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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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03.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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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옥 시인, “산은 뿌리를 숨겨준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봄기운이 만연하다. 예년보다 봄꽃이 열흘 가까이 앞서 피리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다. 생명은 신기한 것이라, 철이 되면 저절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이 따스한 봄기운 사이로 세상은 온통 새 생명들의 움틈으로 야단이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둡고 음습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는 경제공황에 버금가는 주식가격 폭락과 실물경제 침체로 좌불안석이다. 구조조정과 실직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일에 대한 불안감에 쌓여있다. 그렇지만 이 어려움은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다. 그 사이에 죽지 않으면 살아남을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현실을 산 자의 입장에서는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겸손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인 김현희가 “나는 가짜가 아니다”며 부산 해운대 벡스코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북한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준 다구치 야에코씨의 가족과 범행 후 22년만에 공개면담을 가진 것이다. 북한에서는 다구치씨가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의 무덤은 제방유실시 떠내려갔다고 주장하는데 대하여, 그녀의 가족들은 아직 그녀가 북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며 납북자생환운동을 계속 전개하겠다고 한다. 김현희는 다구치씨가 살아 있었음을 증언한 마지막 증언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은 김현희의 말에 희망을 걸고 다구치씨의 생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지만 왠지 무망해 보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인을 납치해 남파간첩을 위한 일본어 교사로 활용하였다니 북한이야말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김현희를 보면서 죽인 자는 살고, 죽은 자는 말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간의 군 통신선이 끊기더니 북한의 인공위성발사발표를 둘러싸고, 한미간에, 남북간에, 북미간에 여간 신경전이 아니다.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은 인공위성이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이므로 발사 즉시 요격하여 격추시킬 것이라고 강경파들이 벼르고 있는 사이로 미국의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장이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은 인공위성이라고 한 발언이 다시 또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쪽은 미사일이니 격추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인공위성이니 격추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 강온파간의 내부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부산에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가 정박 중이다. “키 리졸브 한ㆍ미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기 위하여 머나먼 한국까지 온 것이다. 활주로의 길이가 332미터에 달하고 선체의 높이가 20층 빌딩에 맞먹는 거대한 항공모함, 축구장 세 배 크기의 비행갑판에는 전투비행기 및 조기경보기 호크아이 등이 약 80여대 탑재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력선이다. Key-Resolve훈련이라고 하니 무언가 분쟁이 풀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북한은 위와 같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자위권 차원에서 인공위성발사실험을 강행하겠다는 것이고, 한미측은 그러한 발사가 유엔안보리결의 제1718호 위반이라고 반박하고 있으니 해결이 아닌 반목과 갈등구조만 증폭되고 있다. 그게 또 인간의 한계가 아니겠는가?


그런 악다구니 싸움을 보면서 참으로 시시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시시할 뿐이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일 뿐이다. 밥 한 그릇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민초들의 삶의 입장에서는 거대한 전쟁의 전초전을 방불케 하는 신경전을 벌리고 있는 나랏님들의 행태가 왠지 낯설고 어설프다. 미국도 속으로는 제 나라 백성의 한 그릇 밥을 해결하지 못해, 제 나라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해 넘쳐나는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요란스러우면서 북한의 미사일발사가 이러니저러니 한다. 다 시시한 일이다. 어디 인간이 하는 일치고 위대한 일이 얼마나 있으랴마는 제 앞가림이나 제대로 했으면 싶을 뿐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0일 오바마 미국대통령을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났다. 세계평화와 빈국들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 모양이다. 미국이 국내경제불황으로 정신이 없다보니 외국원조에 정력을 쏟을 여력이 부족하게 되고, 그 사이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들의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인간의 집단적 어리석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전쟁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 그것의 10분의 1이면 해결할 수 있는 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안정옥 시인의 “산은 뿌리를 숨겨 준다”라는 시를 읽는다. “산이 버섯처럼 돋아났다 산 밑엔 태아처럼/또 하나의 거꾸로 된 산이 박혀 있다/골짜기에 잠기지 않는다 다정함도 없었다/나무뿌리들은 비틀어졌다 산은 그걸 숨겨/주는가 그러면서 조그만 벌레처럼 느긋하다/나는 굴참나무 아래에서 앞당겨 생각한다/어렵게 오르면 산은 함께 할 것 같이 보인다,/그러나 고립은 무수한 발톱에 불과하다/산의 어깨쯤에 다가가면 숨 들먹이는 소리/듣는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기에/이제 고개 숙인 채 산의 발바닥을 조심하며/내려간다 한동안 고개 숙여야 산은 사람을/보내 준다 뒤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돌아보면 자신을 산에 붙박아 놓을 것 같다” (안정옥, 산은 뿌리를 숨겨 준다 전문, 시집 “아마도”에 수록, 종려나무 간).


“나는 굴참나무 아래에서 앞당겨 생각한다”는 시인의 말을 자꾸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어렵게 오르면 산은 함께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순진할 만큼 천진난만하다. 아니 엄청나게 기교적이고 계산적이다. 넘어설 수 없는 저 경계의 벽을 건너뛰면 그곳에 함께 할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보지만, 결국 그곳에 들어서면 “고립은 무수한 발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시인은 이미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삶의 모습도 그와 같지 않을까? 거대한 산은 비틀어져 있는 나무뿌리들을 어디에 감추었는지 알지 못하게 감추고서 시치미를 뗀 채 우리를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우주의 섭리가 그러하다. 아등바등 살면서 비틀어져 있을 대로 비틀어져 있는 우리 인간들을 감싸 안고 더불어 살아갈 것을 소망하고 있지만 우주, 신의 바람과는 달리 “산의 어깨쯤에 다가가면 숨 들먹이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그게 인간의 한계인 것을 어찌하랴. 그러한 미약한 인간들이 무슨 큰일이나 할 수 있는 것인 양 남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항공모함에 수십 대의 최신식 전투기를 싣고, 싸움을 좋아하는, 그래서 빼앗기를 좋아하는 인간 심성은 도대체 어디쯤에서 돋아나는 독버섯일까? “산이 버섯처럼 솟아났다 산 밑엔 태아처럼/또 하나의 거꾸로 된 산이 박혀 있다/골짜기에 잠기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을 음미한다. 산과 산 사이에 하늘이 거꾸로 된 산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늘을 뿌리로 한 하늘산은 하늘에서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 거꾸로 서 있다. 골짜기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골짜기의 공허를 채워준다. 신은 그처럼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려 하지만, 어디 어리석은 인간이 그러한 관용을 감사할 줄이나 아는가 말이다.


안정옥 시인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제 고개 숙인 채 산의 발바닥을 조심하며/내려간다 한동안 고개 숙여야 산은 사람을/보내준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치고 고개 숙이지 않는 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뿌리에, 산이 감추어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인간 아니겠는가? 버섯처럼 솟아나는 산의 꼭대기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나무뿌리를 감추고 있는 산의 깊이와 관용을 배웠으면 한다. 오른 자는 모두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산을 내려올 때는 고개 숙여야 함을 배웠으면 한다. 혼자 잘 살아보겠다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세상사람들이, 안정옥 시인이 갈파한 것처럼 고립은 무수한 발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시끄러운 세상이 온통 시시하게만 보이니 이거 참 내가 어찌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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