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탐욕이 가져온 더 큰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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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탐욕이 가져온 더 큰 수치
  • 법률저널
  • 승인 2008.03.0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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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봄이 오는 것은 대부분 소리와 빛으로 안다. 아니 그보다 먼저 파장으로 알 수 있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우주는 언제나 힘으로 인간을 제압한다. 아주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하지만 인간은 봄이 오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스스로 봄이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너무 두꺼운 겨울외투를 입고 사는데 익숙해져 있거나,  아주 간혹 너무 뜨거운 곳에서 발가벗고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지난 3월 5일, 삼성으로부터 정기적인 뇌물을 받아온 사람들의 추가명단을 공개하였다.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 이종찬 청와대민정수석비서관 내정자,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등이 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천주교정의사현구제단은 뇌물 수수자 명단을 밝히기에 앞서 그들이 스스로 회개하였다면 명단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국민들과 그 명단 거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전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국가고위직, 그것도 국가 최고사정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장과 청와대민정수석비서관으로 가려는 행태 앞에 더 이상 그들의 비리를 방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그들이 그냥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갔다면 명단을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그들이 국가사정기관의 고위직에 임명되어 더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잡는 반역의 역사가 전개되는 것을 어떻게 방치할 수 있겠느냐며, 비리와 불법이 은폐되거나 조작될 개연성이 높아져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없게 되는 더 악화된 불의사회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충정에서 명단을 밝힐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사제단이 인용한 신약성경 마태복음 12장 43절 내지 45절이 눈에 밟힌다. “악령이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성경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그렇게 되리라.”라고 되어 있다.


이 성경말씀은 예수가 선교하던 당시 사회지도층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며 예수를 시험하려 할 때 비유로 그들에게 답한 말이다. 예수는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비유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었다. 남들이 볼 때만 의롭고 선한 척할 뿐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착한 신앙생활을 하는 듯 외부포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썩어 악취가 날 정도로 타락해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또한 지난해 삼성그룹의 비리와 구조적 부패상을 공개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의와 부정을 청산하지 않는 한 오늘의 사회적 난맥상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충정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양두구육의 모습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은인자중하지 않은 채 먹기 좋은 떡이라고 덥석 무는 모습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기 전까지 타인인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만천하에 그러한 비리가 폭로되면 그보다 더 추한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물론 거명된 당사자들은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며, 법적대응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처음 삼성비리가 폭로되었을 때 삼성그룹은 전체가 하나가 되어 그런 일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던 것처럼 말이다. 직접 뇌물을 건넨 사람이 뇌물을 주었다고 한 자조차 그런 일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한 마디로 가관 중의 가관이다. 하지만 특검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삼성이 부인했던 사실들은 거의 대부분 진실로 밝혀지고 있다. 비자금조성, 차명계좌, 빼돌린 비자금으로 고가미술품구입, 전환사채인수포기 및 주가조작 등으로 인한 삼성그룹 지배권의 편법승계 등 대부분의 폭로사실이 점차 그 실체적 윤곽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면서,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삼성은 여전히 증거인멸에 모르쇠 작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삼성특검이 밝혀낼 수 있는 것은 그 동안 저질러온 삼성비리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형사소송법이 추구하고 있는 “적법절차에 의한 증거수집”의 한계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물 위로 솟아있는 빙산은 수면 아래 감추어진 빙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수사기관이 증거를 통해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그 피의자는 무죄이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인권보장의 대원칙 때문에 사실은 수많은 범죄자들이 대로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스스로 더 수치의 구덩이로 빠져들고 있을 뿐......


삼성에 대해 진짜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진정으로 반성할 줄 모른다.”라는 점이다. 삼성과 관련된 모든 사건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하나같이 처음에는 일단 “그런 일은 없으며, 알지도 못한다.”였고, 나중에 진실로 밝혀지면 그때는 “그것은 그 행위자 개인에 국한된 사항이었을 뿐이고 삼성은 관여한바 없다.”였다. 먼저 나서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사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시 말해 삼성은 그 동안 한 번도 사과다운 사과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일본정부가 일제강점기의 잘못에 대해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형식적 사과를 반복해오면서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 자는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내적 결심이 없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타인을 속이고 있다. 발가벗겨져 모두 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정말 바보다. 삼성은 대한민국 천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바보들이 득실거리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삼성 내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삼성의 행태에 대하여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삼성의 악취를 보면서 자괴감에 빠져 있을...... 그러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정신병에 걸리지 않기를 위로할 뿐이다. 봄이 오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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