜어주려면 늘어난 교육기간이나 늘어난 정원을 통해 더 거둬들이는 등록금 수입을 감안하여 각 대학의 현재 등록금의 80퍼센트 수준이하로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경우 조기졸업제도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법조인 양성취지에 부응하기 위해 법학과 학생들에게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의무화한다면 법조인이 된 뒤에도 전문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기초지식습득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법학에 적성이 맞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진로변경에도 도움을 줘서 사법고시낭인들을 미리 막는 효과도 아울러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나치게 오랫동안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응시횟수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사법시험 실시횟수를 늘려 수험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준다면 수험기간 단축뿐만 아니라 적성에 맞지 않는 수험생들이 스스로 판단에 따라 미련 없이 조금이라도 빨리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헌판결로 시행되지도 못한 채 폐지된 1차시험 4회응시제한제도 대신에 1차시험 1년4회실시제도를 도입했다면 시험 보다가 지쳐 계속 공부하라고 붙잡아도 뿌리치고 스스로 딴 길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잠정적으로 사법시험을 1차, 2차 모두 1년에 2회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법시험 합격자의 평균연령이 유달리 높은 우리나 일본을 제외한 세계 주요나라들은 거의 대부분 1년에 2회 이상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시험실시횟수를 늘리면 당장 합격자 평균연령을 끌어내리는 효과뿐만 아니라 2차시험 분할채점으로 인한 수험생들의 불이익도 막을 수 있다.  아무리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채점한다고 해도 답안에 쓴 내용이 객관적 기준에 해당하는지는 채점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채점해도 채점기간이 길어지면 채점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른 채점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이 비슷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법시험 선발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인간적인 채점환경을 만들기 위해 채점분할제도를 도입했지만 채점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시험분할제도가 더 바람직한 건 분명하다.


그리고 법학과목이수제도를 도입하면서 학원에서 취득한 학점도 인정한 것은 제도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학생들의 학원의존도가 높을수록 학교선생님들의 시름 또한 깊어진다.  학생들의 높아진 학원의존도가 로스쿨이라는 무리한 제도의 도입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험은 객관적인 평가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 분명해야 하므로 현행법률이나 과거의 판결이 시험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서 시험준비는 과거지향적이고 학원교육 또한 과거지향적이다.  반면에 대학교육은 단순히 학생들의 시험준비를 도와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사회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가야 하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이다.  이처럼 학교와 학원의 교육방향은 뚜렷이 구별된다.  무엇보다 학원교육의 내용은 대학의 학문활동의 성과물이다.  그리고 학원교육의 방향은 시험출제위원으로 들어가는 학교선생님들 손에 달려 있으므로 학생들의 학원의존도가 높다고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사법시험응시대상을 법학과 졸업생으로 한정하면 이런 문제점은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다.  비전공자의 경우는 편입이나 재입학 또는 방송통신대학을 통해 시험응시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므로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맺음말
 
다 먹고 소화시키지도 못하는 음식을 잔뜩 주문하게 하고서 눈요기값으로 비싼 음식값을 내도록 강제한다면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  덧셈·뺄셈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 데려다 놓고 짧은 기간에 미분·적분뿐만 아니라 대학수학까지 가르치겠다고 하면서 대학등록금까지 받는다면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3년 동안 법조인이 되기 위한 법률지식뿐만 아니라 실무지식까지 가르쳐서 실무에도 능통한 전문법조인을 만들겠다고 다양한 전문과정까지 개설해 놓고 그 비용을 정원도 얼마 안 되는 학생들에게 나눠서 부담시키면 학비가 비쌀 수밖에 없는 반면 학생들은 그 과정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도 없다.  

 
지금 로스쿨에 개설된 과정을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제대로 소화해 낼 정도로 법학에 소질이 있는 학생이라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법학교육을 받을 경우, 대학 졸업 후 로스쿨 3년 마치고 변호사시험 합격할 때까지 들이는 시간과 돈이면, 대학 재학 중에 사법시험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에 미국 가서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충분히 딸 수 있다.  결과만 놓고 볼 때 우리나라 로스쿨을 마치고 우리나라 변호사자격증만 겨우 가진 사람과 우리나라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다음 미국 가서 로스쿨을 마친 후 미국변호사시험까지 합격하여 두 나라에서 변호사자격증이 있는 사람 가운데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당면할 법률문제를 누가 더 잘 해결해 줄 수 있을 지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문제는 현행 로스쿨제도가 이대로 정착되면 부실한 법조인양성에 그치지 않고 대학교육전체를 황폐화시켜 우리나라 사회와 경제의 근간이 될 전문인력 양성에 치명상을 입힌다는 점이다.  로스쿨도입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로스쿨이 우리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기보다는 오로지 변호사 수에만 촛점을 맞춰 여러 세력 간에 줄다리기를 하다가 지난 정권말기에 대선을 앞두고 시간에 쫓겨 얼렁뚱땅 법안을 통과시킨 데 문제의 원인이 있다. 


교육제도가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지금 사교육비총액이 공교육비총액을 넘는 기현상이나 자녀교육비 무서워서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감소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도 10년 쯤 전에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학원과외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려 학원과외를 원칙적으로 허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생을 놓고 비교해 보면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크게 학력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학원이 활개를 치는 것은 아마 학원에서 학교교육과정보다 조금 더 앞당겨서 가르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학원비 때문에 학부모들은 허리가 부러지고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공부할 시간을 잃어 버려 오히려 대학교육에 대한 적응력은 옛날보다 더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로스쿨이 10년 뒤, 20년 뒤 우리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지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로스쿨은 노무현정부가 만든 제도이고 우리는 만들어 놓은 대로 시행만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더라도 현정부가 훗날 역사적 책임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 10명중 9명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법치사회를 돈치사회로 바꿀 뿐만 아니라 대학교를 고등학교로 만들어 버릴 로스쿨법(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민생법안이란 이름으로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무시한 채 날치기 통과 되었는데도, 그래도 여야합의로 다수의원이 동의했으니 일단 두고 보자고 합헌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나 17대 국회의 작품이니 우리는 상관 않겠다고 뒷짐지고 있는 18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학생들로부터 찬찬히 생각하며 공부할 시간을 뺏는 대신에 비싼 등록금만 떠안긴, 정체불명의 한국식로스쿨제도를 두고서, 그래도 큰돈을 들여 전문과정까지 개설해 놓고 이름도 로스쿨이라고 붙여 놨으니 우리 법조계도 곧 전문화·국제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착각이었다고 확인하는 데는 지금 갈팡질팡하는 법학교육을 보건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진 않다.  더 늦기 전에 사법시험제도 개선을 통해 합격자 평균연령을 낮춰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법을 제대로 배울 시간을 마련해 줌으로써 법조인력이 국제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한편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데려다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교육을 시켜 전문지식을 갖춘 법률가들을 길러 내는 것이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그나마 대한민국이 뒷걸음질 치지 않고 살아남아 다른 나라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된다. 

 

장형식(민법학석사, muris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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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자 2015-11-16 17:02:48
정확한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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