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자살과 살자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 자살과 살자
  • 법률저널
  • 승인 2008.09.11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성경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소중하다고 가르친다. 자신의 생명을 잃으면 우주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가르친다. 그만큼 한 생명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유명 탤런트 안재환씨가 사업실패를 이유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다. 사업실패로 많은 빚을 지고 헤어날 길이 없어 죽음이라는 길을 스스로 택했다니, 잘해보려고 애쓴 결과가 너무 허망하다.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어찌 한 두 번이고,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 이겠는가마는, 그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 인생 아닐까?


사람을 죽이는 게 신이어야 하는데, 요즈음은 인간이 사람을 죽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고,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돈으로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나 잘 살려고 열심히 뜀박질하는 것이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게 우리네 세상이니, 언제 이 세상에 너와 내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도래할 것인가? 에덴동산은 영원히 꿈으로 끝나고 말지도 모른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의 통계보고에 의하면, 여학생 중 70% 가까이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고, 15%가 실제 자살을 시도해 보았고, 남학생은 50%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고, 7.5%가 자살을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청소년시절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더 심리적 갈등을 많이 겪게 되고, 자살충동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통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성인의 자살 통계에 의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자살률이 두 배로 많아진다. 청소년시절에는 여학생의 자살 시도 비율이 남학생의 자살 시도 비율보다 두 배 높지만, 성인이 되면 그 현상은 역전되어 실제 자살하는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많아진다는 점은, 성인 남자들은 그만큼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자살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대신, 여성은 그보다 덜 위험 인자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남자의 자살율이 여자의 자살율보다 두 배로 높은 대한민국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한국의 남자들은 참으로 불쌍하고 불쌍하다. 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되고 지위가 향상되면서 그래도 여성에 대한 배려는 점차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지만, 상대적으로 남성들의 위치가 낮아지고 사회적 상실감이 커지면서 삶의 현장에서 매순간 벼랑 끝 코너로 내몰리고 있고,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는 자살의 길을 택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약간의 기대만 있어도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빠지리라는 절망감에 온통 사로잡힐 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WTO의 무한경쟁체제에서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빈부간의 격차가,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조장하고, 초라한 자신의 자화상을 더 이상 들여다보는 게 고통으로 느껴질 때 죽음이라는 극단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정의 사랑을 일깨우고,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교육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무한경쟁으로 나갈 것만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중요성과 가족의 사랑의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도 가르쳐야 한다. 근본적인 가치변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개발되고 교육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OECD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명 꼴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살률은 10만 명당 21명이 조금 넘는다고 하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 중에서 제일 높은 수치이다. 하루에만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는 나라, 그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OECD 가입 선진국 중 자살률이 제일 높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평화로우면, 미래가 평안하면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내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자살을 시도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 국민소득 2만 불을 구가하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리 자살률이 높은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미래에 대한 삶의 보장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이가 늘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 6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자의 35% 가까이 차지했다고 하니, 노인들이 건강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현실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서울의 자살률은 20% 정도인데, 강원도의 자살률은 무려 33%에 달하고, 충청도의 경우도 31%에 달한다고 한다. 살아가기는 서울이 더 각박할 것 같은데, 농촌지역이 오히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시골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고, 대부분 염세적, 비관적 자살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 자살을 앞 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자꾸 보낸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결단을 내리기 앞서 주변인들에게 살고 싶다는, 살려달라는 신호를 자꾸 보낸다는데, 주변 사람들은 제 살기 바빠 그 신호를 인식하지 못하고, 왜 이리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가 하며 오히려 핀잔을 주거나, 외면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결과를 직면하고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이미 생과 사가 구별된 이후이니 어쩌랴?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또 누군가 자살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내딛는 걸음걸음이 허방일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손내밀어주는 이가 없고,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는 세상, 그 적막함과 막막함을 견디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자살하는 이들의 심정을 백분의 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그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어 마음이 안타깝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말로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소한 이해에 얽매여, 이기심에 얽혀 제 실속만 차리기 급급한 모습을 보여 온 게 내 모습이 아닌가 싶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십대의 자살률이 3% 정도로 제일 낮고, 그 다음이 이십대 12% 정도, 삼십대와 오십대가 각 16% 정도, 사십대가 25%, 60대 이상이 30%를 훌쩍 넘어서는 것을 보면, 삶의 질곡의 정도만큼 자살비율이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의 질곡만큼...... 그래도 신이 죽으라고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