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도전 - 전 이렇게 준비했어요] 고봉민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합격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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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도전 - 전 이렇게 준비했어요] 고봉민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합격수기
  • 법률저널
  • 승인 2009.04.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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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현실을 만드는 씨앗”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과 풍부한 독서경험이 주효
자만심에 안일하게 준비해 왔던 점, 후회도 남아

 

고봉민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Ⅰ. 시작하며 - 감사인사

 

 항상 주위로부터 은혜를 입으며 살아 왔음에도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글의 성격과 약간의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수기를 쓰는 기회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가장 먼저 나를 위해 헌신하시는 부모님과 동생, 일가친척 분들, 부모님의 친구 분들, 어릴 시절부터 돌보아 주시는 청운학원 선생님들, 가족처럼 아껴주시는 재훈, 창영 형님 및 많은 형님들과 한일고 동문 형님들, 학부시절 졸업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성균관대학교의 교수님들과 교직원분들, 충북학사의 선생님과 어머님들, 우학재단, 언제나 마음을 함께해 온 친구들, 그밖에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충남대학교에 있는 많은 동기 분들에 비하여 학식과 인격, 경력, 경험, 재능 등 여러 방면에서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수기를 쓰게 되었다. 한편에 이 글로 인하여 다른 동기 분들에게 누를 끼칠까 하는 마음에 부담을 안으며, 다른 한편으로 수기를 쓸 기회를 양보해 주신 우리 동기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서 특별전형을 통하여 로스쿨에 진학하였다. 이 글을 통하여 로스쿨을 고비용이라는 이유로 의기소침해 있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서 꿈을 잃지 않고 꿋꿋이 공부하는 분들에게 웃음과 힘을 드리고 싶다.

 

Ⅱ. 2008년의 초가을까지의 이야기

 

1. 入山行功 중의 변심 - 고시생의 엉뚱한 꾀

 

 나는 원래 2008년 2월 졸업을 한 후부터 무늬는 나름대로 고시생이었다. 로스쿨에 응시할 결심을 할 때만 하여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여자친구를 대신하여 나의 연인이 되어 온 酒님 등의 속세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의 한 구절처럼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故敎流水盡籠山)’ 고향인 충북 보은 속리산의 중턱에 있는 암자에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둘러친 물이 날이 가물어서 효과가 없었는지 LEET시험 접수에 관한 정보가 흘러들어 왔다.

 

 게으른 자는 꾀를 파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 정확히 들어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꾀를 파지 않고 무턱대고 입시에 목을 매는 것은 철인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여튼 나는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하여 잔머리를 굴렸다. LEET를 응시하려고 보니 내가 가진 것은 2008년 5월에 사법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받아 놓은 낮은 토익점수와, 說로 다닌 학부에서 설레발로 만들어 놓은 처절한 학점이었다. 그러나 2008년 2월의 예비 LEET를 자체 채점한 점수에 혹한 나머지 절에서도 로스쿨에 대한 번뇌를 떨치지 못한 채 바늘구멍보다 조금은 큰 팔뚝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로 하였다. 원래 사법시험을 준비할 당시에 10개월간 월 200시간 씩 약 2천 시간의 공부량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였다. 그 중에 LEET에 50여 시간, 응시원서(자기소개서 등) 제출 관련한 일에 약 20시간, 면접준비 등에 30시간 정도를 산정하여 약 100여 시간, 즉 15~20일을 할애하기로 한 것이었다.

 

 문제는 의외로 원서접수 전에 발생했다. 부모님께서 LEET응시료 거금 23만원에 놀라신 것과 사법시험이 어려워서 로스쿨로 전향하는 것이라는 실망에 가까운 걱정을 내비치신 점부터 일이 꼬였다. 저소득계층을 위한 무이자학자금대출과 장학금 등으로 등록금을 충당하여 빚을 지고, 생활비도 아르바이트 등으로 충당하면서 근근이 학부를 마쳤는데, 그 비싸다는 로스쿨은 합격을 해 봐야 등록금을 대 주기는 커녕 내 명의의 빚만 늘 것이라는 걱정도 크게 작용하였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2008년 2월 예비시험을 근거로 한 합격가능성에 관한 설명과 특별전형을 통하여 진학할 경우 전액장학생이므로 등록금 부담이 없다는 설명, 그 당시 준비 중이었던 사법시험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로스쿨 입시를 준비할 수 있다는 설명, 형편상 신림동에도 못 가고 독학하고 있었지만 로스쿨에 진학하면 지도교수님 아래에서 배울 수 있다는 설명, 실무수습 프로그램을 통하여 재학 중 생활비 조달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설명, 대학원의 석사과정이기 때문에 훗날 교수 쪽의 진로가 열릴 수 있다는 설명, 백수가 아닌 학생 신분이 된다는 점과 그로 인하여 부모님께는 주변의 부담스러운 발언들이 적어질 것이라는 설명(예컨대 ‘뉘집 자식은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 하고 있댜~’ 참고로 충청도는 어미가 보통 ‘~~ㅑ 혹은 ㅕ’이다) 등등 말 그대로 조금 그럴 듯한 이유는 다 붙여 가며 설득한 끝에 결국 23만원의 응시료를 쟁취하여 LEET에 응시할 수 있었다. 백수의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20대 후반에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이 복잡 미묘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LEET시험 - 안일함에 대한 아쉬움

