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편지의 이중창과 한이나 시인의 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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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편지의 이중창과 한이나 시인의 대꽃
  • 법률저널
  • 승인 2008.12.1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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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세상 돌아가는 것에 마음이 답답해지면 예전에 즐겨본 영화중에서 아무 것이나 한 편 골라 영화를 감상하면서 마음을 정리할 때가 간혹 있다.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이 주인공으로 나온 쇼생크 탈출도 그런 영화중의 하나이다. 장래가 촉망되던 은행원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 분)이 아내를 죽였다는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쇼생크 감옥에 수감된 후 그의 탈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의 주제는 한 마디로 아무리 암울한 절망 속에 있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폭력과 비리가 난무하는 교도소 안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무죄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탈출을 꿈꾼다. 암울한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밝은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수년간에 걸쳐 벽을 뚫는 노고를 아까지 않았다가 마침내 교도소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쇼생크 탈출의 압권은 마지막 탈출하는 장면보다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이라고 불리는 “저녁바람은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 from Le Nozze di Figaro)”가 교도소 담장 안에 울려 퍼지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나이에 진짜 살인을 저지르고 이십년 넘게 무기수로 수감생활 중인 동료죄수 레딩(모건 프리먼 분)은 음악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편지의 이중창”이 울려 퍼질 때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세상에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아주 짧은 한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라고 감탄한다. 한 곡의 음악을 통해 모든 죄수들이 자유를 느끼는 순간,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은 듀프레인에게 음악을 끄라고 고함치지만 오히려 그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볼륨을 높이고, 음악에 취해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 대가로 그는 죽도록 얻어터지고 독방에서 초주검이 되는 징벌을 받지만, 그 한순간의 자유는 교도소에 갇힌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알마비바 백작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하녀 수잔나에게 초야권을 요구하며 집적거리는 것을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함께 공동대처하며 그를 놀려먹는다는, 조금은 코믹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오페라이다. 편지의 이중창은 알마비바 백작을 놀려먹기 위하여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백작부인이 부르고 하녀 수잔나가 이를 받아 적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다. 하녀가 귀족을 놀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된 것은 1786년이고, 그로부터 3년 후 프랑스 제3계급인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했다. 그리고 유럽 신분사회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세상이 어둡다. 한국농촌공사가 직원의 15% 정도를 감원하였다고 한다. 경기불황에 따른 공기업구조조정의 신호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결과를 보고받고 잘 했다고 칭찬하자 다른 공기업 사장들도 이를 기준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구조조정을 통해 퇴직한 이들은 명예퇴직보상금으로 약간의 받았을 것이고, 당장은 부자가 된 듯싶게 수중에 목돈을 만질 것이다. 그들이 그 약간의 웃돈을 종자돈 삼아 얼마나 잘 꾸려 가느냐에 따라 몇 년 후 생활이 더 안정될 수도 있을 게고,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르는 것이 능사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잘려나간 수족은 언제나 아프고 힘들다. 고통스럽다.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15%의 인력을 자르는 것보다 노조에서 임금동결을 통한 회사경영합리화에 나서겠다는 제안을 자발적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엘지그룹이 인재야말로 최고의 기업자산이라는 말과 함께 인원조정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인사방침을 밝힌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정부는 공기업을 닦달하여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감축을 하라고 강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 수십만 개를 늘리겠다고 호언장담한다. 당장 공무원 채용인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또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임금을 동결하면 오르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서민가계가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이야 불을 보듯 뻔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사람을 솎아내어 자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실직의 증가는 가정경제를 파탄 낼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소비구조를 왜곡하여 성장잠재력을 잠식하게 되고, 몇 년 후에는 더 큰 국가적 문제를 유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신뉴딜정책이라는 경기부양책을 들고 나오는 이유가 새로운 고용창출을 국가재정의 지출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단순한 경제논리에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쇼생크 탈출에서 듀프레인은 교도소 담장 안에 갇혀 구속의 통증을 느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가두어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편지의 이중창처럼 저녁바람이 부드럽게 우리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할 수 있는 묘약은 없는 것일까?


한이나 시인의 시 한 편을 본다. 한이나 시인은 삶의 본질을 경험과 이성을 통해 밝힘으로써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삶의 관조가 탁월한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는 속이 비어서 제 속에/바람을 지니고 산다/왕죽이 울창하게 들어앉은/단속사 대밭/시퍼렇게 멍든 몸으로/곧게 생을 떠받치고 서 있는 힘/속내를 앓다가 다 비운 자리에/그만큼의 소슬한 바람으로 채운다/있고 없음이 하나다/내가 바로 너다/내 몸 안으로 대 끝에 걸려 있던 해가/쑤욱! 들어온다//열 달 후 대꽃이 일제히 필 때를 기다린다  (한이나의 ‘대꽃’ 전문, 시집 “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 문학세계사).


우리 모두는 지금 시퍼렇게 멍들어가고 있다. 세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서 말이다.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그 속에 바람 하나 가득 채우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사에 시달려 시퍼렇게 멍든 몸으로 그래도 세상 떠받치고 살아야 한다며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시인은 말한다. 있고 없음이 하나이고, 내가 바로 너고, 너가 바로 나라고. 그러기에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말이다. 현실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지라도 속이 텅 비어 채울 것이 아무리 없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바람 하나 가득 들어 있으니 그래도 감사할 일이다. 그 바람이 쇼생크탈출의 저녁바람일 수도 있고, 대 끝에 걸린 해일 수도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일 수도 있다.


수많은 죄수들이 교도소 담장 안에서 편지의 이중창을 들으며 새 한 마리 날아와 교도소 담장을 허물어뜨리는 경이로운 감동을 맛본 것처럼, 우리에게는 오늘의 근심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한 때이다. 한이나 시인의 메시지가 그래서 우리에게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렵지만 우리는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데일 벌크 목사의 저서 “물질에 대한 마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잠언 11장 24절을 설교한 경험이야기이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인 경우가 있다는 설교를 하였더니 이를 듣고 귀가하던 신도의 어린 아홉 살짜리 아들이 감동을 받아 청바지를 사려고 모아두었던 전 재산 9달러를 배고프다며 동냥을 구하는 이에게 건네주었다며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라는 격려편지를 받은 후 이 내용을 다음 주 다시 설교하였더니 이 설교를 들은 다른 교인들이 그 소년에게 청바지를 사주라며 십시일반으로 건넨 돈이 자그마치 300달러가 넘었다는 베풂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가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대꽃이 일제히 피어나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쇼생크의 탈출처럼 우리도 절망의 터널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이나 시인의 저 시처럼 내가 너이고, 네가 나임을 서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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