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쇠고기 한미협정과 해약금의 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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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쇠고기 한미협정과 해약금의 법리
  • 법률저널
  • 승인 2008.06.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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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이명박 정부는 기어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하는 모양이다. 이제 다음 달 초순경이면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가정의 식탁에 물밀듯이 올라올 것이다. 쇠고기 수입업자들은 눈이 빠져라 고시가 관보에 게재되기를 갈망하고 있고, 쇠고기는 수입되는 즉시 전국 유통망을 통해 팔려나갈 것이다. 우선 먼저 수입쇠고기를 재료로 하여 갈비집이며, 해장국집이며, 곰탕집이며 등등 수많은 쇠고기 관련 식당들이 원가절감이 된다며 환호성을 올릴 것이고, 더러는 수입 쇠고기를 한우라고 속여 팔며 폭리를 취할 것이다. 쇠고기를 주요 원료로 하는 식품제조업체들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약간의 국민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쇠고기를 사 먹을 것이고, 점차 익숙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대부분의 모든 국민들이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반복하여 식당에서 사먹으며 “맛있네!”를 감탄할 것이다.


식당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촛불로 상징되는 저항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값싼 수입쇠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 데 익숙해 질 것이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언제 그랬냐는 듯 광우병을 잊을 것이다. 저항했던 수많은 국민들도 머쓱해진 채로 수입쇠고기를 사먹을 것이다. 그리고서는 저항세력에 저항했던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반대하더니 왜 사먹냐?” 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고, “봐라, 그렇게 반대하더니 수입해 오니 제일 먼저 사먹네.” 라는 조롱을 받을 것이다.


우리 민법 제565조 제1항은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 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배상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명 해약금 조항이라고도 불리는 위 법조문에 의해 계약을 체결했던 사람들은 계약을 지키기가 싫어지면 계약금의 포기나 두 배로 배상하고 계약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대법원 판례가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하였다”라는 것에 대하여 “반드시 계약 내용에 들어맞는 이행의 제공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채무 이행행위의 일부를 행하거나 또는 이행에 필요한 전제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이행의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라고 하여 이행의 구체성이 있어야만 이행에 이르렀음이 인정된다고 한 점이다. 그렇다면 아직 고시가 발효되기 전이니 미국 쇠고기 수출업자들이 이행의 일부를 이행할 리도 만무하고, 이행에 필요한 전제행위를 한 것도 아님은 자명하다. 단지 이행의 준비를 하고 있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국민의 뜻이 아니라면 위 협약을 해제, 파기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필자가 이야기한 바 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협약은 반드시 깨어진다”라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불문율이다. 그러한 가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명확한 논제이기도 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고, 그러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외교력을, 때로는 경제력을, 때로는 군사력을 동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미쇠고기협상은 현재 상태로는 발효 전이다. 물론 양쪽이 고시하기로 합의했으므로 고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게 원칙이니까. 그렇지만 우리 민법이 “계약을 이행이 있기 전에 해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행하기 전에는 얼마든지 계약-국제협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약간의 후유증을 겪지 않을 수 없겠지만, 국제협약이 자국의 이익에 반할 때는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 또 다른 원칙이기 때문이다. 국제협약이 자국에 불리한데도 소가 고삐에 끌려 음메~ 울부짖으며 질질 끌려가듯이 아둥바둥 끌려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국제협약을 파기할 수 없다고 우리를 강압하는 미국이 어떻게 국제협약을 헌신짝 내버리듯 손쉽게 파기해버렸는지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일명 교토의정서라고 불리는 지구온난화규제방지를 위한 기후변화규제방지의 구체적 이행방안이라는 국제협약이 있다. 위 국제협약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협약체결을 위한 국제회의가 최초로 개최되었다. 위 협약의 주요 목적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각종 온실 기체의 방출을 제한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막아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대재앙을 막겠다는 취지이다.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기후 변화협약 제 1차 당사국 총회에서 협약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고,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베를린 위임사항을 채택하였고, 1998년 11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 제4차 당사국 총회에서는 신축적인 제도운용과 관련한 작업을 2000년까지 완료한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행동계획(Buenos Aires Plan of Action)이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2000년 이후 최종적으로 채택되었고, 2005년 2월 공식 발효되었다.


