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복 판사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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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복 판사의 세상보기
  • 법률저널
  • 승인 2008.08.0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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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밥

 

산촌에 사시던 아버지께서는 가을철 여문 감을 따시면서 먹음직스런 감 몇 개는 꼭 남겨 두셨다. 너무 높은 가지에 열려 있어 따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감나무마다 그렇게 몇 개씩 꼭 남겨 두셨던 것이다. 어릴 적, 그게 그렇게 궁금하였다. 숫기 없는 필자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묻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까치밥!” 그런데 정작 그 속뜻을 제대로 안 것은 어른이 되고난 후이다.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산다. “부지런한 손이 남을 지배한다”(잠언 12: 24 참조)고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아등바등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생각이 든다. 위와 앞만 보며 각박하게 사는 사람들, 오직 잘 살겠다는 일념으로 허리띠 동여매는 사람들, 그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요 이웃 아저씨 아주머니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시다가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성취하였는가싶으면 무쇠 같던 몸에 대개는 탈이 난다. 병들거나 쇠약해져 골골하는 것이다.

 

주위에 살만해지니 심각한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않거나, 혹은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불치병으로 인하여 손도 써보지 못하고 아깝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訣?“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는데 찾아온 불청객은 병마나 죽음이었다. 대개가 정말 열심히 살았고 고생 꽤나 한 사람들이다. 참 안 되었다는 동정심이 절로 생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심각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되짚어보면, 필자의 경우도 사법고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 먹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점점 심해졌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2차 시험을 마치기만 하면 병이 났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이겠지만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보니 여유가 없었다. 간신히 견디며 지탱하던 몸이 시험만 끝나면 봇물 터지듯 그렇게 여기저기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시험 준비 중 긴장감을 풀기 위하여 “빨리 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노를 저어라”며 여유를 부리려 무던히 애는 썼다.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공부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거나 시지푸스의 돌과 같은 것이라서 한 순간만 멈칫거려도 “말짱 도로 묵”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허둥댄다고 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그때는 감히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만큼 마음이 급했다.

 

조급증은 긴장감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는 다소 긍정적인 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별로 이로울 게 없는 것 같다. 지나친 여유는 나태를 불어올 수도 있기는 하지만 여유를 가져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로 볼 수 있고 강약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날아다니는 새들에게는 까치밥을 남겨주고 들짐승 벌레에게는 남은 음식물을 고수레 할 수 있는 것은 여유이고 사랑이다. 어렵거나 바뿐 와중에도 여유를 갖는 것은 삶의 지혜라고 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명절에 떡방아를 찧을 수 없다고 지지리 궁상을 떨지 않고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소리를 흉내 내던 옛 성현의 여유는 참으로 값지고 슬기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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