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이색 합격수기]가난 속에 8년만에 이룬 법조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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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이색 합격수기]가난 속에 8년만에 이룬 법조인의 꿈
  • 법률저널
  • 승인 2008.12.1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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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미 제50회 사법시험 합격·숭실대 법과대학 졸업

 

먼저 부족한 실력에도 합격의 기쁨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특이한 경력 탓에 많은 언론에서 이슈가 되긴 했으나 법률저널 구독자들의 관심에 맞게 제가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간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름대로 학교 도서관에서 1차 공부를 하였지만 합격이라는 확실한 목표의식도 없었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해 시간을 낭비했던 것 같습니다. 2001년 6월에 신림9동 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으나 경제적으로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주말과 공휴일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학원 강의보다는 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1차 공부를 하였습니다.

 

물론 합격이라는 것이 분명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겠으나 어느 정도 운도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도 4월에 처음으로 1차에 합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제가 고전했던 것은 헌법이었습니다. 부속법령을 열심히 외웠으나 헌법사가 대거 출제되고 헌법사를 열심히 하면 부속법령이 많이 나오고... 합격하던 2004년 2월 시험에서는 운이 따랐던지 제가 공부한 방향으로 시험이 출제되어 89점 정도의 안정된 점수를 받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2차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학원을 다니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저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 예비순환을 강의 테이프로 대신하였는데 지나고 나니 정말 학원을 다니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의욕에 넘쳐 시작한 2차 공부는 점점 늘어지게 되었고 혼자서 강의 테이프를 학원진도에 맞추어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초시는 민법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 과락을 받았고 그나마 민법이 60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와 위안이 되었습니다.


예비순환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1순환은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시험지를 채워나갈 때 저는 그제서야 책에 밑줄을 긋고 기본서를 이해하는 상황이어서 '내가 이정도뿐인가' 라는 자괴감을 달고 살았습니다. 당시까지도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신히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볼 수 있었는데 앞 페이지의 내용을 눈 감고 외우지 못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상한 성격 탓에 학원 시험 진도는 밀리기가 일쑤였고 예습을 하지 못해 모의고사 점수는 10점 초반에서 20점 초반 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렇게 2005년도 3월에 이른 어느 날 고시원 지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방으로 올라온 저는 방에 도둑이 든 것을 알았습니다. 지갑에 훔쳐갈 돈이 없었는데, 어떤 심정에서 그랬는지 그 도둑은 제가 1년이 넘도록 가장 열심히 정리를 해 놓은 민사소송법과 행정법 책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방에는 헌책방에 팔 수 있는 안 본 책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패닉상태에서 부랴부랴 새 책을 사서 한번 읽고 밑줄을 그으니 어느 덧 시험이 다가 왔고 저는 과락 없이 평균 2점 정도로 낙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니 어느 하나 자신있게 써내려간 과목이 없었음에도 과락이 없었던 게 신기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낙방을 예상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처음 토익을 한 번에 별 어려움 없이 넘겼던 저는 다음 공부를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토익공부를 건성건성 하게 되었고 그 결과 토익점수는 계속 690점과 695점을 반복하더니 결국 마지막 12월 토익시험에서 695점을 받아 1차 시험을 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재시에서 떨어진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하루 2끼 김밥으로 때우며 15시간 공부”

 

