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어머니의 위대함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 어머니의 위대함
  • 법률저널
  • 승인 2008.05.09 1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어머니는 인류의 영원한 노래이다. 세상 모든 이들은 어머니의 기도를 먹고 자란다. 아버지의 기도는 뚜벅걸음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기도는 신조차 꼼짝하지 못할 만큼 강하고 애절하다. 신은 누구보다도 강하지만 어머니는 신보다 더 강하다. 멀리 있는 신은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라고 이 세상에 어머니를 보내주셨는지도 모른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어머니야말로 자식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보호자가 될 수 있을 것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사셨던 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주저앉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던 강인한 분이셨다. 자신에게 약했기에 세상에 대해서 강했다. 자식에게 강하기 위해 자신에게는 한없이 약했던 분이셨다. 지금이야 풍족한 세상이 되어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의식주 문제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 그 당시는 절대빈곤의 시대였고, 주렁주렁 태어난 많은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뼈골 빠지게 일하지 않을 수 없으셨던 분이 어머니셨다. 자식은 어머니의 눈빛을 빨아먹고 살고, 가슴을 파먹고 살고, 등골을 뽑아먹고 산다. 그러기에 세월이 흐르면 어머니의 눈이 젖어들 수밖에 없고, 가슴이 파일 수밖에 없고, 등이 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뼛속 깊이 감추어진 사랑마저 내주면서도 불평불만이 없으신 분이 어머니이시다.

 

오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장성해가는 내 아들을 지켜보며, 돋보기를 코에 걸친 아내의 책 읽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에 대한 짙은 향수에 젖어드는 내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예배당을 찾던 어린 내 모습이 크로스 업 된다. 아니 어둠 속에 어린 내 손을 의지 삼아 밤길을 종종대며 걸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수많은 성경 속의 위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셨고, 날더러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시고는 했다. 한 번도 동화책을 읽어주신 적이 없으셨지만, 찬송가가 내 귀에서 떠나지 않도록 늘상 찬송가를 불러 주셨고, 다윗의 이야기며, 삼손의 이야기며, 수많은 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하셨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비가 몹시 내리던 초여름 어느 날 어머니는 그렇게 엄청난 폭우 속을 헤치고 학교로 나를 찾아오셨다. 무슨 일이었던지 등굣길에 혼자 삐져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고 등교한 막내를 위해 일부러 따뜻하게 칼국수 한 그릇을 끓여 대바구니에 담아 먼 길을 걸어 그렇게 비속을 헤치고 오셨던 것이었다. 지금처럼 음식을 담는 용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뜨거운 칼국수를 담은 양철 냄비에 뚜껑만을 덮은 채 흘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며 조심조심 걸어오셨을 어머니, 도로마저 비포장도로였었으니 비에 젖은 진흙탕 길이 얼마나 질퍽거렸을 것이며, 장화가 없으셨던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이 얼마나 흙탕물에 튀기고 비에 씻기고를 반복하였을 것이었겠는가?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어림하여 2킬로미터 정도 되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는데도 막내의 배고픔을 면해주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에 흠뻑 젖어 학교를 찾아오셨던 어머니, 하지만 못난 나는 남루한 옷차림의 비에 젖은 어머니 모습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복도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소리죽여 부르시는 어머니를 제대로 쳐다보기는커녕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말았던 기억이 새롭다.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그 날의 칼국수는 식어있었고, 부어터져있었다. 하지만 그 날의 기억은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매달려 어머니를 그리게 한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애절하고 절박했을 그 날의 어머니의 한 끼 칼국수의 사랑에 목 메어온다. 비오는 날, 그 식은 칼국수를 먹어야했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야속하다고만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식어빠진 그 칼국수가 내 차가운 심장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으니 어머니의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여 참으로 신비롭고 조화롭다.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전날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들고 올라가는 젊은 청년을 만났다. “부모님께서 행복해 하시겠네” 하고 말을 건넸더니 “예” 하고 밝게 대답하며 싱긋 웃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카네이션을 골랐을 젊은이의 모습이 참으로 선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의 젊은 엄마들 사는 모습은 참으로 맹렬하다. 그들은 내 어머니보다 훨씬 많이 배웠고, 훨씬 부자이고, 훨씬 더 전투적이다. 그네들의 자식들이 이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지지 않도록, 아니 어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먼저 경쟁대열에 앞장서서 달음박질한다. 뒤에서 따라가는 아이들이 힘들어하며 헥헥 거릴 정도로 오로지 앞만 보고 돌진한다. 어린 시절, 내 어린 고사리 손을 꼬옥 잡고, 예배당을 찾으시던 어머니 모습을 요즘의 젊은 엄마들에게서는 연상하기가 힘들다. 십자가 단 아래에서 말없이 기도하시며 신앙의 위대함을 가르쳐주시던 어머니, 모든 일에 내 스스로 앞장서 걸어가도록 뒤에서 지켜보시며 말없이 손만 흔들어주시던 어머니, 화려한 말보다는 궂은 일 묵묵히 하시며 땀 흘리는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워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들에게서 쉽게 연상되지 않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친구 같은 어머니, 젊은이들을 쉽게 이해하고, 그들을 선도하며, 가르치는 어머니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젊은 어머니이든, 나이든 어머니이든, 모든 어머니는 자식에게 있어서는 신의 사역을 담당하는 분들이니까, 예전의 방법에 익숙한 내가 요즘의 방법에 낯설어하는 것일 뿐이지 않겠는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광우병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만일 내 어머니가 사흘만 살아 돌아오신다면, 미국산 쇠고기인지, 광우병인지 묻지 않고 “아고 내 새끼 많이 먹어라” 하시면서 내 어린 시절, 일 년에 서너 번 먹으면 많이 먹었다고 할 수 있을 쇠고기국을 끓여 내 밥상에 내어놓지 않으실까......

 

어머니는 신이 주지 못하는 용서와 사랑을 실제로 우리에게 주시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코스모스이리라. 세상 사람들아, 우리 모두의 부모님께 사랑과 존경을 보내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