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44회 사법시험 1차 출제경향 분석-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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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제44회 사법시험 1차 출제경향 분석-민법
  • 법률저널
  • 승인 2002.05.1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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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덕 수
이화여대 법대 교수·법학박사

 

 

제44회 사법시험 1차시험 민법과목문제의 문제점

 

 지난 2002. 3. 1.에 있었던 제44회 사법시험 1차시험은 사법시험의 시행업무가 행정자치부에서 법무부로 이관된 후 처음으로 치러진 것이다. 사법시험을 담당하게 된 법무부가 상당히 오랫동안 바람직한 사법시험의 시행을 위하여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법시험에 관한 노하우가 전혀 없던 법무부가 사법시험제도의 대폭적인 변경에도 불구하고 1차시험을 무난히 치러낸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법시험 1차시험에서는 개선하여야 할 점도 많이 드러났다. 특히 시험문제의 방향, 내용 및 방식 등에 있어서 그렇다.


 바람직한 시험문제의 최소한의 요건은 ① 평가대상능력의 적절한 선택과 ② 변별력의 확보이다. 이 둘은 모두 중요한 것이나, 특히 전자는 시험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장차의 공부방향을 안내하는 역할도 하게 하기 때문에 후자보다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이번 1차시험의 민법문제는 결코 만족스럽다고 하기 어렵다.


 이번 1차시험 민법문제를 분석해 본 결과, 총 40개의 문제 중 판례에 관한 문제가 32개에 이른다. 판례로만 구성된 문제가 무려 29개이고, 이론과 판례가 어울려 있는 문제가 3개 있다. 그리고 항들을 연결하는 문제, 복수의 지문 고르기와 같은 이른바 신경향 문제는 5개이다. 또한 사례형태의 문제가 19개이다. 한편 각 문항의 지문이 무척 길어서 읽고 이해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민법문제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숫자상 판례에 관한 문제가 너무 많다. 민법을 공부함에 있어서 판례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체 문제의 3/4 이상이 판례로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숫자의 문제에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례를 보는 시각이다. 판례는 이론을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한 결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기본적인 이론의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사안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법률적인 능력의 면에서는 판결의 구체적인 결과보다는 그에 이르게 된 논리적인 과정을 아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특히 판결의 단순한 결과는 오늘날처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상황 아래에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민법문제에서는 사소한 판결의 결과를 포함하여 판례의 결론만을 묻는 문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판례가 구체적인 사건과 유리된 채 지문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큰 가치도 없는 지엽적인 판결이 들춰지기도 하고 비평의 기회도 갖지 못한, 때로는 간행도 되지 않은 최신의 판례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 결과 제대로 공부하여 법률지식을 차근차근 쌓은 사람보다 단기간에 판례를 '배운' 사람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장차 수험생을 얼마나 나쁜 공부방법으로 유도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둘째로 이른바 신경향 문제가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여러 항을 연결하는 문제나 복수의 지문을 고르는 문제는 외견상 단순 택일형보다 어려운 듯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어려워진다는 보장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변별력 확보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반적으로 잘 알고 있으면서 어느 한 지문에 관한 것만 잘 몰라서 정답 숫자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때에는 많이 아는 사람과 적게 아는 사람의 결과가 같아진다. 필자는 단순한 문제라고 하여 쉬운 것이 아니고 난이도는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제의 형식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기존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로 지문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다. 이번 시험부터는 시험시간이 40분에서 70분으로 늘어나기는 했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도 지문의 길이는 너무 길다. 지문이 길어야 문제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장문의 지문보다는 알찬 내용의 간결한 지문이 바람직하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문제일 경우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넷째로 사례문제가 많은 편이다. 이번 시험은 유난히 판례문제를 포함하여 많은 문제가 외형상 또는 실질적으로 사례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는 방향 자체는 옳으나 기본적인 이론이 등한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로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의 적절한 조화가 아쉽다. 민법이 중요과목이고, 따라서 난이도를 높여야 함은 이해가 되나, 변별력을 위하여서는 난이도가 고르게 분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민법문제는 여러 단계 난이도의 문제들이 골고루 섞여 있지 못하다. 중요한 기초이론은 모른채 어려운 내용만 알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민법문제의 이와 같은 문제점들에는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시험을 주관하는 법무부는 정책방향을 정할 때 여러 가지 사정을 충분히 검토했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한 듯하다. 그리고 교수나 법조인이 시험문제를 출제·선정·검토함에 있어서 시험의 파급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출제할 만한 사람이 출제를 꺼리는 태도 또한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나아가 무엇보다도 판례위주의 출제는 시험문제에 대한 소송의 빈발의 영향이 크다. 즉 소송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비교적 문제점이 적다고 생각되는 판례를 중심으로 출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어떻게 해소하여야 하는가?


 먼저 사법시험을 주관하는 법무부는 출제·선정·검토위원의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 객관식 시험이 주관식보다 출제하기가 더욱 어렵다. 해당 과목 전반에 관하여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타당하고도 바람직한 문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무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인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사고력과 뛰어난 지식을 갖춘 위원이 책임자로서 선정 또는 검토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판례문제는 신중하게 출제하도록 하고, 또 출제대상 판결을 적어도 시험 1년전의 것으로 한정하여야 한다.


 출제·선정·검토를 담당하는 교수나 법조인은 그것들을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출제함에 있어서 소송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또한 판례가 최선이 아니라는 점, 판례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는 점, 판례는 사건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점, 판례를 문제삼는다 하여도 기본 이론을 알면 이해될 수 있는 판례가 주된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시험문제에 대한 소송을 담당하는 법원도 차제에 이상적인 결과를 위한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깊이 있게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법원은 시험문제에 관하여 절대적인 타당성만을 추구하여 판결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소가 제기된 경우에 법원은 직접적인 판단을 피하고 해당과목을 대표하는 학회에 자문을 구하여 그에 따라 판단을 하되, 의뢰받은 학회로서는 시험문제라는 점을 고려하여 정답을 고르는 데 지장이 없는 정도의 재량은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1차시험을 절대평가제로 하고 합격자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에는 문제점의 발생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말은 쉽게 했지만 이들 하나하나가 결코 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계되는 자 모두가 협력하여 바람직한 시험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달성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법시험 1차시험도 각자가 해당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문제점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내년부터는 정말 이상적인 시험문제로 공평한 인재선발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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