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에 대한 아련한 생각에서 합격의 영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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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에 대한 아련한 생각에서 합격의 영광까지”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8.08.0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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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회 행정고시 기술직 수석합격 류대규 합격수기


[들어가며]
대학교에 들어가며 고시에 대해 아련한 생각을 가졌다. 3학년을 보내며 군대 문제와 함께 진로에 대해 걱정을 했다. 2000년 초 고시에 합격하고 장교로 군대에 가겠다고 당찬 생각을 했다. 한 학기 휴학하고 시험 준비를 했다. 그 당시 1차 과목은 국사, 영어, 물리, 기계공작법이었다 커트라인에 10점 가까이 차이가 나며 떨어졌다. 진로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심 끝에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을 하고 입대를 결심했다. 가장 짧게 군복무를 할 수 있는 육군을 선택했고 2001년 4월 논산으로 입소를 했다.

 

▶1차 준비
군대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대를 했는데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군대에서 차량정비 특기를 받았다. 군대에서 상병이 되고부터 여유가 있었다. 1차 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던 영어와 기계공작법 공부를 했다. 거로 단어집과 기계공작법 책을 봤다. 하지만 기껏해야 하루에 1~2시간밖에 공부할 시간이 없었고 몸만 힘들 뿐 전역할 때까지 1회독도 제대로 못했다. 2003년 6월 전역하고 그 해 6월말에 1차 시험을 봤다. 이번에도 커트라인에 10점정도 모자랐다. 이번에는 낙방한 이 점수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10점은 충분히 극복된다고 생각했다. 8월 상경하고 학교 고시실을 찾았다. 그 해 2차 시험을 본 형을 만나 교재 등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2004년부터 행시와 통합되며 1차 시험을, 2월에 2차 시험을 8월에 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은 기간은 6개월. 난 모든 것이 나에게 좋은 쪽으로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2차 시험 공부할 시간이 6개월 정도 되니 내년에 동차해 버리자는 생각을 했다.


8월 26일부터 철저히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를 했다. 밥 먹고 운동하는 시간만 빼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서 돌부처라고 하기까지 했다. 사실 군대 있으면서 공부만 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정말 원했었다. 이런 상황에 감사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까지는 의식적으로 책을 보지 않았다. 운동은 택견을 했는데 아침이나 오후에 1시간 반 정도씩 했다. 일주일에 3~4일했는데 택견은 나에게 주요한 스트레스 해소책이었다. 영어와 기계공작법은 30%씩, 국사와 물리는 20%씩 시간을 할당했다. 한 과목당 3~4시간씩 4과목을 동시에 진도를 나갔고 5주에 각각 1회독을 했다. 12월 말부터는 시간 내에 문제를 풀고 답안지에 마킹을 하면서 실전 연습을 했다. 영어는 금방 좋아지지 않았다. 2004년 2월 초에 1차 시험을 봤다. 역시나 영어가 문제였다. 영어를 제일 먼저 채점했는데 52.5점이 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행히 국사와 물리에서 거의 틀리지 않아서 77.5점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차 준비
2004년 1차 합격자 발표가 5월이었는데 그때까지 맘은 편치 않았다 영어점수가 너무 낮아 전체적으로 점수가 애매했다. 예전부터 기계직 커트라인이 높아서 불안했다. 3월 초까지 놀았다. 논다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고 운동을 더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3월 중순쯤 2차 공부계획을 세웠다. 1차 시험과 겹치는 기계공작법 말고 기계설계, 재료역학, 동역학이 문제였다. 예전에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아니어서 모든 것이 새로웠다. 재료에서 모어원 그리는 것을 2차 준비하면서 정확히 이해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6개월 경험을 살려 그 생활 패턴으로 밀어 붙었다. 6월에 접어들면서 조금은 좋아졌지만 8월까진 안되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차를 목표로 열심히 했다. 8월말 3일에 걸쳐 2차 시험은 봤다. 답안지를 거의 채우지 못했다.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데, 시험장에서 답안지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고민을 하면서 시험을 봤으니 결과는 분명했다. 열심히 공부는 했지만 시험에 대한 대비는 못했던 것이다. 시험을 보면서 2차 시험에 대한 공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크게 2가지였다. 아무리 쉬운 부분이이라도 답안지에 쓸 수 있을 정도가 되도록 이해는 물론 정리해야 한다는 것과 답안지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9월부터 11월 합격자 발표 때까지는 공부를 거의 안했다. 불합격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기계설계책을 조금씩 봤었고 택견 동아리 창립제 준비를 했다. 10년이 된 동아리인데 제대로 된 창립제 한 번 없었다. 10주년이라는 것을 핑계로 크게 행사 기획을 했다. 2달 동안 행사 준비로 바빴고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그 후에 졸업생 모임이 결성되었고 개인적으로 너무 보람이 있었다. 이런 나의 행동을 주위에서 걱정했지만 결과로 보면 창립제 기획했던 두 달의 경험은 3차인 면접 때 중요한 개인 면접 자료가 됐다. 11월 중순에 2차 발표가 났다. 커트라인이 65점정도 내 점수는 49점이었다. 형편없는 점수였지만 내년에 수석으로 합격하리라 다짐을 했다. 올 해 점수에서 30점 이상 올릴 자신이 있었다.