도망치 듯 동대문에 있는 고시원으로 옮겨 총무를 하면서 공부를 하였고 곧바로 2006년 초 토익에서 825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총무일이 만만치 않았고 1월부터 10월까지 2차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10월 중순 다시 신림2동으로 자리를 잡고 2007년 2월 1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없었습니다. 우선 강의를 다시 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10월 중순부터 기본3법 강의 테이프와 국제법 강의 테이프를 모두 듣고 새책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밥먹는 시간도 아끼려고 하루 2끼를 김밥으로 때우며 하루 15시간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1차 시험이 8지선다형으로 바뀌었고 2007년 2월 1차 시험에서 저는 민법을 시간 내에 다 풀지도 못하고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문제를 다 풀지 못하고 합격을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채점을 해보지도 않고 2주간을 죽은 듯 지냈습니다. 그러다 주위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채점을 해 보니  희망이 없는 점수는 아니었고 조바심을 내며 기다린 결과 평균 1점정도 차이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차 발표 때까지 2차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저는 결국 3시에서 민법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과락을 받아 마지막 4시 합격마저 불투명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3시 이후 1순환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최대한 양을 늘이지 않고 기본서와 케이스집 하나씩만을 보며 충실히 학원 모의고사를 보고 암기에 주력했습니다. 그리하여 모의고사에서 꾸준히 35점 전후의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기본3법을 소홀히 한 것 같아 많이 불안해하며 2008년 6월 시험을 맞았습니다. 첫날 헌법 통치구조 정리가 미흡하여 불안했던 저는 시험지를 펼쳐 보고 환호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치구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누구나 예상했던 것이나 시사적인 문제로 평소 생각해왔던 집시법문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헌법 다음으로 자신이 없었던 행정법도 암기했던 부분에서 많이 나왔고 두 번째날 민사소송법에서는 다행히 모르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고 상법은 운 좋게도 남들이 보지 않은 어음개서를 찍어 보았는데 출재가 되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셋째날 형법 1문이 부족했고 민법 1문도 빠진 논점이 많아 많이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발표 전날 갑자기 너무 자신이 없어져 밤새 울고 새벽에 잠이 들어 늦게 일어나 점심을 먹는데 공장에서 일하시는 엄마가 울면서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너 됐대'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만이 머리에 남았습니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힘들 때 마다 엄마 생각하며 채찍질”

 

고시공부를 시작하면서 정말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힘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보험회사 상담원부터 식당, 비디오방, 화장품 판매, 독서실 총무, 고시원 총무, 모범택시 야간 접수원 등등... 하지만 한 번도 이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이 식어가는 저를 발견할 때마다 저 때문에 하루 종일 서서 일하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다시금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일과 고시공부를 병행하는 수험생이 계시다면 부모님 생각하시면서 포기 하지 않고 정진하신다면 합격이 그리 먼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본 자료를 말씀드리자면 헌법은 1차 정회철 기본서를 그대로 보았고 케이스 단문집은 케이스 훈련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민법은 박승수 민법과 케이스를 형법은 1차 신호진 형법요론을 그대로 보고 케이스는 모의고사를 주로 보았고 행정법은 홍정선 기본서와 성봉근 자료집을 상법은 김혁붕 기본서와 케이스집, 형사소송법은 이재상 기본서와 케이스집, 민사소송법은 이시윤 기본서와 박승수 워크북을 보았습니다. 2차 시험은 기본적으로 몇 개의 큰 논점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많은 수험생들이 보는 강사의 자료를 그대로 쓰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헌법 같은 경우 정회철 케이스 단문집을 보지 않고 기본서를 중심으로 서술했던 것이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고 반면에 완벽하게 썼다고 생각했던 민사소송법의 경우 박승수 워크북의 목차와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면을 빌어 많은 분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저의 정신적인 스승이 되어 주신 광주지방검찰청 형사제3부장 양부남 검사님, 법대 고시반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정진연 교수님, 선덕중학교 3학년 시절 공부하고 싶어 하는 가난한 중학생에게 3개월치 독서실비를 지원해주신 어머니회의 어느 어머님, 당시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고 덕분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정을 아시고 고시원비를 받지 않으셨던 성림고시원 아주머님, 박준혁 변호사님 등 저는 인복이 많아 정말 많은 분의 도움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4년 넘게 알고 지내다 1년전 연인이 되었고 내년 봄 배우자가 될 사법연수원 제39기 우종환씨, 덕분에 합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외조를 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된 일과에도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서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엄마, 세상에 어떤 언어로도 그 감사함을 표현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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