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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저널
  • 승인 2009.02.2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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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는 걸까? 이러한 질문은 원하지 않아도 태어나야 하는 한 생명에게 일생 동안 주어진 대명제이다. 선을 행하며 사는 이들도 있고, 악을 행하며 사는 이들도 있다. 유전인자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는 생래적 인간형을 주창하는 학설도 있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며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사회적 인간형을 주창하는 학설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견해를 따르든지 평생 남을 위해 살겠다며, 신에게 귀의하여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나라의 큰 어른이셨던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다.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간신히 조문할 수 있을 정도로 조문객들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니겠는가? 평생 믿고 사랑해온 하느님의 품에 안긴 그분의 선종 앞에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공호흡기를 거절하셨던 그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를 접하며,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시고 운명하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사시던 분들 중에 더러는 인공호흡기로 연명하시거나, 치매 증세를 보여 정신을 놓는 바람에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분들이 있었음에 비추어, 죽음에 이르시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참으로 많이 받으셨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늘나라 백성이 되셨을 그분을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반갑게 맞이하셨으리라 믿는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시절, 모든 국민이 핏발선 눈으로 군부독재에 항거하면서도 기댈 곳 없어 몸부림치던 그 시절에 온 몸으로 군부독재에 맞서며 한 줄기 빛으로 십자가를 지셨던 그분의 족적을 새삼스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명동성동으로 피신한 수많은 민주세력들에 대해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펴려던 군부독재권력을 향해 나를 밟고 가라고 일성하시며 기도하셨던 그분의 용기는 구약성경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필생즉사의 신념이지 않았던가? 그분의 그 말 한 마디에 서슬 시퍼렇던 군부독재권력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명동성당은 오늘 이 땅에 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는 초석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안다. 군부독재권력이 감히 쳐들어갈 수 없었던 민주성당은 당시 우리에게는 소도였다.


고통스러웠던 독재정권시절, 그 한 시대를 온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사셨던 분의 선종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분이 평생 사랑하고 가고 싶어 했던 하늘나라 백성이 되셨을 것이니, 그분의 영혼은 더 기뻐하셨을 것으로 믿는다. 고통이 없고, 근심이 없고, 병마가 없는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한다. 재물을 남겨 놓은 것은 없지만, 누가 그분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까지 안구를 기증하여 두 명의 앞 못 보는 이에게 빛을 선물하고 가신 그분의 사랑실천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의 안구기증에 감동한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신청을 하여 평소의 8배나 되는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을 서약하였다고 한다. 


그분의 죽음이 가뭄 속의 단비처럼 우리사회에 생명수가 되어 우리를 깨우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분의 사랑실천이 우리의 탐욕스러운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 추기경께서는 초임신부 때 쓰시기 시작한 미사 제구를 평생 사용하였다고 한다. 청동으로 된 미사 제구는 군데군데 칠이 빚겨졌지만 생전 한 번도 바꾸시지 않았다니 그분의 검약정신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셨다는 그분의 검소한 생활자세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또 다른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가볍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이 소중한 것만큼 물질도 소중하다는 것, 그 물질 하나하나도 신이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은혜라는 사상, 이러한 人ㆍ物 합일사상이야말로 지구사랑이고 인간사랑정신이 아니겠는가?


우리 곁에는 1970년대 이후 현대사를 상징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최규하 전직 대통령들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세월의 영욕 속에 한 시대를 풍미한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있다. 그들 중 몇 분은 이미 타계하셨고, 나머지 분들도 병중에 있거나 노쇠하였다. 그분들도 머잖아 앞뒤 다투어가며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분들 뒤에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따라붙을 것이다. 어떠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질 것인지는 그분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차마 스스로 풀고 가지 못할 것들도 있을 것이다. 모르겠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을 계기로 그분들이 그러한 족쇄를 스스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실감한다. 시중 우스갯소리로 나이 칠십 넘으면 돈 많이 가진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 같다는 말이 있다. 젊어 한때 세상을 호령하고 살았을지라도 세월 앞에서 어찌 보면 무의미하다는 것을 빗댄 우스갯소리이다. 일생을 옳은 곳에서, 빛의 길에서, 정직하게 살다간 이 앞에 어느 권력자가, 어느 세도가가 감히 맞설 수 있겠는가? 세월이야말로 가장 준엄한 심판자가 아니겠는가?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가 함께 세월의 저울 앞에 자신의 삶을 저울질당할 때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분의 선종을 통해, 다시 한 번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죽음이 임박해지시면서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과 함께 측근들에게 “고맙다”라는 말씀을 유독 많이 하셨다고 한다. 일생을 되돌아볼 때 얼마나 감사해야 했을 사람들이 그분 주위에 많았을까? 사랑은 주어도주어도 부족하고, 남아도는 신기한 요술주머니임을 그분께서는 아신 게다. 정말 그분의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도 세상은 뒤숭숭하고 어지럽다. 강호순이라는 연쇄살인범의 범죄행각이 자꾸 추가되어 발표되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강력흉악범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미국발 경제불황은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실물경제까지 함께 함몰시키려고 하고 있다. 10년 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당시에는 실물경제는 망가졌지만 금융은 살아있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당시 자금을 가지고 있던 금융계급은 오히려 많은 돈을 벌었던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펀드와 주식이 두 동강 나고, 주가는 하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는 이상 속에서 실물경제마저 침체기를 겪고 있으니,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제난도 역시 우리가 지혜를 모으고, 우리 마음속에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랑이 있을 때 해결이 가능하여지리라 믿는다.


죽음을 통해서마저 우리를 가르치고 계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은 아름답다. 그분도 인간적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어찌 세속적 욕망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잘 극복하고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가신 그분은 참으로 부자로 사셨구나 하는 교훈을 받는다. 그분을 그리도 핍박하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분의 빈소를 찾아 추모하였다고 한다.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자신의 독재정권찬탈을 정면으로 꾸짖고 반대해온 종교지도자의 선종 앞에서, 총칼 앞에서 모든 이들이 두려워 벌벌 떨 때 의연히 가로막고 옳은 길을 갈파하던 큰 어른의 선종 앞에서 과연 그는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잠시잠깐동안일지언정 이 시대의 정신적 지주이신 분의 죽음 앞에서 신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인간의 왜소함을 절감하며, 우리 스스로 겸손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커다란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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