 

 LEET 준비는 그다지 하지 않았다. 최소시간투자라는 처음 목표대로 언어이해와 추리논증은 下山하여 LEET모의고사를 두 번 치른 것을 포함하여 총 공부시간 40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안타까운 점은 LEET에 대하여 너무 안일한 태도를 가지는 바람에 4권이나 사 놓은 문제집도 반 정도는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LEET 공부 때문에 사 놓고 다 못 본 전공서적이 더 비싸기에 그게 더 아깝긴 하다. 그래서 지금 로스쿨 전공 수업에서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쓰는 사람보다 ‘깨끗한’ 구판을 쓰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구판과 신판이 내용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결코 돈이 없어서 신판을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 못하겠다.

 

 LEET 공부를 하다가 느낀 것은 내가 가진 성격이나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이 은연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수학, 과학, 논리, 퍼즐 등의 책을 즐겨 보았었다. 덕분에 시비 거는 습관, 즉 말꼬리를 잡는 습관이 있다. 말꼬리 잡는 것도 일종의 재주이다. 시비를 걸기 위해서는 많은 근거를 대야 한다. 근거를 대기 위해서는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해야 한다. 때로는 오류도 불사해야 한다. 오류를 이용할 때에는 오류를 포장하기 위한 기술도 익혀야 하는데 이것은 궤변으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궤변을 하다보면 타인의 궤변도 보인다는 것이다. 평소에 인터넷이나 신문 기사만 보면 시비를 걸고 싶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연습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논술은 두 번 써 보았다. 하나는 2008년 2월 예비시험 문제였고, 하나는 EBS 논술 예상문제였다. 첨삭은 받아 보지 못 하였다. 산속에서 말벗이 되어 준 고양이와 너구리조차 이럴 때는 나를 외면하였다. LEET의 논술의 유형이 학부 시절 목차를 세분하여 답안지를 쓰는 연습을 하는 법학사의 사고방식에 유리하다고 속단하여 시간 투자를 적게 하여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우습게 본 것이다. 실제 글을 쓰는 것의 어려움을 몰랐던 까닭에 범한 어이없는 실수였다.

 

 실제 LEET 시험을 치른 직후 가채점 결과를 보고 내 점수가 잘 나온 것인 줄 알았다. 2008년 2월 예비시험과 거의 비슷한 점수가 나와서 2009의 표본집단이 보인 점수분포와 유사한 점수대를 생각하였다. 특히 추리논증에서 시간 부족으로 3번으로 통일해서 찍어 버린 3~5문제 중에 2문제 정도가 운도 좋게 맞아 버려서 운도 따랐다며 좋아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잘 본 것이 아니었다.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상위 5%는 나오지 않겠나 하는 배부른 기대에 비하면 감지덕지할 점수일지 모르지만 원래 베짱이는 공짜 밥을 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특별전형을 믿었기 때문에 리트의 애매한 점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전형과 면접에서 점수를 보충하면 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속편하게 살고자 걱정거리에 관한 신경을 끄는 것은 나의 생존방식이다.


