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선물인 오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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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선물인 오늘, 어머니
  • 법률저널
  • 승인 2008.12.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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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오늘은 Present, 선물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지만, 오늘이 신이 내려준 귀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막연히 하루를 허비할 때가 많다. 오늘은 선물이다. 세밑이 되어서야 무자년 한 해를 되돌아본다. 매일 오늘이라는 선물을 신으로부터 받아왔기에 감사한 일도 많았지만 한 해를 되돌아보니 참으로 우울한 일들이 많았음을 느낀다. 세계에 휘몰아친 미국발경제불황은 우리를 차디찬 시베리아벌판으로 내모는 듯한 한기를 느끼게 했다. 그나마 고정급을 받는 나 같은 교수야 낫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과 경제적 악화로 힘들어할까를 생각하면,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저들의 시린 손을 따뜻하게 해주소서하는 기도를 나도 모르게 할 때가 많다.


지금도 습관처럼 붕어빵이나 호떡을 파는 노상가게 앞을 지날 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1,2천원어치의 붕어빵이나 호떡을 살 때가 종종 있다. 코트 큰 호주머니에 붕어빵을 집어넣고 걸으며 그 훈기를 느끼는 5分間의 따뜻함은 이 세상의 어떤 호화로움과 영화로움에서 느끼지 못한 작은 행복이다. 붕어빵의 따스함은 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내 손 잡고 교회 다녀오시다 붕어빵을 사주셨던 기억이 새롭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어머니 따라 다닌 교회에서 예배마치고 돌아올 때 장갑도 끼지 못한 손은 시렸고, 추웠다. 기운 양말을 두 개 포개신고 검정고무신을 신은 채 발이 너무 시려 종종걸음을 쳐야했던 그때, 세상은 온통 얼음동굴처럼 추웠지만, 유독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고, 갓구운 붕어빵의 따뜻함은 구원이었다.


장순금시인은 생명,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는 시인이다. 신실한 가톨릭신자이기도 한 장순금시인의 시에서는 인생이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향한 영혼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永世에 대한 경외감과 現世에 대한 감사함을 함께 느끼게 한다. 세밑에, 장순금시인의 시 한 편을 접하며 함께 마음들이 따뜻해졌으면 한다.


팔십 년 만에 어머니가 기저귀를 찼다//하얀 무명베에 묻어나온, 마치 염소똥같이 작고 단단한 것들이, 어머니 몸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냄새도 수분도 다 말라버린, 어머니 몸의 일부였던,//삶의 쓰고 짠 맛을 꼭꼭 씹어 삼킨 팔십 년 소화력이/순대 속 같은 세상을 지나는 동안 희노애락이 팔천 번, 팔만 번 살 속을 굽이쳐/팔십 생일에 비로소 황금알인 듯 낳아놓고 금니 반짝이며 씨익 웃으셨다//생의 무게를 한 점씩 땅으로 내려놓듯, 팔순 생신 날, 어머니는 태어나 처음 입었던 무명베 기저귀를 다시 입었다//팔십 년 무게를 받아낸 몸의 조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거푸집 속에서 꼭 쥐고 살던 세상, 이미 반은 허공이다/어머니의 몸의 반은 허공이다//적멸이 내준 길에 반쯤 들어섰다  (장순금 시인의 “거푸집, 적멸” 전문, 계간 미네르바 30호, 2000년 여름호)


어머니는 영원한 모티브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구별함이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대상성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다. 어렸을 때 사랑을 주시던 어머니, 어머니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졌다고 느낄 만큼 행복을 안겨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세월 따라 어느새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세상과 결별할 날을 꿈꾸면서 도로 어린 아이가 되어 가신다.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힘을 주시던 것만큼 자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그 바람의 작은 풀섶을 건드려드릴까?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성가심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은 아닐까? 홀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남달랐던 지인이 있다. 그분은 어머니 임종이 가까웠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뒤 어머니 돌아가시기 두 달 전부터 세 명의 동생들에게 순서를 정해 어머니를 병문안하고, 두 시간 동안 함께 놀아줄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동생들도 선했으니까 그런 형의 말을 순종했겠지만, 그러니 형제간의 우애가 화목하고 돈독했겠지만, 형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사흘에 한 번씩 병실에 순번대로 들러 어머니와 놀아주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 병상 머리맡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기들에게 해주었던 아기자기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놓으며 삶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들 한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도 참 잘했다는 생각을 스스로 가졌다는 술회를 들으며, 그 어머니는 참 행복하셨겠다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창조주로 연결해주는 외줄이다.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생명의 시원이다.


나이 드신 선배들은 종종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스스로 어머니 나이가 되어보고서야 어머니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생하시던 어머니 모습은 뚜렷한데, 그리고 그리운데, 행복하시던 어머니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배들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순금시인처럼 기저귀를 찰 망정 팔순이 넘도록 어머니와 함께 하는 이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어머니 돌아가시고 30년 세월이 지났지만, 내가 느낀 어머니 모습은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어가면서 살 속 에이는 그리움이 된다. 붕어빵 하나에 눈물이 핑 돌때가 있다. 그 붕어빵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이 감사하다. 그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따뜻함, 어머니에 대한 연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붕어빵의 고마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번 학기에 학생들에게 가족법을 강의하였다. 대학 3학년이 주수강생인 가족법 강의시간에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손전화기를 꺼내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버지, 사랑해요”라든지 “어머니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라고, 아이들 말에 의하면 “때리라고, 날리라고” 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멋쩍어했지만, 나중에는 교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머리 큰 대학생 녀석들이 교수가 기말교사에 반영할 것이라며 부모님에 대한 편지를 써오라고 하니, 반항(?)할 만도 한데 고맙게도 다들 써왔다. 밀봉되지 않은, 우표가 붙어있는 편지를 받아들고, 나는 채점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디 점수차가 있겠는가? 가족법을 가르치는 것은, 가족 사이에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지식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강의가 싫었다. 오히려 가족법강의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가르치고 싶었고, 학생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형제끼리 우애하고 지낼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은혜에 작은 보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르치고 싶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허리가 휘도록 애쓰시는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 갖기를 원했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형제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얼마나 힘이 되어주는 동역자인지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나는 학생들이 써온 편지에 내 편지도 함께 넣어서 밀봉하고 발송하였다. 가정통신문이 될 수준의 편지이었을지라도, 나는 내 편지에 정성을 담았고, 자녀들을 맡겨주심에 감사했다. 내가 한 학기 동안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했으며 열심히 가르치려 했는지를 썼다.


그게 사제지간의 교류이고, 그들의 부모님과의 교류일 거라고 믿고서 한 행동이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그렇게 열심이었던 부모는,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아주 낯설어진다.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고 삶의 깊이를 나눈 부모들은 여전히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들도 많다.


매주 내 글을 연재해주신 신문사와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게 감사드린다. 모든 것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빈국이라고 하는 방글라데시인들이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1위라고 하는 발표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따뜻함을 잃지 않고, 서로의 손끝을 통해 전해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한 세상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 중심에 어머니의 따뜻한 손, 자애로운 미소가 있음을 기억하면서, 다들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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