12월, 지난해 합격한 형을 통해 스터디를 구하는 것으로 다시 2차 공부를 시작했다. 스터디는 2005년 1월부터 시작했다. 총 3순환으로 진행되었고 1순환은 내용, 2순환 때는 문제 풀이, 3순환 때는 모의고사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했다.  스터디 분위기가 좋았다. 스터디원끼리의 모든 정보 공개 및 신뢰를 바탕으로 전원 합격하자는 생각으로 스터디를 했었다. 가장 광범위한 기계공작법에 40%를 할애했다. 기계설계와 재료 역학에 30%를, 선택과목은 소홀했다. 선택의 비중이 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어려운 것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운동 안 하는 날 운동에 할당된 시간에 선택과목인 동역학을 공부했다. 전체적으로 기본서 위주로 공부를 했다. 학교 고시실에 참고할 책은 많았지만 거의 보지 못했다. 스터디 준비하면서 문제 출제할 때 뒤적거리는 수준이었다.


답안지 작성 연습은 1월부터 한 셈이었다. 7월 마지막 모의고사 때까지 내가 쓴 답안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는데 그 양이 제법 많았다. 많은 연습을 통해 자연스레 답안을 작성하게 된 거 같다. 7월부터는 스터디 자료만 정리했다. 좀 어려운 것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표시를 해가며 스터디 자료의 부피를 줄여나갔다. 계속 줄이는 작업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부분은 이제 없고 이 범위 밖에서는 문제가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적중했던지 8월에 2차 시험에서는 큰 문제없이 시험을 봤다. 전체적으로 쉬웠다는 분위기여서 좀 불안했지만 작년보다는 점수가 더 훨씬 더 잘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커트라인이 84.76점이 나와 당황했다. 내가 커트라인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그 정도 점수도 대견했다. 실제로 내 점수는 90.38점이 나와서 나도 많이 놀랐다. 믿어지지 않았다.

 

▶3차 준비
2005년 8월말에 2차 시험을 보고 9월에 복학을 했다. 마지막 학기다. 5년 만에 학교 수업을 들었는데 적응이 힘들었다. 고시생의 비애가 느껴졌다. 내가 아는 건 고시 과목에 대한 지식뿐이었다. 11월 중순에 2차 발표가 나고 면접스터디를 조직했다. 기계직 2차 합격자 10명중 6명이 모였다. 10일 정도는 각자 주제를 나눠서 자료를 수집했다. 6명이 나눠서 조사한 자료가 엄청났다. 면접 때까지 다 읽어보지 못할 정도였다. 일주일에 이틀정도 모였다. 나는 다른 스터디를 하나 더 했다. 학교 고시실에 다른 직렬 2차 합격생과 면접준비를 했다. 결국 2개를 했는데 면접 준비 과정은 비슷했다. 시사문제 선택해서 토론하고 개인 발표 연습하는 것이다. 3주 동안 준비했는데 2차 준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스터디였는데 내가 정말 무식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는 게 별로 없었다. 12월 7일 면접이 시작되었다. 행정직부터 시작해서 기술직은 마지막 날인 12일이었다. 7일 면접한 내용을 알아보니 지금까지 준비했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개인적인 경험 위주의 인성 면접이었다. 조금 허탈했다. 발표력이 조금 좋아졌으리란 데에 위안을 삼고 3일정도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나마 나는 동아리 활동이나 다른 활동을 많이 한 편이라 이런 면접이 내게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12월12일 면접을 했다. 오전에 집단토론을 90분간 했는데 사각 테이블에 10명이 앉아서 자체적으로 토론을 했다. 면접관은 관찰만 했다. 오후에 개인 면접을 했는데 준비 시간 30분, 개인 발표 포함 40분간 면접이 진행되었다. 예상했던 대로였고, 중간에 대답 못한 게 있어 걱정했지만 결국 좋은 결과가 나왔다.

 

▶각 과목 교재
-기계공작법: 칼팍의 공업재료가공학을 기본서로 보았다. 드모르간의 생산제조공학을 참고  했다. 기계공작법에 관한 책은 엄청 많지만 이 두 권이면 충분 할 것 같다.


-기계설계: 홍장표의 기계 설계를 기본서로 여러 번 봤다. 설계는 자료를 이용하고 경험식이 많기에 처음에 많이 혼란스러운데 위 기본서를 중심으로 정리를 했다. 홍장표 책만으로 문제는 부족해서 주비날책, 노턴 책 예제를 풀어봤다.


-재료역학: 기어,티모센코 4판 책을 기본서로 봤다. 크랜달책과 비어책을 참고했다.


-동역학: 비어책, 릴리책을 봤다. 동역학은 문제 위주라 그 밖에 어떤 책으로 공부해도 상  관 없을 것 같다.

 

▶마치며
2004 · 2005 2년간은 고시에 올인한 시기였다. 다른 일에 많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마침표를 찍게 되어 너무 기쁘다. 운도 좋았던 거 같고 주위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공부할 때 운동하라고 꼭 권하고 싶다. 운동은 장기간이 수험 생활의 체력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때문이다. 나는 택견을 했다. 택견은 부드러운 춤처럼 보이나 아주 격렬한 맨손 격투기이다. 시합 시에는 극도의 집중이 필요한 운동이다. 2005년도에는 토요일마다 인사동에서 열리는 택견 배틀이라는 시합에 출전하면서 8강에까지 올라갔다.


수험 생활 하면서 난 슬럼프가 없었던 듯 싶다. 그건 운동 덕택이다. 토요일 시합 뒤에 뒷풀이는 다음날 모의고사 보는데 최악의 조건이 되기도 했다. 3시간 자고 피곤한 상태로 머리도 맑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푼 것이 4번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합격자 발표 날 가슴 뛰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많은 수험생들이 가슴 뛰는 짜릿한 합격의 영광을 누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졸필이나마 수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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