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무오사화, 현대판 역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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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무오사화, 현대판 역사기록
  • 법률저널
  • 승인 2008.08.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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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요즘 나는 시간이 주어지면 조선실록 한글 번역본을 읽고 있다. 근래 조광조에 대한 부분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조선실록의 대단함을 절감하고 있다. 한 임금의 통치기간별로 매일 매일의 일상과 공무를 기록한 역사서가 과연 세상에 어디에 또 있겠는가 하는 감탄과 함께, 기록이 어려웠을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꼼꼼히 사람의 이름과 그들의 언행을 시간과 장소에 맞춰 기록할 수 있었을까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드라마보다 더 사실적인 조선 역사에 빠져들고는 한다. 기록 속에 숨겨져 있는 숨은 맥락을 찾아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보기도 하고, 승자가 기록하는 역사가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노파심까지 곁들여가며 행간을 읽고 또 읽는다. 


조선실록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무오사화는 조선실록 성종대왕편에 기록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발단으로 하여 조선 정가에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벌어진 사건으로, 사초(史草)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여 戊午史禍라고 불리기도 한다.


노무현 정권은 2007년도에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들을 역사의 기록물로 지정하여 대한민국 건국 후 처음으로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을 보관하는 용단을 내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관된 기록이 악용될 소지가 충분히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기록을 남겨야만, 조선실록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실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신념에서 위 법을 제정하였고, 솔선하여 처음으로 위 법의 적용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의 역사는 말한다. 아흔 아홉 가지 잘 한 일에 대한 기록은 후대에 아주 간혹 칭찬받을 수 있을 정도지만, 한 가지 잘못한 기록은 멸문지화를 불러일으키는 단초가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일지라도 한 가지 추문이 밝혀지면, 그 동안 그가 이룩한 역사는 땅에 내동이쳐지고 짓밟히고 만다. 연예계 스타들이 그렇고, 정치인들이 그렇다. 최근에는 그 기록의 정확한 역할을 비디오 영상이 대신하고 있고, 비디오 영상에 잡힌 사소한 흔적들이 한 인간의 역사를 좌우하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를 우리는 거의 매일 접하고 살아가고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로 가지고 내려간 대통령 기록물 사본의 반환문제를 둘러싸고, 서울고등법원장은 검찰이 신청한 대통령기록물관리관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한 열람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였다. 위 법에 의하면, 국회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결의가 있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직접 발부한 영장이 있으면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만 관할 고등법원장은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이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의 안정을 심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등에는 영장을 발부하지 못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위 법은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하여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대통령이 지정한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하여는 열람, 사본제작 등을 허용하지 아니하거나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보호기간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 대상이 되는 기록물로는, 법령에 따른 군사ㆍ외교ㆍ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 대내외 경제정책이나 무역거래 및 재정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민경제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 정무직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물,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 및 관계인의 생명ㆍ신체ㆍ재산 및 명예에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 대통령과 대통령의 보좌기관 및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과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 사이 또는 대통령의 자문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서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기록물 등이다.


보호기간은 각 기록물별로 하되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관하기 전에 대통령이 지정하는데, 그 기간은 원칙적으로 15년 범위 이내이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물의 보호기간은 30년 범위 이내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30년이 지나면 모두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록물관리관은 전직 대통령이 재임 시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에 대하여 열람하려는 경우에는 열람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등 이에 적극 협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위 법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업무를 담당하거나 담당하였던 자 또는 대통령기록물에 접근ㆍ열람하였던 자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 및 보호기간 중인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무오사화는, 항우가 초나라 회왕, 즉 명목상의 황제에 불과하였던 의제를 죽여 빈강에 그 시체를 떠내려 보냈다는 내용의 꿈을 꾼 사림파 김종직이 그 꿈이 너무 신기하고 생생하여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는데, 그것을 춘추관 사관이었던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재직하면서 史草로 남겨 두었다가 성록실록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편찬책임자인 훈구파 이극돈이 전라감사로 있던 중 자신이 장흥의 기생과 어울려 정사를 돌보지 않은 사실과 뇌물을 받았다는 사초를 발견하고 자기의 추문을 기록하지 말아달라는 청탁을 김일손에게 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훈구파들이 사림파를 숙청하기 위한 미끼로 위 조의제문을 악용하여 위 조의제문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난하였다며 연산군을 꼬드겼고, 직언을 서슴치 않은 사림파를 싫어하였던 연산군이 이에 넘어가 이미 죽은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당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언론직 및 사관직을 맡고 있던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 권오복, 이목, 허번, 정여창 등의 사림파를 죽이고 숙청하였던 조선 최초의 사화라고 할 수 있다.


이극돈과 함께 무오사화를 주도했던 인물이 유자광이었고, 유자광은 남이 장군을 역모자로 밀고하여 남이 장군을 죽게 한 자로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e知園으로 상징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물반출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서울고등법원장의 대통령기록물열람을 허가하는 영장발부가 현대판 최초의 史禍의 단초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명박 현 정권으로서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어 열람할 수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한 궁금증은 대단할 것이고, 그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된 기록물들의 열람을 통해 외교안보, 경제정책, 존안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은 강한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다.


이명박 정권에도 몇 명의 이극돈과 유자광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510년 전에 벌어진 무오사화와 같은 무자사화를 2008년 무자년에 획책함으로써 훈구파가 사림파를 제압했듯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을 억압하는 기회로 삼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시대 임금에게는 자신의 사초에 대한 열람이 허용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러한 열람을 목숨을 걸고 간언했던 조선시대의 사관들 같은 기개있는 사관들이 대통령지정기록물을 관리하는 기록관들에게서 많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무오사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훈구파들은 조선을 개국한 공신들이었고, 태조 이성계로부터 성종대왕에 이르는 과정에서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부패한 그들은 삼사를 장악하고 옳은 소리를 해대는 신진세력 사림파들에게 집중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결국 그들은 정권 싸움에서 승리하였고, 그 후 조선의 역사를 지배하였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힘 있는 자들의 전유물인가? 아니면 정의의 횃불을 밝혀드는 이들의 진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인가?


현대판 역사는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이리라 믿는다. 밀실에서 행해지던 조선시대의 역사 기록은 이제 인터넷 시대를 맞아 대명천지에서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어 있으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의 입법정신이 퇴색하지 않고, 올바른 기록물보존의 시금석이 되어 향후 모든 정권의 기록물이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신뢰가 쌓이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조선실록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실록이 기록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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