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20년, 그 성과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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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20년, 그 성과와 과제
  • 성낙인
  • 승인 2008.09.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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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1987년 헌법은 1948년 헌법제정 이후 40년 동안에 자행된 헌법의 불안정을 종식시키고 이 땅에 헌법의 안정을 가져왔다. 두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하여 나라의 민주화도 달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기관이 헌법상 논쟁을 재단한 헌법재판소다. 제2공화국의 짧았던 민주주의의 봄날에 채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헌법재판소는 87년 민주헌법으로 환생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를 도입할 시점에만 하더라도 그 장래에 대하여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었다. 심지어 헌법학자들조차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헌법재판소가 이제 20돌을 맞이하고 있다.


헌법재판이란 헌법적 분쟁에 관하여 정부나 국회가 아닌 사법기관의 일종인 헌법재판소가 사법적 판단을 가하는 제도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부나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선출된 권력기관이다.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권력을 직접 수탁 받지 아니한 사법기관이 선출된 권력에 대하여 메스를 가하는 것이 가능하냐의 의문이 제기된다.


사실 근대시민혁명 이래 착근된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의 작용에 대하여는 그 어떠한 통제도 불가능하다는 명제에 기초해 있었다. 즉 국민주권은 곧 의회주권을 의미하였다. 헌법이 국가의 최고 규범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의회가 제정한 법규범이 비록 헌법에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 그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는 ‘법률은 국민의 일반의사(총의)의 표현’이라는 명제에 이르면서 의회주권이 법률주권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주권적 수임기관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헌법의 이름으로 재단하여야 한다는 명제는 입헌주의의 실질화를 위한 헌법재판제도의 정립으로 이어졌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헌법국가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은 전통적인 사법체계의 틀을 뛰어넘는 헌법재판기관의 독자적 존재이유를 제시한다.


의회민주주의의 전통이 뿌리내린 유럽에서 헌법재판제도의 정립은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일천한 의회민주주의의 전통 속에서 도입된 한국의 헌법재판제도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의 착근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부담을 안고서라도 입헌주의의 정립은 뿌리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헌법재판제도의 핵심은 위헌법률심사제도이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대하여 그 잘잘못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은 곧 의회의 본원적 권한인 입법권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그 스스로 해결하여야 할 문제조차도 헌법재판에 의탁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헌법재판 20년을 통하여 300건에 이르는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은 한국적 입헌주의와 법치주의가 작동되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행정수도이전 위헌결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등을 통하여 국민에게 강하게 각인된 헌법재판소가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작동될 수 있는 발전적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헌법재판 20년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스스로 공동체의 의사와 가치를 충실히 대변할 때 비로소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과의 관계설정,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원성 확보는 헌법재판소가 국민과 함께 풀어 나가야 할 과제다.


헌법재판의 활성화는 사문화되어 있던 헌법규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제 헌법은 더 이상 국민생활과 유리된 공리공론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생활의 전범(典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헌법재판의 소중한 결과물은 헌법학을 풍요로운 연구의 장으로 인도한다. 헌법은 낡고 오래된 법이 아니라 이 시대의 국민생활에서 오늘과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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