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서 교육의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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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서 교육의 장으로
  • 성낙인
  • 승인 2008.05.0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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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사법, 행정, 외무 고시 등 각종 국가고시는 젊은 인재들의 최고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멀리는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를 연상케 하고 가까이는 일제시대의 고등문관시험에 비견되는 고시제도는 대한민국 인재의 산실이다. 법과 질서가 잡혀 있지 않고 소위 빽이 통하던 시대에도 고시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최고의 경연장이었다.


산업화과정에서 마땅한 취업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젊은 인재들에게 고등고시의 매력은 남달랐다. 행정과에 합격하면 곧장 군수로 취임하고, 사법과에 합격하면 희소성으로 상징되는 한국적 법복귀족(noblesse de la robe)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고시합격은 평생을 보장하는 축복이었다. 특히 가난한 천재들에게는 신분의 수직 상승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시험에 의존하는 인재선발방식은 젊은 인재들을 고시낭인으로 내몰기도 하였고 사법시험합격의 프리미엄은 인접학문의 황폐화를 부채질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사법시험의 문은 200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사법시험 합격자 1천명 시대를 열었다. 2년의 사법연수원을 거친 법조 초년병에 대한 예우 또한 옛날 같지 않다. 법조시장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09년부터 사법관의 등용문이 시험을 통한 선발 중심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사법시험의 명맥은 2016년으로 종언을 고한다. 로스쿨 제도와 교육에 대한 불확실성이 현존하는 가운데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하는 법조시장은 여전히 사법시험 출신에 대해 강한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의 성패는 어떤 인재를 로스쿨에 받아들여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각 대학의 입시요강을 보면 학부성적, 언어이해 추리논증 논술로 구성된 법학적성시험(LEET)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판 로스쿨제도는 이제 닺을 올렸다. 현행제도를 거역할 수 없다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첫째, 로스쿨제도가 학부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 사회과학에서부터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을 바탕으로 법률가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학생이 우대받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법률가로서의 적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도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1년에 2천명 이상 법조인이 대량으로 배출되는 새로운 상황에서 로스쿨졸업과 변호사자격이 더 이상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일 수 없다. 그런데 로스쿨 입시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로스쿨 준비를 위해 사설학원 문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로스쿨비용이 1억 9천만 원이라는 보고도 있다. 기회비용까지 추가하면 더 불어날 것이다.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부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 다른 한편 비싼 수학비용으로 인해 로스쿨이 기득권 계층의 안식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능력과 적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수학이 어려운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특단의 배려도 잊지 말자.


셋째, 로스쿨졸업은 법률가로서의 첫 출발에 불과하고 더 이상 특별한 가치가 부여되어서는 안 된다. 고시 못지않게 치열하던 회계사시험이 이제 단순한 자격시험에 불과하고 회계사로서 자기가 선호하는 직종에 첫 출발을 내딛는 것과 같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학생선발에서부터 대학이 제시한 특성화 프로그램이 반영돼야 한다. 대학마다 판에 박은 듯한 동일한 잣대로 학생을 선발해서는 로스쿨교육의 다양성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각 대학의 입시요강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인재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 외국어나 각종 자격을 우선시하는 정도이다. 이래가지고는 대학별 특성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특히 소규모 대학의 경쟁력은 특성화를 통한 비교우위를 확보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를 위해 대학에서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일정한 수준만 갖추면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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