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거짓말로 참말하기, 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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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거짓말로 참말하기, 喝!
  • 법률저널
  • 승인 2008.10.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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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많은 이들이 울화병이 생길 것 같다고 한다. 주가가 폭락하고, 펀드가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면 머리로 맨땅을 들이받을 것 같은 심정이라고 한다. 대외 신용상태가 나빠져 외국으로부터 달러를 차용하면서 국가보증을 요구하는 금융기관 중 어떤 은행의 직원 평균 연봉이 9천만 원을 넘는다는 뉴스를 접하며 곶감만 빼먹으려 드는 모럴 해저드 앞에 아연실색하게 된다고도 한다. 17만 명이나 되는 쌀보전직불금부당수급자를 보면 온통 주변이 도둑놈 세상인 것 같아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고도 한다. 감사원이 이에 대해 감사를 마치고서도 불법 수령자들의 명단을 부당하게 폐기했다는 뉴스에는 더더욱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땅을 친다. 세상살기 힘들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저질렀다는 고시원 방화 및 묻지 마 살인사건을 보면서 뿌리 깊은 사회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고통을 느낀다고도 한다. 그래, 분노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그나마 낫다. 아직은 양심이 살아 있고, 개선의 필요성에 동감한다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회현상을 보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 그게 어때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난망하기 때문이다.


유안진 선생께서 “거짓말로 참말하기”라는 시집을 보내오셨다. 우리 말 다루시는 폼새가 보통 맛깔나신 게 아니다. 이순 가까이 살아오신 삶의 농축된 경험이 은유와 직유 속에 포섭된 시어들로 녹아들어 세상을 향한 잠언으로 다가온다. 인생을 사실 만큼 살아보지 않고서는, 평생 문학에 몰두하신 유안진 선생이 아니시면 결코 풀어놓기 힘든 언어의 휘날림이다. 마치 전쟁터의 최선봉에 선 장수의 큰 칼이 전군을 지휘하듯, 장군기가 하늘 높이 휘날리듯 우리 모국어를 가지고 노시는 모습이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 같기도 하다가도 그 세밀한 언어구사에 도달하기 힘든 깊은 맛을 음미케 하기도 한다.


“거짓말로 참말하기”에 실린 유안진 선생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생각할 게 있으면/가슴에 손을 얹는 이/이마를 짚거나 뒷머리를 긁는 이/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는 이/엉덩이를 꼬집는 이도 있지만/나는 배꼽에 손이 간다//낯선 이들하고도 아무리 가족호칭으로 불러도/한 가족이 될 수 없고/한 가족끼리도 타인처럼 사니까/진실은 천륜의 그루터기에서 나온다 싶어서/어머니와 이어졌던 흉터만 믿고 싶어서/출생시의 목청은 정직하니까/배꼽의 말은 손으로만 들리니까//이만하면 배부르다/이만하면 따뜻하다/너무 생각 말거라/두 손바닥에다 거듭 일러 준다/내 손 아니 어머니의 손이 된다  (유안진의 “배꼽에 손이 갈 때” 전문).