Ⅲ. 입시 - 소중한 경험

 

 지난 10월~1월은 인생의 3분의 1을 살아온 동안 가장 마음 졸여 보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산에서 지냈던 기간과 함께 평생 가장 속 편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1. 서류 전형과 면접 스터디

 

 면접이라고는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나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성균관대에서 졸업생도 포함하여 면접 준비반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하산하였다. 그리고 상경하여 고시원 총무를 하면서 연을 쌓아 줄곧 많은 도움을 얻고 있는 고시원장(어감이 이상하지만) 형님께 다시 신세를 졌다. 때마침 전국 검사 스피치 세미나가 학교에서 열려서 패널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찬반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는 세미나에서 공창제(公娼制)를 주제로 한 토론을 하는 중에 토론자 한 분이 불참하셨고, 운 좋게도 내가 토론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상대방과 논쟁을 벌이는 과정은 면접의 실전 연습이었다. 면접 준비반에 합류하면서 스터디라는 것도 사실상 처음 해 보았다.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면서 그것 자체가 공부가 되는 즐겁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우리 스터디원들을 생각하면 피식피식(원래 이렇게 웃음) 웃음이 나오곤 한다.

 

 스터디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시간이 부족하여 시사 문제에 관한 검토와 토론보다는 면접에서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질문을 위주로 한 연습이 이루어졌다. 충남대의 자기소개서는 스터디 이후에 제출기간이 도래하여 스터디원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면접 때 입고 나갈 복장을 준비하여 실제 면접 분위기로 소위 각을 잡고 연습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2. 면접과 합격자발표

 

 내가 실제 면접을 잘 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못 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면접 시에 받았던 질문과 나의 답변은 지금도 거의 기억한다. 글의 분량 상 모두 이야기하고 독자여러분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없음이 아쉽다. 면접에서는 평소 나에 관하여 타인에게 솔직히 표현하였던 습관과 주변 친구들과 논쟁에 가까운 대화를 즐기던 습관이 도움이 되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통하여 보다 많은 사람을 접하였던 경험과 학원보조강사를 하면서 타인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여야 했던 경험 그리고 학부 시절에 발표수업 및 토론수업에 관심을 가진 것이 면접스터디와 더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띠동갑에 가까운 형님들과 술을 마시곤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합격자 발표가 난 당일에 부모님께서 나보다 더 마음 졸이셨던 모습과 성균관대에 불합격한 소식을 먼저 접하고 실망하시면서도 나를 더 걱정해 주셨던 모습과 충남대에 합격한 소식을 접하고 크게 안도하시며 기뻐하셨던 모습이 기억난다.


Ⅳ. 그 이후, 현재 - 正念

 

1. 휴식 - 그러나 낭비

 

 면접 이후로 정말 실컷 놀았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충남대와 성균관대 모두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면접 준비과정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준비도 부족하였고, 당시의 법안은 로스쿨 재학생의 사법시험 응시는 사실상 불가능한 쪽이었기에 사법시험은 응시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충남대에서 1월부터 시작한 프리로스쿨 과정에 참여할 때에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자만하며, 말 그대로 광활한 충남대 캠퍼스를 유유자적하며 겨울의 풍취를 즐겼다. 특화된 법률가를 지향하며 출발한 로스쿨 제도 자체에서 법학사라는 밋밋한 배경은 타학과 출신자보다 더 많은 노력을 요하는 요소임을 잠시 망각한 탓이다. 로스쿨에 응시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합격 후에서 입학까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2. 꿈은 현실을 만드는 씨앗 - 웃으며 보내는 오늘

 

 지금 나는 평생 내가 가져본 중에 가장 크고 좋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1년을 보장해 주는 기숙사의 방이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비싸서 친구의 지원도 받고, 무리수를 뒀으니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서 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즐겁기만 하다. 이제부터는 즐겁게 살기로 한 탓일까? 아니면 백수생활 1년에서 벗어난 까닭일까?

 

 선생님(나는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좋다)들의 배려와 열정에 감사드린다. 학부 시절 수백명이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로스쿨에 와서 답안지를 하나하나 검토해 주시는 선생님의 세세한 가르침을 받으니 대학원에서 깊은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던 지난 20대 초반의 마음이 되살아난다. 법학을 처음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무척이나 빠르게 적응하는 동기들과 그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 모두가 살아있는 자극이 되어 나의 마음에 열의를 채워준다.

 

 평소 버릇처럼 거울을 보면 한 번씩 웃어 본다. 씨익~. 충남대의 봉사활동 동아리에 가입하였다. 주변을 향한 나의 작은 웃음이 나비가 되어 사람들을 돌고 돌아 웃음의 태풍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웃는다. 작년에 산에서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해 놓고는 겨울동안 놀면서 다시 잊어 버렸던 正念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새겨진다.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의 마음을 바르게 다잡아 나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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