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법 타령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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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법 타령은 이제 그만
  • 김재원
  • 승인 2009.02.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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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음 달이면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이 개원한다.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다. “시험을 통한 선발”이라는 기존의 방식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날로 분화되고 복잡해지는 사회 현실 속에서 다양한 법률문제를 잘 처리하기 위해 오늘날의 법률가들에게는 법학이외에 다른 전문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법만 알아서는 법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전공을 이수한 이들이 법률가가 될 수 있도록 한 로스쿨제도는 시대적 요청에 제대로 부응한 것이다.


그런데 로스쿨제도는 교육 연한과 비용의 증대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현대인들에게 각종 암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암들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의사들을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더 오랫동안 고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이러한 의사들의 양성을 포기하고 감기와 배탈만 치료할 수 있는 의사만 단기간에 양성할 수는 없다. 따라서 문제는 재정적 뒷받침을 통해 풀어야 한다. 훌륭한 법률가로서 충분한 잠재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로스쿨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법률가의 꿈을 펴지 못하는 상황은 그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이다. 정부는 대학에만 떠맡기지 말고 예산을 확보하여 로스쿨 장학금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고교 졸업 후, 7년의 교육과정을 더 밟아야 법률가가 될 수 있는 새 제도는 교육기간이 너무 길다는 비판도 있지만, 로스쿨의 3년은 법학공부에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기존 법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의 교육을 합한 기간보다 짧은 기간을 문제시 하는 이들이 많다. 영미법계인 미국에서는 가능한 제도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부족한 수업연한이라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로스쿨도입 반대론의 유력한 논거였던 대륙법/영미법 구분은 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을 통해 학생들과 일반인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법제도의 연혁이나 전통이 아니고 법학을 가르치는 ‘방법론’이다.


“미국은 판례법국가이기 때문에 3년간의 로스쿨교육으로 충분할 수 있어도, 성문법국가인 우리는 그 기간으로 부족하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고 있다. 미국이 역사적으로 판례법전통의 국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헌법, 민법, 형법 중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민법전뿐이다. 물론 민사에 관해 엄청나게 많은 성문법률이 있고, 상법, 행정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보다 방대한 성문법률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법률에 관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치려고 한다면 10년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현대 로스쿨의 효시인 하버드 로스쿨에서 사례중심의 학습방법을 도입할 당시에 대다수의 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이 반대했다. 당시 미국변호사협회조차도 가장 효과적인 법학교육방법은 법률지식을 요약해서 ‘강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교육방법의 혁신론자들은 “기존의 강의위주 수업은 학생을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것이고, 사례중심 수업은 어른으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의 지식을 학생에게 암기시키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길러주는 교육방법을 주창하며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법학교육을 법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법학도의 관점에서, 법률서비스의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법률소비자들은 ‘시험의 귀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달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법학교육은 법학지식을 얼마나 많이 암기하고 있는지를 시험을 통해 측정하는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로스쿨도입의 진정한 의미이다. 따라서 새로운 변호사시험도 또 하나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의사고시처럼, 로스쿨의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은 어려움 없이 모두 통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본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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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법 타령을 그만해야 하는 이유

                                                                                                              

                                                                                                               김재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하는 상기 "대륙법 타령은 이제 그만"이라는 칼럼에 대한 일부 수험생들의 이의에 대한 반론 및 보충 칼럼입니다.

 

지난주에 필자가 쓴 칼럼 <대륙법 타령은 이제 그만>에 대해 올라온 많은 인터넷 댓글을 보니, 필자의 주장을 크게 오해한 이들이 있고, 전혀 옳지 않은 근거에서 신랄히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에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오해를 풀고 부정확한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감에서 이 글 쓴다.

 

 대륙법 핑계를 더 이상하지 말자는 필자의 주장은 우리나라가 대륙법계냐 아니냐에 관 한 것이 아니다. 지난 칼럼의 핵심은 법학교육방법의 혁신이었다. 널리 퍼져있는 편견은 판례법중심의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판례를 가지고 사례중심의 수업방법이 가능하지만,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성문법의 체계적 이해와 해석이 중요하므로 사례중심 수업이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필자의 주장은 바로 이에 대한 반론이다. 영국과 미국 의회는 엄청나게 많은 법률을 제정하고, 이들 나라의 법률가들도 실무에서 이러한 법률들의 이해와 적용능력을 필요로 한다. 한편 성문법중심인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새로운 판례들 때문에 법학도들이 공부할 양이 많아지고, 법실무와 실생활에서 판례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판례법 국가라고 당연히 사례중심의 문답법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영미법계의 원조인 영국에서는 사례중심이 아니라, 판례를 요약해서 ‘강의’하는 방식의 수업을 주로 한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에서도 판례를 요약해서 강의하는 수업방식에서 현재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대에 부딪혔었다. 강의중심 교육은 법과대학이냐 로스쿨이냐를 떠나서 우리나라 법률가들의 수준을 높이는데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어느 나라, 어떤 교과목에 관계없이 강의중심의 수업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는 이유는 교수의 편의 때문이다.


영어교사에게 가장 편한 수업방식은 문법위주 수업이다. 다양한 어법이나 새로운 활용방법을 연구할 필요도 없고 한정된 영문법을 기계적으로 가르치면, 가르치기 쉽고 시험문제 출제와 채점도 쉽다. 하지만 이러한 선생중심의 학습이 우리 국민의 영어활용능력을 얼마나 저하시켰는지는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병폐가 대부분의 강의중심 수업, 그리고 필자가 잘 알고 있는 법학교육에서 지난 수십년간 답습되어왔다. 물론 이러한 관행에는 학생들도 일조했다. 강의식 수업방식은 학생들에 ‘달콤한 유혹’이다. 예습을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정답을 찾으려 고민할 필요도 없다.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훌륭한 선생은 배워야 할 내용, 특히 시험에 꼭 나올 내용을 잘 요약해서 이해하기 쉽고 암기하기 쉽게 전달해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선생과 학생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니 이 방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방식이 학생들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학생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도록 한다. 법률지식을 잘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데 길들여지게 만든다. 반면에 사례중심 수업이나, 문제중심수업(PBL) 등 학생중심 수업방식은 학생이 반드시 예습을 해 오게 만들고, 수업시간에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법실무에 임해 보면, 학교에서 배운 내용, 교과서나 판례집에 나오는 것, 시험문제와 동일한 사건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렵고 중요한 사건은 모두 교과서에 없는 것들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강의중심의 수업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필자의 이상적인 주장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주장했고, 필자가 지난 15년간 이러한 방식으로 수업을 해온 경험으로부터 그 효용을 믿게 되었다.

 

우리나라처럼 체계적인 법전과 이에 관한 해설서들이 많은 상황에서 사례중심 교육은 매우 적합하다. 법학공부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교과서를 예습해서 배우면 된다. 수업시간은 그러한 예습을 전제로 실무적 응용능력을 키워주는데 사용해야 한다. 미국 로스쿨의 교육전문가들은 주장하듯이, 사례중심 수업의 진정한 의미는 학생들에게 확실하게 예습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판례법국가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댓글에서 어떤 이가 ‘리스테이트먼트(Restatement)’를 법전이라고 주장하며 필자의 무지를 질타했다. 리스테이트먼트는 미국법연구소(ALI)라는 단체에서 각 법분야(예를 들면, 계약법, 형법 등)의 판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미국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2차적 법원이다. 하지만 입법부에서 만든 법률은 아니다. 장래에 법률가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정확한지를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자기 의뢰인을 큰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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