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진정성과 웃음의 교차로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진정성과 웃음의 교차로
  • 법률저널
  • 승인 2008.07.11 1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종교란 인간에게 있어 무엇일까? 아니 신이란 인간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아주 간혹, 혹은 자주, 신이란 과연 스스로 존재하는 자인가? 아니면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놓은 허상의 감옥인가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을 찾는 존재라고 하는데, 과연 인간과 대화가 통하지 않은 다른 동물들에게 진정 신이란 없는 것일까? 배고프면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인간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한 끼 끼니가 채워지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 지혜를 가진 동물을 인간들이 무엇 때문에 하등 동물이라고 비난할 수가 있는 것일까? 신이란 과연 진정 스스로 존재하는 자인가?


아주 간혹 축구에 열광하다가도, 쥐새끼 한 마리가 공 하나를 놓고 스물 두 명이 서로 뺏으려고, 그리고 이상한 그물 안에 그 공을 집어넣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 참 인간이라는 게 쓸데없는 짓거리를 많이 하는 존재로구나 싶을 때가 있다.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불볕더위가 계속되며 인간을 파김치로 만들어간다. 고유가로 인한 경제적 불안감이 온 국민에게 다가오는 듯하다.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야단이지만, 불볕더위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여름은 모든 것을 풀어놓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인간들은 이에 역행하며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니 자연과 인간의 소통은 아주 요원한 일이다. 촛불이 넘쳐나는 사회는 화재발생 일보직전의 불안만이 넘쳐날 뿐, 평안은 없다.


더운 여름에 임영조 시인의 가슴 서늘케 하는 시 한편을 본다. “두 명의 자객이 판치는/그 나라에는 늘/법보다 칼이 앞섰다/키 크고 잽싼 자객이/키 작고 느린 자객을 눌렀다//언제쯤 끝장날 칼부림인가/서슬 푸른 칼날을 번뜩이며/쫓고 쫓기는 숨 가쁜 나라/밤낮없이 난자당한 열두 아이가/차례로 비명을 질렀다//그 나라 칼은 너무 정확해/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낮과 밤을/분명히 그어주고 잘랐다//밖에는 또 남의 일처럼/꽃이 피었다 지고/새가 울다 날아가고/속 아픈 사람들은 마침내/덧없는 세월을 날로 먹고 죽었다//째깍째깍 무시로 다가오는/저 발 빠른 자객의 발자국 소리/이 세상엔 정말 숨을 곳이 없을까/오늘도 한 송이 꽃잎마저 이울고/나는 시계를 보는 것이 두렵다/살아서 숨 쉬는 자, 꽃잎 지듯/언젠가는 그렇게 살해될 것이므로(시계, 전문).”


시계나라 속에서 펼쳐지는 삶과 죽음의 위기감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 시다. 한 삶 속에서 하지 못할 일이 없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어 보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만, 저 두 개의 시침과 분침이 돌고 도는 그 시간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언제 죽을 날이 되었지 하고 회한을 느끼는 게 우리네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는 간혹, 신이 인간에게 너의 삶은 앞으로 오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라거나 앞으로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적힌 사망예정통지서를 보내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를 포함해 이 어리석은 인간들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나쁜 짓이라는 나쁜 짓은 다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고 골탕 먹일 일은 골라서 하고, 남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것을 빼앗아 제 곳간에 쌓아두고 희희낙락하는 때가 얼마나 많으냐 말이다. 그러니 사망예정통지서를 보내주면 그래도 아 내 인생이 얼마 남았구나,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라는 각성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세상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재깍재깍 무시로 다가오는 저 발 빠른 자객의 발자국소리! 시간 속에서 시간을 무시하고 다가오는, 무시로 다가오는 저 발 빠른 자객의 칼날을 피할 자 아무도 없다는 임영조 시인의 설법은 날카롭다 못해 무시시하다. 마지막 한 줄 - 살아서 숨 쉬는 자, 꽃잎 지듯 언젠가는 그렇게 살해될 것이므로 -은 촌철살인이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회, 나만이 느끼는 이질감이기를 바라지만, 만나고 스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진정성이 쉽게 느껴지지 않으니, 모든 것이 수단이고, 모든 것이 일회용이 되어버린 듯한 이 막막함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특히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사회병리현상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이 공동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함께 믿고 살아갈 만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안식처로 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국제정세가 그렇고, 정치판이 그렇고, 경제판이 그렇고, 사람판이 그렇다.


이상스럽게 요즘 들어 신을 팔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종교지도자들이 어쩔 때 보면 약장사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소위 잘 나가는 부흥사라거나 목사나 설법을 잘 한다는 스님들조이 그냥 수많은 흰소리들을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개그맨 이상으로 웃긴다. 웃음치료인지 뭣인지가 한참 유행이기도 하지만, 웃고 살면 된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 종교지도자들도 신도들을 웃기고, 선생도 학생을 웃기고, 정치가도 국민을 웃기고, 경영인도 근로자를 웃기고, 생산자는 소비자를 웃긴다. 돈 많이 가진 자는 없는 자를 웃기고, 연예인은 관객을 웃긴다.


웃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 절박함은 진지함을 상실한지 오래이고, 그냥 웃기기만 하면 성공한 인생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시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시퍼런 칼날을 세우고, 우리를 살해하려고 어김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인간들은 그냥 웃고 웃고 웃다가 허리가 잘려나가고 있으니, 이 무방비의 도시를 누가 과연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더운데, 날이 더워, 세상이 더워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세상에서 진지해지자고 외치면 이 소리야말로 열 받게 하는 소리밖에 안 되겠지만, 그래도 어쩌랴? 하고 싶으니 할 수밖에. 발 빠른 자객의 칼날이 언제 우리를 살해할지 모르는데, 그냥 미친놈처럼 웃다가 칼 맞고 죽으면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신이시여, 당신은 이 더위를 어떻게 피하고 계십니까?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