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복 판사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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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복 판사의 세상보기
  • 법률저널
  • 승인 2008.03.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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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기적을 낳는다

 

  오래전, 고시공부 할 적에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과 클로드 브리스톨의「신념의 마력」(The magic of believing)이다. 거듭되는 실패로 인하여 잃어가던 자신감을 되찾기 위하여 읽게 된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두 책에서 얻은 영감은 지금도 뚜렷하다. 긍정적인 생각과 굳은 믿음. 이것은 지금도 나의 정신적 방향이다.

 

  믿음의 기적은 성경에서도 곳곳에 설파되어 있고, 살아오면서도 숱하게 듣고 보아왔다. 믿음이 질병을 치유함은 경험적 실증이다. 약효가 없는 약이 병을 고쳤다는 사실에서 “상상력은 어떤 생각이나 의식보다 강한 것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반복적 암시는 몸과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자기암시요법”의 창시자 꾸에(Emile Goue)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믿음이 질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번 보고들어서 익히 아는 바이다.

 

  불치병환자가 병원치료를 포기하고 스스로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산골로 들어가 자연식을 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더니 그 불치병이 깨끗이 나았다거나, 주술적 민간신앙을 믿는 사람이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렸더니 질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지는 몰라도 거짓이 아닌 참인 경우가 허다하다. 구복신앙적인 요소는 모든 종교에 어느 정도 있는 법. 실지로 이러한 기적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주술적인 사이비 종교마저도 어느 정도의 치유능력을 갖는 것은 순전히 믿음 때문이다. 믿음은 사람에게 놀라운 능력을 선사한다. 달리 말하면 기적을 낳게 해준다. 이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그 어떠한 일에서든지 마찬가지이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확신을 가지고 노력하면 세상에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일은 없다고 본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데 모으면 어떤 일이 이루어 지지 않겠는가?)의 마음가짐은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이는 신념이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고 긍정적인 생각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오죽하면 ‘의지는 능력을 선행(先行)한다’고 하겠는가. 자신을 믿고 올인(all-in)하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능가하여 발휘하게 된다.

 

  믿음이란 달리 말하면 자신감이고 희망이다. 자신감은 사람의 기(氣)를 살리고 희망은 생명력을 준다. 희망은 망상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희망은 자신감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희망은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오기와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없다면 헛된 꿈에 불과하다. 최선을 기대하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밀고나가야 한다. 외곬으로 오직 성취만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야심이요 실천이다. 자신을 믿고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은 게으른 겁쟁이까지 알아서 챙겨 주시지는 않는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마태오 7:7-8)

 

 

 

 

 

 

 

 

 


      인정이 넘치는 법정을 그리며

  재판은 대개 재밌고 보람이 있지만, 김새고 불쾌한 때도 더러 있다. 무슨 천금(千金)이라도 얻는다고 걸핏하면 핏대 올리며 아귀다툼하거나 도끼눈을 뜨고 대드는 당사자를 대하다 보면 세상이 참 각박하고 살벌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면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로 넘치는 곳이 또한 세상이다.

  “법정에 험악한 당사자가 점점 늘고 있어요.” 재판을 마친 참여관의 말이다. 별 다른 증거도 없이 재판을 걸어 놓고도 판사로서 판단이 서지 않아 입증을 요구할라치면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벌써 안색이 변하면서 이맛살을 찌푸리는 당사자, 입맛에 맞는 말이 아니면 귀담아듣지도 들으려하지도 아니한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피해망상증에라도 걸린 듯하다. 생소하기는 하겠지만 주장책임과 입증책임에 대하여 아무리 자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여도 못 알아듣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듣기조차 거부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입증책임이 있는 당사자에게 입증하여야 한다고 거듭하여 설명하더라도, 자신에게만 증거제출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편파적인 재판진행이라고 여기는 당사자가 의외로 적지 않다. 바라는 판결을 빨리 해주지 않는 한 불만이요, 법정에서 대드는 것을 사법부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쯤으로 여기는 당사자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당사자의 재판을 하는 날은 참 맥 빠지고 기분 언짢다.

  아이러니하다. 국민을 섬기겠다며 친절법원으로 탈바꿈하니, 소위 악성당사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 민원부서에 행패부리거나 큰소리치는 민원인이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심지어 법정에서마저 질서를 지키거나 재판장의 권위를 인정해주기는커녕 수틀리면 재판장과 한 판 붙거나 법정난동이라도 부리겠다는 태세인 당사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감치명령을 통하여 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줄까말까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날은 정말 고민스럽고, 그리고 고단하다. 퇴근 후 머리도 식힐 겸 멀거니 TV 채널을 돌리거나, 신문이나 잡지나 책을 꺼내어 뒤적이다보면 눈에 번쩍 띄는 별세상, 정말 놀라운 사람살이가 있다. 세상에는 밝고 바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코끝이 찡하거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애절한 이야기,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이야기, 가슴 벅차거나 목을 메게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 나 자신의 이기적인 삶과 대비되어 자괴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희생적인 이야기 등등. 이러한 이야기를 시청하거나 읽고 나면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뜨거워진다.

  법정에서도 이런 감동적인 장면들이 벌어질 수는 없을까. '법대로‘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에 비하여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애타심이나 동정심이 덜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분쟁당사자들도 마음을 닫고 있어서 그렇지 누군가에 의하여 마음의 문만 열게 되면 그 분들과 하나도 다름이 없이 인정이 넘치고 훈훈해지고 너그러워질 텐데….

  별종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법. 법정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 부정적인 별종도 있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법정에 선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러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동정심이나 따뜻한 마음은 존재한다. 이분들 사이의 분쟁에 대하여서만이라도 쌍방이 만족하는 해결,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 줄 수만 있다면, 법정도 인정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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