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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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01.2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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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와 참사의 중간다리에 누가 서 있나?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흑인대통령시대를 맞이한 미국은 축제 중이다. 오바마의 첫 번째 공식업무가 쿠바 미군기지 내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지결정이었다고 한다. 인권침해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시 정권의 관타나모 수용소가, 재판 없는 구금과 고문 등의 악행의 제거가 첫 번째 업무가 되었다는 상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력을 신중히 사용할 때 미국이 강해진다는 오바마, 그의 메시지는 강렬하다 못해 전율할 정도이다. 진실의 힘은 강하다. 군사력만이 미국을 보호하지 않으며 미국 내키는 대로 군사력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받지도 않았다는 그의 고백 앞에서 강자의 겸손을 느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본다. 강한 자는 힘을 사용함에 있어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강자가 겸손해지지 않으면 그의 강함은 이미 강함이 아니라 폭력이고, 이 세상에 대한 참사의 시작이다. 그 순간 신은 사라질 것이며, 이 세상은 아비규환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용산철거민들이 철거를 반대하며 시위 농성을 하다가 5명이 불에 타 죽었다. 시위진압에 나섰던 경찰 한 명도 함께 죽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발화성이 높은 시너통이 있고, 화염병이 던져지는 상황 속에서 퇴로가 차단된 건물에 무작정 진압작전을 실시한 경찰은 무어라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철거반대투쟁의 장기화로 잃게 될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과잉진압을 해서 소중한 인명 여섯을 앗아갈 만큼 급한 공적 이익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있는 조직이다. 특히 경찰은 더욱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진압 속에서 인명피해가 대량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뿐이다. 분노가 분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무섭다.


여섯 명의 피해자들이 불에 타 죽어갔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그러한 고통의 순간이 연속되어질 상황을 상상만 해도 온 몸이 아파온다. 마음이 쓰라리고 힘들어진다. 눈이 일그러지고 입을 제대로 다물 수가 없게 되고 입술을 깨물게 된다. 내 온몸이 아파오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인들이 미군이 쏜 총에 맞아 죽으면서 겪어야 했을 고통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난사에 내장이 파열되고, 손발이 잘려나가면서 겪어야 했을 피해자들의 고통이 느껴지면 혼자 힘들어진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살육이 왜 무선으로 연결된 듯 내게도 그대로 느껴지는지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가난한 세입자들이, 생존을 걸고 벌리는 철거반대투쟁 앞에서 법집행의 공정성보장 요구는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공허하다. 물론 법집행은 공정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고, 엄격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철거민들의 경우, 다른 사례에서 종종 발생하는 과도한 보상요구로 공사가 지연되는 것 사실이고, 그로 인해 전체적인 재개발 공정에 차질이 빚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재산적 피해를 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로의 탐욕이 빚어낸 인재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이익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손상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 보다 큰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의 충돌 속에서 법집행을 담당하는 자들은 오바마 취임연설의 한 구절처럼 힘이 신중히 사용되도록 겸손해져야 한다.


국내 치안 질서의 총수라고 할 수 있는 행정안전부장관과 경찰청장의 새로운 개각발표가 있던 날, 경찰진압에 의해 빚어진 용산지역 철거민의 화재참사로 인한 여섯 명의 사망 소식은 불길한 엇박자의 전주곡 같아 불안해진다. 더군다나 김석기 신임경찰청장이 서울경찰청장으로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결제한 것이 바로 용산철거민 강제진압작전문서에 대한 승인 사인이었다는 사실의 공개는 치명적이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도 불운한 대통령이 되고 말 것인가?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는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대한민국도 이 어려운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참사의 배경에는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인터넷 논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쓰는 이에 대한 무리한 구속과 지난 연말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강행통과시키려고 했던 방송통신법을 포함한 수많은 법안들의 강행처리방침이 쇠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집행자들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도도한 강물 같은 조급증과 일방적 밀어붙이기의 유혹에 손쉽게 무릎을 꿇고 마는 가치관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 잘 해 보겠다고 하는데 방해를 하는가? 무조건 따라오라, 그러면 좋은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 라는 일방적이고 무례한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거기에 겸손이 실종되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이미 타협은 강 건너 가버렸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불도저식 강행처리만이 최선의 가치로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방해하는 모든 세력은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와 철거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비민주적 발상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절차를 중시한다. 결과보다 절차를 중시하는 가치관 속에서 민주주의는 성장해 왔고, 그 절차의 공정성이 결과의 정당성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독재자들은 그러한 절차의 지연을 참지 못하고 일방적 지시와 일사불란한 집행만을 요구할 때가 많다. 이를 따르지 않을 때는 강압적 물리력을 행사하고 반대쪽을 탄압하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경제성장률예상치가 0.7%라는 보고서를 내어 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747 공약을 통해 내세웠던 7%의 예상경제성장률이 10분의 1로 쪼그라든 0.7%에 머물 것이라는 KDI의 보고는 절망적이다. 다른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2.6%에 이를 것이라니 우리나라는 그나마 낫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겠지만, 한국노동연구원의 실질실업률이 지난해 11월 정부가 발표한 3.15%보다 훨씬 많은 7.41%라는 보고와 함께 충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게 될 때야말로 지도자의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취임초 83.7%에 달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지지도는 취임 한 달 만에 48.1%로 내려앉더니 지난해 6월 11일의 여론조사에서는 15.2%의 지지율로 폭락하고 말았다. 그 후 조금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지난 한 해 평균지지율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OSI)의 분석에 따르면 37%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이는 집권 1년차의 지지율로는 아주 낮은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지지도가 낮아지게 되면 독재자가 되거나 식물대통령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국민들은 강압적인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르기도 하지만, 정당성이 인정되면 즐거워 스스로 복종하기도 한다.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항거하게 되고, 세상은 소란해지기 시작한다. 자유를 만끽해버린 국민은 이제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은 통치에 대해서는 전혀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런 것이고,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득해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지난 10년 동안의 정부가 국민에게 학습한 효과이다. 현 정부는 이러한 지난 10년 정부를 좌파정부였다면서 비판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좌파정부라고 호도하는 지난 10년 세월의 정부는 국민에게 철저하게 민주주의를 학습시키고 말았으니 좌파정부치고는 참으로 이상한 좌파정부임이 틀림없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어린 시절 머리맡에서 새벽기도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을 듣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랑하는 어머니의 새벽기도, 아무런 사심 없이 국가와 민족, 이웃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어머니의 기도내용을 떠올리며 국민 앞에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반대파를 아우르고, 함께 머리를 맞대기를 바란다. 함께 대화하며 지혜를 모으기를 바란다. 민주당 등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며 협력할 것을 당부한다. 지금은 위기이고, 위기는 곧 기회이지 않는가? 비참하게 숨져간 용산참사피해자들의 명복을 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세입자, 철거민으로서가 아니라 제 집 지닌 자가 되어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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