당시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세계 배출량의 28%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지구온난화 주범이었기 때문에 주요 협상국이 되었고, EU를 포함한 38개 회원국은 2012년까지 당시의 배출량보다 8% 내지 10%까지 나라별로 차등을 두고 줄이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위 국제협약에 당당히 서명했던 미국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2001년 3월 일방적으로 탈퇴선언을 하고 탈퇴하여 버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국제 신의를 저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가스 배출 주범인 석유재벌 부시 대통령의 개인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동료 석유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없었다고는 전혀 단언할 수 없다.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해 전지구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지구온난화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을 파기해버리는 후안무치함을 보인 것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한국 등 주요 회원국이 서명한 위 국제협약을 먹다버린 개밥처럼 내던져버린 미국이 내세운 것은 자국의 산업보호였다. 그렇게 가스 배출량을 줄여서는 공장을 제대로 가동할 수 없고, 따라서 자국의 산업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협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한가? 남극의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고 있고, 대기의 오존층 파괴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고, 이로 인한 피부암 환자가 증가추세에 있고, 지구의 해수면이 점차 높아져가고 있고, 우리나라만 해도 해마다 기온이 상승하여 아열대기후로 바뀌어가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이처럼 세계 주요 38개국이 가입한 국제협약도 아주 우습게 파기해 버리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미국과 체결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일방적으로 철회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철회했을 때 힘센 미국이 가할 그 뒤의 압박이 두려운 것이다. 그 뒷감당을 해낼 자신과 배짱이 이명박 정부에게는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 껄끄러워져서는 결코 안 된다는 자포자기적 패배주의에 미리부터 아예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친미를 강조하고, 노무현 정부 때 소원해졌던 한미관계 복원을 큰 업적으로 삼고 싶어 하는 보수정권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예 극복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잘 모르는 듯싶어 안타깝다. 이명박 보수정권은 노무현 진보정권이 한미동맹관계를 해쳤다고 하지만, 노무현 진보정권이 이만큼 버티어왔기에 우리의 자존심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고, 이라크침공과 같은 북한침공을 미국의 결정으로부터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전투기로, 탱크로, 폭탄으로, 총알로 쳐들어가봤지만 문제해결이 안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부시 스스로 자신이 전쟁광으로 비쳐지는 것이 괴롭다고 얼마 전에 토로까지 할 정도이니 그의 전쟁범죄행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그 결과 덕(?)을 본 것이 북한이다. 북미간에 대화를 통한 핵문제가 잘 풀려 이제 며칠 후면 북한의 핵냉각탑 파괴라는 상징적 굿거리가 펼쳐질 판이다. 그 행사장에 MBC방송기자를 초대했다니, 그 장면을 생생하게 취재보도하리라 본다.


미국이 위 국제협약을 의회의 비준동의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거부할 수밖에 없는 논리라면, 비준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위 고시도 한국 정부가 국민의 이름으로 거부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어렵다, 국제사회에서 안 죽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세계자유무역을 강조하는 WTO체제는 무한경쟁을 요구하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며 살아나가자니 어찌 어깨가 무겁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쩌랴,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니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나갈 수밖에. 수입해 들어오는 쇠고기를 열심히 먹어 키도 크고 힘도 세지고(머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광우병이 걸리면 머리부터 어떻게 된다니까), 돈도 많이 벌고(쇠고기 값이 싸져서 주머니도 좀 두둑해지고) 해서 잘 먹고 잘 살아보는 수밖에.....


그런데 말이여 시방,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여, 못 사는 나라여? 강한 나라여, 아님 약한 나라여? 정말 모르겠네, 모르겠어. 누가 좀 알챠 줘요. 알챠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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