어머니를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착하다. 주변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실감한다. 배꼽에 손이 가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아이들을 예의 바르게 키우기 위해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에게 “배꼽인사”라는 것을 가르치며 훈련한다. 두 손을 공손히 배꼽 부분에 모으고 예의바르게 하는 인사가 소위 아이들이 하는 배꼽인사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손윗사람을 모시는데 두 손을 배꼽 부위에 모으는 사람은 최대한의 겸손과 예의를 차리는 사람의 자세이다. 배꼽에 손을 모으는 사람은 남에게 혼나는 법은 없다. 욕을 얻어먹는 경우도 없다. 시인은 배꼽을 어머니와 생명으로 이어졌던 흉터로 기억한다. 그 흉터는 아픔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지만, 배꼽을 통해서 천륜의 그루터기, 저 먼 생명의 근원을 깨닫는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를 통해 우주 만물의 기원인 창조주 신을 만난다. 까닭에 출생시의 목청은 정직하다고 갈파한다. 세상에 한 생명체를 내어 보낸 신의 메시지가 어린 아이의 출생시의 한 목청이다. 그 아이의 목청은 세계 최고의 성악가조차 따라 낼 수 없는 발성이다. 예전에 성악 개인 레슨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그 선생님의 말씀은 나에게 어린 아이가 소리 높여 울 때 내는 발성방식으로 발성을 하라고 채근하였다. 호흡도 어린 아이가 울면서 하는 복식호흡 방법을 취할 경우 제대로 된 맑고 투명한 소리가 난다면서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나를 혼내키고는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 아이를 잊고 말았기에 예전에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 낼 수 있었던 발성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배꼽으로 손이 가는 빈도가 높아진다. 유안진 선생의 저 싯말처럼 배꼽을 어루만지며 “이만하면 배부르다, 이만하면 따뜻하다”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보낼 때가 많아진다. 잠자리에 들면, 두 눈을 감고 누울 때, 온 몸에 따뜻한 온기가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배꼽에 두 손을 얹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꼽 위에 놓여진 내 손이 사랑 가득 담은 어머니의 손이 되는 순간임을 저 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연구실에 갇혀 지내다 보니 바깥 풍경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제대로 모르게 되지만, 그나마 연구실에서 내려다보는 교정은 울긋불긋한 가을꽃들과 단풍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내 연구실에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학회에서 발표해야 할 논문의 퇴고작업을 하다가 마음에 여유를 찾기 위해 시집을 펼쳐들 때가 행복하다. 시를 읽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다가 생각이 자유로워지면, 나만 괜히 바쁘고 욕심을 부리고 사는 것 같아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탐욕스러워질까봐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로 유안진 선생의 또 다른 시 한 편, “나는 내가 낳는다”가 가슴으로 스며들어온다.


누구의 유전자에도 오염되지 않은/무염시태(無染始胎-오염되지 않은 최초의 태아처럼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의 나는/내가 잉태하기로 했다/다시 태어나야 진정한 내가 될 수 있거든/나는 자궁을 가졌거든//누구의 간섭 어떤 의무도/어떤 관습에도 감시당하지 않고/어떤 규범에도 검토당하지 않는/모든 순치를 거부한 나를 살며/처음부터 끝까지 나로서만 살게 될 새로운 나는/아무도 낳아 줄 수 없으니까//성스러운 사랑과 추악한 스캔들은 동전의 양면이니/성스럽지도 추악하지도 말거라/저 나가 되기 위해서나 그 나가 되기 위해서는/부디 이 나를 배반하거라/나의 태아기는 280일로는 태부족이리니/무한 기다리리라/태초의 아담보다 더 최초의 나이기 위해서는(유안진의 “나는 내가 낳는다” 전문)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궁을 가지고 있다는 저 말은 나를 설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로서만 살게 될 새로운 나는 아무도 낳아 줄 수 없다는 저 말이 나를 침묵케 한다. 배꼽을 통해 어머니를 만나고, 나의 자궁을 통해 나를 만나는 시인은 경이롭다. 삶의 연륜이 묻어나지 않고서는 감히 논할 수 없는 거대한 담론이다. 나의 태아기는 280일로는 태부족이려니 무한 기다리라라는 저 말은 나를 숙연케 한다. 배꼽으로 태어난 나는 280일의 태아기로 충분했지만, 신 앞에 서야 하는 완전 실존체로서의 나는 평생의 태아기로도 부족하다는 절박한 자기 성찰의 고뇌는 나에게 “할(喝)”이 되어 우레처럼 들려온다.


칼 안 든 강도들이 넘쳐나더라도, 한 편의 좋은 시를 읽는 기쁨을 빼앗아갈 수는 없다. 그러면서 스스로 깨우치고 다짐하는 나를 빼앗아갈 수 없다. 저 한 권의 시집을 통해 나는 배꼽의 철학을 배우고, 내가 나를 낳는 산고를 겪는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다. 이 순간은 참 행복하다. 시집을 펼쳐든 이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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