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지식으로 망해갈 세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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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지식으로 망해갈 세상이 두렵다
  • 법률저널
  • 승인 2008.04.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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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시작되던 때 세상은 참으로 시끄러웠다. 밀레니엄 버그로 세상의 모든 전자기기가 다운될 것이고,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핵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예금이나 주식이 전자기기의 계산오류로 전 재산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장밋빛 희망으로 금방이라도 지상의 천국이 도래할 것처럼 야단법석이기도 했다. 봄의 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요즘, 흙을 박차고 올라오는 새 생명의 기운들로 발바닥이 아프다. 생명 하나하나의 꿈틀거림이 커다란 송곳이 되어 내 발바닥을 찌르고, 내 심장을 겨눈 비수가 되어 섬뜩하다.


나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21세기는 지식의 폭발로 광란의 시대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깊이 잠긴다. 이소연씨가 한국인 최초로 우주여행을 떠나고, 나노기술의 시대에 접어든 과학문명이 게놈지도를 완성하고, 모든 것을 초 단위로 해결해나가는 세상이 되어 모두를 편리하게 해주고 있지만, 넘쳐나는 지식이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가장 확실하게 끌어당길 흡인력이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 그 사람들은 아는 것을 내적 교양으로 쌓아 자신의 인격 체계를 두텁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는 것만큼 표현해야 하고, 아는 것만큼 힘을 과시하려고 하고, 아는 것만큼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불붙는 속도전의 세상에 사는 만큼, 조금만 지체해도 보이지 않을 만큼 뒤 쳐져버리는 무서운 현실 앞에 떨고 있는 거다.


얼마 전 아는 지인의 죽음을 보았다. 젊어 청상이 된 그 사람은 성공한 아들의 아내를 몹시도 미워했고, 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별의별 패악을 며느리에게 부리며 억지스럽게 세상을 살다가 아흔이 다 된 나이에 죽었다.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던 많은 이들이 초상집에서 다들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죽으면 그만인 것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며느리를 괴롭혔을까 하고. 신기한 것은 그 며느리가 어느 누구보다 서럽게 울더라는 거다. 팽팽한 긴장의 줄을 놓아버린 허탈감과 평생 구박만 받고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이 겹쳐서였을까? 주변에서 아는 지인의 죽음을 접할 때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사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일까 하고 묻고 또 묻지만 역시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지 모르겠다. 결국 그 우문에 대한 현답을 얻지 못한 채 또 하루를 바둥거리며,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넘쳐나는 지식은 새로운 독재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는 언어의 통제가 사고의 통제를 가져오고, 다시 정보 통제를 통해 절대권력의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 조지 오웰은 그의 작품 동물농장에서 평등을 주장하던 동물들이 다시 불평등의 극치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모순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고 외치며, 그렇게 백안시하던 인간들의 삶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동물들의 묘사를 통해 현실과 미래, 미래와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2008년의 오늘은 어떠한가? 언제나 오늘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이고, 동물농장이다. 인간이 영리해지면 질수록 억압과 어리석음의 농도가 진해질 뿐 결코 1983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1984년이 바라보는 1983년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세계는 전쟁 중이다. 총으로 싸우고, 돈으로 싸우고, 지식으로 싸우고, 이념으로 싸운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들 망령에 불과한데도 그러한 망령들이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몇 사람이 조종하는 전쟁수행을 위한 작전계획에 따라 모두들 덩달아 어깨춤을 추고 죽을지 살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피터지게 임무수행 중이다. 결코 승자로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싸움을 싸우고 있다. 몇 녀석은 총을 들고 총알을 피하며 열심히 전쟁터를 뛰고 있고, 몇 녀석은 전투기 속에서 폭탄을 투하하고 있고, 몇 녀석은 탱크를 타고 포화 속에서 굉음을 내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모두 죽을 녀석들인데도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몰라 계속 뛰고, 날고, 기고 있다. 총알을 피해갈 거라며, 폭탄을 피해 갈 거라며 열심히 뛰고 있지만, 총알 피하는 군인이 어디 있을 수 있을까? 결국에는 모두가 총알받이다. 무섭고 끔찍할 뿐이다.


컴퓨터를 켜고 게임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모두가 절대자가 되어 앞에 펼쳐지는 모든 적들을 해치워버릴 수 있다. 왜 그들이 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한 번은 이쪽을 적으로 삼았다가 또 한 번은 저쪽을 적으로 삼으면 된다. 게이머가 지정만 하면 그는 아군이 되기도 했다가 적군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뛰어난 게이머일수록 의리나 질서가 있을 리 없다. 다시 말해 제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순간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오직 기분에 따라 아군과 적군을 나누고, 아군은 무지막지하게 적군을 섬멸할 뿐이다. 게임에 지게 되면 혼자 입안에서 상소리 한 번 내뱉고 홧김에 아군과 적군을 바꾸어 이제 조금 전의 아군을 적군 삼아 총을 쏘아댄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오직 타도의 대상만이 있을 뿐이고, 왜 그를 죽여야 하는지, 왜 그를 물리쳐야 하는지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 무미건조해 시시하다. 게임 속의 섬광도 없고, 게임 속의 긴장감도 없다. 그러니 세상을 향해 한 번 장난쳐볼까 하는 불끈거리는 충동 앞에 거침없이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21세기는 지식이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을 여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과학이 발달하고 있는데, 종교는 더욱 발달하고 있고, 거미줄처럼 얽혀든 종교교리는 인간을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인간 몰모트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사색하는 인간이 적어지고 있는 21세기는 그래서 넘쳐나는 지식의 바다에 모두가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사랑의 인문학이 그리울 뿐이다. 풀피리소리가 듣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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