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장하다, 박태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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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장하다, 박태환 선수
  • 법률저널
  • 승인 2008.08.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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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8월의 열기가 뜨겁다. 베이징에서 전해지는 우리 선수들의 승전보는 우리를 황홀케 한다. 박태환 선수가 자유형 400미터 수영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스포츠로서는 최대의 낭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딴 지 32년 만의 쾌거이다. 그 동안 우리는 격투기에서 올림픽 메달을 주로 땄으며, 좋은 실적을 올려왔다. 주로 권투, 유도, 레슬링, 태권도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격투기는 하나 같이 상대방을 가해해야 하고, 선수 스스로도 가해를 당해야 한다. 두들겨 패야 해고 내다 꽂아야 하고, 붙잡고 늘어져야 했다. 이긴 자도 얻어 맞은 아픔에 고통을 받아야 했고, 질 경우에는 메달도 없이 얻어 터진 상처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고급스러운 운동분야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다. 상대방을 두들겨 패지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으면서, 제 스스로 출중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만으로 우승자가 된 것이다. 육상경기이나 수영경기가 매력적인 것은 제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상을 타기 때문이다. 혼자 앞서서 나가면 0.1초라도 뒤쳐진 자는, 1센티미터라도 뒤쳐진 자는 패배자가 될 뿐이다. 승자는 그에게 가해하지 않는다. 박태환 선수의 수영에서의 낭보는 우리도 남에게 가해당하지 않고 가해하지 않으면서도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이제 겨우 수십 개 메달이 걸린 육상과 수영 등에서 겨우 하나의 메달을 땄을 뿐이지만, 박세리를 보고 자란 박세리키드들이 10년만에 세계 여자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처럼, 박태환을 보고 자라는 또 다른 키디들이 십년 안에 또 다른 박태환으로 태어나 세계에서 한국의 이름을 드높이고, 제 스스로의 이름을 휘날릴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불이라는 상징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물살을 가르며 끝없이 질주하는 박태환 선수의 모습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거기에 승자에 대한 배려와 패자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성숙한 선수의 모습이 더 대견스럽다.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자제심과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배려할 줄 아는 착한 박태환 선수가 돋보인다.


고급스러운 문화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거칠 뿐이다. 뭐 고급스러운 문화가 사치스럽고 허례허식일 뿐이라고, 가진 자들의 허영심의 표현일 뿐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21세기는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자동차를 많이 만들고 반도체를 많이 만들어도, 허리우드 영화 한 편이 올린 수입만 못할 때가 허다하다. 앞으로 우리는 컴퓨터 게임산업에서 세계를 주도할 수 있고, 애니메이션 사업 역시 유망직종이다. 언어적 장벽으로 인한 영화나 오페라 등에서 밀릴지 모르겠지만, 난타 같은 비언어 뮤지컬로 세계의 호평을 받기 시작했고, 비보이들의 현란한 춤사위가 세계를 광분시키고 있다. 우리 국민은 흥을 아는 국민이고, 신명나면 못 할 것이 없는 국민이다. 21세기의 우리 국민은 아이티 강국의 힘을 이용한 문화사업으로 틀림없이 세계를 주름 잡을 것이다. 세계 명품 브랜드의 진원지가 될 것이고, 패션과 예술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여태까지 먹고 살기 바빠, 권투와 레슬링에 몰입해 왔던 우리의 정신이, 이제는 허리띠 조금 풀어놓아도 괜찮을 경제적 수준에 이르렀고, 이러한 경제적 기반은 박태환의 수영과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으로 상징되는 고급 스포츠로의 전이에 맞물려 우리를 한 단계 성장시켜 줄 것이라 믿는다.


박태환선수가 보여준 상징의 힘은 대단히 크다. 서양제국의 독무대였던 국제수영계에 아시아인으로서는 72년 만에 목에 금메달을 매달았으니 어찌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제2, 제3의 박태환이 나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보편적 기쁨이 될 날을 꿈꾸어 본다.


화염병 시위 문화가 고급화된 것이 촛불집회였다고 표현하면 지나친 것일까? 굶주림과 헐벗음에 신음하던 5,60년대를 딛고 일어서, 경제성장기인 7,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독해질 대로 독해져 시퍼런 독재에 맞서 화염병과 각목으로 무장한 채 시위를 벌렸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진압하던 경찰 역시 최루탄을 쏘아대고, 군화발과 곤봉, 방패로 무차별하게 민중을 억압하였고, 급기야는 5.18 사태를 야기하여 수백 명의 국민을 총으로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화염병 시위 문화가 촛불시위로 바뀌었고, 품격을 높였다. 전경들의 거친 진압에 전경들의 차에 “불법주차” 딱지를 붙이고, 무어라 하면 “노래해, 노래해”라고 외칠 정도로 시민의식은 성숙해졌다. 물론 더러는 예전의 거친 시위를 벌리며 전경버스를 부순 잘못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도 있지만, 전체적인 시위 문화 수준은 고급스러워졌고, 평화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를 진압하는 진압문화는 여전히 전근대적이다. 물대포를 쏘아대고 거기에 범인 색출을 하겠다며 형광색소를 혼합하겠다고 야단이다. 방패로 시민을 찍어 누르고, 구둣발로 무자비하게 밟아댄다. 요즘 정부 당국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80년대로 되돌아가는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케이비에스 정연주 사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감사원의 감사, 이사회의 해임결의,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 결정 등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여기저기에서 언론탄압이라고 평가내릴 수밖에 없는 많은 행태들을 보면서, 무지막지하게 벌어지고 있는 낙하산인사의 공기업진출을 보면서, 원칙과 염치가 몰각된 세상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야당의 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다수의 횡포가 시작된 듯,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물론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있다. 약한 자가 꿈틀거리면 짓밟아 버리면 되고, 목소리를 높이면 입에 재갈을 물리면 된다. 온몸으로 바둥대면 묶어 가두어 버리면 되고, 힘을 합하려 하면 격리시켜 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어찌 세상을 힘만으로 풀어서야 되겠는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 아니냐 말이다. 그러면서 그 힘으로 또 못된 부조리는 앞장서서 저질러요. 황당하다 못해 기가 차고 숨이 막힌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을 둘러싼 김옥희씨의 30억 3천만원의 뇌물사건, 유한열 한나라당 고문의 국방부납품비리금품수수사건, 한나라당 김귀환 서울시의장의 금품수수사건 등을 지켜보며, 보수의 부패가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음을 본다. 세상은 박태환으로 상징되는,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고급스러움으로 내달리고 있는데, 보수의 부패는 여전히 과거의 사슬을 끊지 못한 채 망둥이처럼 날뛰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더위에, 수영장이라도 찾아 못 치는 개헤엄이라도 한 번 쳐야 할 모양이다. 어디 열 받아 살겠는가? 태어나면서부터 개는 헤엄을 친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헤엄칠 줄 모른다. 배워야만 수영을 할 수 있는 인간, 이 약한 존재가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고 그리 큰소리만 치고 살려고 하는가? 물에 빠진 자 있으면, 우리가 서로 힘을 합해 건져내야 하지 않겠는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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