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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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02.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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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의 교신, 중의성과 모호성으로부터의 탈피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정확하게 표현하였다고 생각하면서 탈고를 마치지만,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아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도 누군가의 글을 오해하고 읽을 때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진의가 왜곡되는 현상을 수없이 접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처럼 우리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중의성과 모호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문장구조를 접할 때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보면, “그는 지금 양복 정장을 입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그는 지금 양복 정장을, 입고 있습니다.”라는 동작을 의미할 때도 있고, “그는 지금 양복 정장을 입고, 있습니다.”라는 상태를 의미할 때도 있다. 이러한 중의적 문장은 “나는 너와 그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에서도 나타나는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나는, 너와 그를 좋아한다.”라고 하여 내가 두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나는 너와, 그를 좋아한다.”라고 하여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장의 중의성을 제거하는 방법으로는 보조사를 이용하거나 수식어를 한정하는 쉼표 등의 문장부호를 이용하는 방법 또는 문장의 구조를 변경하는 방법 등이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다.”라는 문장은 그녀가 아름다울 수도 있고, 노랫소리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라면 “그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고 싶다.”라고 문장구조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의 두 경우에는 “,”를 붙임으로써 중의적 해석의 오류 문제를 해결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다. 한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똑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의미 전달이 서로 반대로 되기 때문에 서로 의견의 불일치를 빚는 경우를 빗댄 책 제목이다. 똑 같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각각 화성의 언어와 금성의 언어를 사용하니 불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언어의 이중성과 모호성 속에서 서로 의미하는 바를 다르게 해석하게 되면 생각이나 행동이 다르게 되어 합리적인 결과를 얻어내기가 참으로 힘들다. 고양이와 개의 사이를 견원지간이라 하여 원수관계인 것처럼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높이 치켜세운다, 반면에 고양이는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치켜세운다. 또 다른 예는 고양이는 기분이 좋을 때는 발톱을 감추지만, 개는 기분이 좋을 때 발톱을 드러내놓고 있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는 둘 다 기분이 좋은데도, 서로 마주치게만 되면 한쪽은 다른 쪽의 기분을 반대로 해석하게 되어, 개와 고양이는 보았다 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게 된다. 반갑게 서로 다가갔다가 내심과 달리 서로 적이 되어 되돌아서는 꼴을 반복하게 되니 둘 사이가 좋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우리 언어사용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언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학습 받아야 한다. 언어는 우리의 사상을 형성하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 어려서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일기를 쓰거나 글짓기를 하는 방법 등으로 좋은 언어와 적확한 언어를 사용해 버릇한 사람은 예의가 바르다.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하기 때문에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니 손해 볼 일이 별로 없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확실한 사람이라고 오히려 인정을 받게 된다. 교수인 나로서는, 학생들의 시험답안지나 레포트를 채점할 때 그런 점을 더욱 쉽게 발견하게 된다. 학생의 의사와는 달리 잘못 표현된 답안지는 결정적 감점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티비를 보고 있으면 비어와 속어가 난무하고 있다. 잘못 사용된 언어를 솔직담백이라는 허울을 씌워 시청자를 우롱할 때가 종종 있다. 연예활동을 하는 가수나 개그맨 등이 출연자로 나와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간혹 가다 보면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젊은이들이 티비에 나와 히히덕거리며 신변잡기를 늘어놓다가 욕설까지 내뱉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티비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빚어지고 있고, 여야 정치인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쉽게 나타나고 된다. 우리 사회의 소통의 부재는 언어사용의 정확을 기함으로써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구순희 시인의 소통에 관한 시 한 편을 본다. “소통의 통로 찾아갈 때마다/몽당연필 침 꾹꾹 발라 길을 만드는 사람/엄지손가락 지문 샐세라 또 누르는/저런 필사의 힘이 내게도 왔구나/지나가는 바람에게나 하는 목례 아닌/동백꽃 모가지 툭 부러지는/혼신의 힘으로/오늘도 안녕한가 묻기도 했다/앙증맞은 휴대폰 짓이기는/어깨를 들썩이며 누르는 숫자/그럴 때마다 오른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숫자 하나하나의 솜털 헤집어가며 왔을 저 신호/그 스위치의 힘으로!/여태껏 전언을 받은 게 아니라/지문 지워지는 소리와 교신하고 있었다/꾹꾹 누르려는 욕망과/견디려는 막중함이 부딪히며 숫자가 확인되는 순간/지워진 지문 되살아나 정신없이 소용돌이치며/막혔던 통로에 소통의 꽃이 피리라” (구순희, “지문과의 교신” 전문,  “옥수수라고 부르지 마”에 수록, 현대시학 발간).


전화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이 가고, 저 멀리서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마음이 들리는 일체의 행위가 전화하는 이의 지문과의 교신을 접하는 치열함임을 보여준다. 소통이라는 것이 손쉽게 가볍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백꽃 모가지 툭 부러지듯 혼신의 힘으로 영겁 속에서 지워질 지문의 대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문은 지워지지 않는 한 영혼의 상징이다. 우리는 이처럼 지문과의 교신을 통해 수신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워진 지문, 잊혀진 지문이 되살아나며 막혔던 통로에 소통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구순희 시인의 “지문과의 교신”은 우리에게 언어를 통한 소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준다. 모두들 몸의 일부처럼 들고 다니는 휴대폰, 그 무선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접점은 전화번호판을 누름으로부터 온다. 사소한 행동 같지만, 그 하나의 행위 속에는 천리 떨어진 수신자를 향한 발신자의 염원이 담겨있고, 그 양자를 접선시키기 위한 보이지 않은 파장의 힘이 이 우주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연히 펼쳐든 시집에서 좋은 시를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2월 임시국회가 곧 소집될 예정이다. 여당은 지난 연말에 통과시키지 못한 정책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고, 야당은 이를 MB악법이라며 입법통과를 결사저지 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적 아니면 동지, 보수 아니면 진보라는, 이분법적 사고만이 팽배해 있는 국회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소통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세상을 통합의 열림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반목, 갈등의 세상으로 향하게 한다.


정의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되고 말겠지만, 옳고 그름을 중심으로 판단하면 그게 옳은 것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이 아닌 이익과 불리로 세상을 판단하려고 하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혼돈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이익과 불리는 시간과 장소 등 처한 환경에 따라 매번 변하기 때문에 기준이 있을 수 없으므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하기야 지고지순해야 할 사랑도 변하는 것이라는 광고카피가 히트를 하고 있는 세상이다 보니 무어라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명확한 언어의 사용을 통해 문장의 모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티비 화면에 시간과 정신을 빼앗기기보다는 많은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줄 때 지문의 교신처럼 소통의 부재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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