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인간과 신의 확률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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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인간과 신의 확률게임
  • 법률저널
  • 승인 2008.05.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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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내 삶이 긴 세월을 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생 동안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 모든 것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생각하고, 개별적 독립체로서 사물을 인식하려고 애를 써왔다. 어떠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를 집단 현상으로 치부하여 자포자기하거나 함께 광분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그러면서도 모든 개체는 전체 속에서 존재하고 전체의 일부를 이루며, 전체와 소통되지 않은 일부는 무의미하다는 신념 또한 놓치지 않으려고 다짐하였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살아왔다. 내가 제일 처음 겪은 갈등 중의 하나는 “호남사람은 교활하다거나 헤어질 때 뒤통수를 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었다. 어떻게 그런 잘못된 인식이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겪은 수많은 호남사람들은 하나 같이 인심이 후하고 선량했다. 일부의 호남사람 중에 세련되지 않은 사람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 역시 소박하고 투박한 착한 사람들의 계산되지 않은 행동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을 뿐 그러한 행동들이 눈에 거슬리거나 교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남지방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느 지역사람인들 그 사람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착했을 뿐 집단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모든 것은 확률의 게임이다. 글을 통해 두어 번 확률 이야기를 언급한 바 있지만, 모든 현상의 발생은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확률은 교육과 신앙 등 인간 정신문화의 향상이나 퇴보를 통해 개선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교도소는 존재하고, 그 속에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수감자가 있다. 그들의 분포도는 출생지별 인구수에 비례한다. 교회 등 종교단체 내에도 동일한 확률의 비리가 있고, 교육기관에도 그러한 확률의 원칙은 동일하다. 그러기에 칼을 쓰는 자가 칼에 맞아 죽고, 수영 선수가 물에 빠져 죽고, 등산가가 산에서 추락해 죽을 확률은 그러하지 아니한 자들에 비해 월등 높을 수밖에 없다. 그곳이 그네들의 노는 물이어서 그 속에서 확률게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가 오리건주의 예비선거를 기점으로 사실상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난 5월 21일 확정되었다. 선출직 대의원 수의 과반수를 넘어섰고, 남은 3개 선거구-푸에르토리코, 몬태나, 사우스다코다 등에서 86명의 대의원이 미확정일 뿐이어서 힐러리 클리턴보다 183명의 대의원을 더 많이 확보한 현재로서는 힐러리의 역전은 수치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미 공화당 부시 정권의 실정으로 미국민들은 공화당 정권에 등을 돌렸고, 공화당의 멕케인 후보보다 민주당 힐러리나 오바마 후보가 훨씬 높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확정 전에도 그러할진대 오바마 후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면 그 격차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본선에서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나, 현재의 확률게임에서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확률면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여성인 힐러리와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버락 오바마 중 승리한 자가 된다는 상징은 사뭇 흥미롭다. 1863년에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겪으며 노예해방을 선언한 이후 145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순수한 흑인 혈통의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0.5 흑인 혈통의 대통령 후보가 탄생한다는 사실은 확률의 강을 건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시사한다. 미국 대법원은 1898년 "Separate but Equal"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러한 분리하되 동등하게라는 해괴한 논리가 미국사회를 당연한 것처럼 지배해 왔다. 똑 같은 학교, 똑 같은 버스, 똑 같은 식당을 이용할 수 있지만, 흑인은 흑인끼리만, 백인은 백인끼리만 분리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저 연방 판결은 여전히 흑인을 노예의 후손으로 낙인을 찍었고, 백인들로부터 인종차별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념으로 기능해왔다. 이러한 판결은 1954년 5월 17일 연방대법원 얼 워렌 대법원장의 판결을 통해 “교육은 주 정부의 기능에서 가장 중요하다. 인종적 격리는 수정헌법 제14조에서 보장하는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박탈하는 것이다. 공공학교에서 흑백격리는 흑인아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준다. 충격이 크다. 왜냐하면 인종을 나누는 정책은 흑인 집단의 열등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번복되었다. 흑백인종을 분리하되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미국 수정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하여 인종차별을 공인한 위 첫 번째 소개한 판결을 공식적으로 뒤집기까지는 무려 56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로자 팍스라는 한 흑인여성이 백인이 탄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차량에 탔다는 죄로 위 첫 번째 판결에 반하다고 기소되었고, 이를 다투는 과정에서 위 두 번째 판결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곧바로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위 판결 후에도 여전히 백인들에 의한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히 이루어져왔던 것 또한 현실이다. 백인들은 교육을 많이 받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정치계 역시 그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흑인들은 하층구조를 이룬 채 억압과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그들의 사회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위 두 번째 판결 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백차별운동은 비폭력으로 전개되었고, 그러한 비폭력저항운동의 공헌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그가 수상하고 1968년에 암살당한 후에도 흑인들의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피나는 투쟁이 있어왔다. 그 결과 백인 대통령 링컨과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후 수많은 세월이 지난 2008년도에 와서 흑인의 피를 받고 태어난 오바마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이니 참으로 신기하다. 하지만 그가 만일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그의 집권기간 내내 백인우월주의들의 엄청난 저항을 받을 것이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확률의 게임법칙이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의 사슬에서 벗어나 우리의 의식과 정신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달성해야 할 공동선인지도 모른다. 역시 세상은 작용과 반작용의 순환논리가 적용되는 모양이다. 인간이 저지른 이라크 전쟁 등의 후폭풍으로 수십만 명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과 자연재해로 중국과 미얀마 등 세계 곳곳에서 수십만 명의 인간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 인간과 신이 모두 어리석은 확률게임을 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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