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아이가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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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아이가 보는 세상
  • 법률저널
  • 승인 2009.01.0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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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이 아이는 다섯 살이다. 엄마가 사 주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민호가 있는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이집에서 예쁜 선생님이 주는 간식을 좋아하고,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율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종이접기를 하면서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즐거워한다. 어린이집에서 매일 아침 태우러 오는 노란색 미니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고, 퇴근한 아빠 앞에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며 재롱부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가 흐뭇해서 함께 박수를 치면 더욱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며 아빠 턱밑으로 파고드는 재롱둥이이다. 그 아이가 아빠가 즐겨보는 티브이 뉴스를 쳐다보더니 티브 화면을 손가락질하며 궁금한 듯 갑자기 묻는다, “아빠, 저 아저씨들 왜 싸워요? 선생님이 싸우면 나쁘다고 했는데, 저 아저씨들 나빠요?” 아빠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고 할 말을 잊는다. 티브이 화면에서 국회의원들이 신나게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손가락질하는 아이의 손끝에는 갈대 끝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대한민국이 있다. 대한민국의 처참한 현주소이다.


어떤 이가 국회의사당을 폭파해버리겠다고 협박성 전화를 했다고 한다. 여야국회의원들이 매일 같이 치고받고 싸우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 몸둥아리를 밧줄로 묶는 모습을 보면 나도 한 마디 하고 싶어진다. 내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저 놈들 미쳤구만”이다. 그렇지만 나는 차마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저 분들이 미치셨습니다”라고 말을 공손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 나라의 선량들로, 국민들로부터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높고 지엄하신 분들이시라 낮고 낮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마땅히 경어를 써야 할 것 같아서이다. 여당은 개혁입법인지 무엇인지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한다는데, 청문회를 연 적도 없어서, 오히려 청문회를 열면 국민의 여론이 악화될 것이므로 청문회절차를 생략하겠다는 내부문건을 작성한 뒤, 국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도의 요건만 갖춘 채로 무더기 통과시켜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다수의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굳건한 결의이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대로 각종 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한 한나라당 출신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데 인색하지 않다. 야당 또한 이에 질세라 무조건 결사반대를 부르짖으며 온 몸을 스스로 밧줄로 묶고 말 그대로 인간방패를 엮어가면서 대항하고 있다. 일 년 가까이 대한민국에 야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무기력하게 지내더니 무언가 하나로 뭉쳐 싸워야 할 동기를 부여받았으니 저절로 신이 나는 모양이다. 가만히 놓아두면 자연해체될 것처럼 무력해 보이던 야당에게 저렇게 투사가 되라고 부추긴 여당의 동기부여는 대단하다 못해 바보스럽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새해가 밝았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융단폭격하여 300여명이 죽고 2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외신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든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경제를 꽁꽁 얼아 붙게 만들고, 덩달아 우리 경제도 얼어붙어버렸다. 왜 이리 날씨마저 추운지 사람이 위축될 대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 어린 아이의 손끝에서 어찌 흔들리는 대한민국만 보이겠는가?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태양이겠지만, 해가 바뀌었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심기일전의 각오를 새롭게 한다. 대한민국이 언제 어렵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내 일생에 어느 하루 힘들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매일매일 전력투구해야했다. 위기는 항시 도전의 기회였고,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하면 분명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나을 것이라 믿는다.

 
기축년, 소의 해이다. 소에 관한 우리 옛말에는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다. 우이독경이다. 소에 대고 아무리 경을 읽어도 소가 어찌 그 말뜻을 알아듣겠냐는 한탄스런 말이다. 요즘 정부와 국회가 하는 일을 보면 저 말이 딱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말에는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도 있다. 소의 우직함과 근면함을 일컫는 말이다. 반면에 “쇠뿔도 단김에 뺀다.”라는 속담이 상징하듯 속전속결의 필요가 있을 때에도 어김없이 소가 등장한다. 어쩌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소띠해인 기축년에 쇠뿔을 단김에 빼듯 경제난을 단칼에 해결하고 싶은 강한 의욕이 필요할 때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한 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시위라는 홍역이라면 홍역일 수 있는 난리를 한번 겪었지만, 소는 성실함과 富를 상징하는 유익한 동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업국가로 불리었던 우리로서는 황소 한 마리야말로 재산목록 1호였던 시대가 있었으니 소의 소중함을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설순 등이 저술한 삼강행실도에 보면, 주인을 지키기 위해 소가 끝까지 호랑이와 싸운 끝에 주인을 구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유교가 성했던 때는 소를 義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소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이야기이다. 불교에서도 소를 尋牛圖라는 열 장의 그림을 통해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엮어 해탈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도가에서야 소를 타고 있는 어린아이며 신선이며 은유자적의 묘미를 상징하는 동물로 소를 표현하고 있음도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이처럼 소는 의롭고, 지혜롭고, 성실하고, 담대한 동물이다. 십이간지 이야기에서도 소의 성실함이 나온다. 지난해는 무자년으로 쥐띠해였다. 십이간지 중 첫 번째 간지가 쥐띠이지만, 십이간지 이야기에 소 등을 타고 온 쥐가 약삭빠르게 제일 먼저 뛰어내리는 바람에 열두 동물 중 쥐가 첫 간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묵묵히 제 길을 걸어온 동물이 소였음을 잘 알 수 있다. 금년 한 해는 힘들고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워낙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역동성은 매일 국회에서 쌈박질하는 정치인들보다 더 정열이 넘쳐나는 국민임을 믿는다. 에너지 쏟을 곳이 마련되지 못해 그렇지, 장만 펼쳐지면 못할 것이 없는 우리 아니겠는가? 모두가 힘을 모아 굿판을 벌리고, 소의 성품을 닮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면 어려움은 능히 극복되리라 믿는다.


자, 기축년이 밝았습니다. 우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활짝 펴고 기지개를 한 번 켭시다. 입을 크게 벌리고 심호흡을 하고 가슴을 활짝 폅시다. 힘들어하는 가족이나 동료의 어깨를 다독거려 줍시다. 서로 삿대질을 하고 쌈박질을 할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부등켜 안고 힘을 모읍시다. 소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도 그 선한 눈을 껌벅이며 우주를 안고 묵묵히 걷듯,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어 봅시다. 나락으로 떨어진 세상은 도약의 비상을 꿈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여주 시인의 시 한 편을 감상해보자. 개인 날/하늘을 보자/모두 흘러가 버리고/아무 것도 없는데/저토록/가득차 있는  (조여주 시인의 “하늘” 전문, 에스키스, 동학사 간).


텅 빈 하늘을 가득찬 하늘로 인식하는 조여주 시인의 눈을 우리도 가져보자. 어려움을 기회로 여길 줄 아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그런데 또 며칠이 지나면 지난 연말에 해결하지 못한 “입법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여야간에 보나마나 쌈박질을 해댈 것이니, 그게 이스라엘의 공습이 되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게 될지, 아니면 여야 합의가 잘 이루어져 또 보나마나 뻔한 악수질을 해대며 웃고 떠들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 다섯 살짜리 아이가 손가락지하며 묻는 말 “저 아저씨들 나빠요?”라는 말에 누군가는 대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소띠해, 소처럼 묵묵히 걷자. 그래도 지구는 돌고, 미치신 분들은 미치신 대로 돌고, 미치신 분들을 바라보고 있는 맨 정신의 우리도 돌고, 하여튼 지구는 돌고 돕니다. 그게 물레방아인지 야바위판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지간에 저 다섯 살짜리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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