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높은 곳에는 무거운 것을 두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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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높은 곳에는 무거운 것을 두지 말거라
  • 법률저널
  • 승인 2008.02.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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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변호사/시인

 

21세기는 말 잘 하는 사람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20세기 이후 자기 PR이라는 말이 당연시되면서 은인자중하며 말을 아끼는 자가 인자라고 칭송받던 시대는 막을 내린지 오래 되었다. 자기 PR 정도를 넘어 교언영색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어디든지 말이 넘쳐나고 있다. 공자는 논어의 학이편에서 巧言令色鮮矣仁(교언영색선의인)이라고 하여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 개 케이블채널이 상시 가동되고 있는 오늘, 어느 곳에서도 말 못하는 사람이 없고 웃는 얼굴을 하지 않은 자 없으니, 공자가 살아온다면 기절초풍할지도 모른다. 공자가묘에 적을 올린 한국인이 34,000명 정도라는 것이 공자 족보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공자탄신 2560주년이 되는 내년에 발간될 공자 족보에 오를 공자의 후손이 한국인 중에서도 3만여 명에 이른다니 많기도 많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말을 교태 있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訥言敏行(눌언민행)의 사람이다. 눌언민행, 군자란 언어에는 둔하여도 실천하는 데는 민첩해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으로 논어의 이인편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눌언민행의 사람들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교언영색의 말장난에 능한 사람들이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그냥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 스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세상은 달라져도 많이 달라진 셈이다. 이번 총선판에도 얼마나 교언영색의 인간들이 넘쳐날지 지켜볼 일이다.


문제는 웃는 것만으로 세상이 좋아진다면 누가 웃지 않으랴만, 지나치게 웃음이 헤퍼지다 보니, 진지함이 사라져버려, 세상에서 신중함이나 깊이 있는 무게가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를 경원시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어진 현상을 미래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해프닝으로만 받아들여 가볍게 치부함으로써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때 가서야 혼비백산하여 사후약방문을 들고 설쳐대니 이미 환자는 죽어나간 이후라 어찌해볼 도리조차 없게 되고 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게 숭례문 방화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와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우리는 매년 동일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고, 그 재해의 정도는 더욱 대형화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인간이 높은 빌딩을 지으면서, 인간이 지하로 파고 들어가면서 재앙의 빈도수와 크기는 커질 것이 예견되어 왔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떨어질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지사고,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파묻혀 숨 막혀 죽을 가능성이 높은 게 세상이치이다.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적게 보기 위해 방재라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번 숭례문 방화사건을 보면서 우리 방재시스템에 허점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소방청이 최선을 다했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제대로 방재훈련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고 추궁하면 또 다시 예산과 인력부족 타령을 할 것은 뻔하다. 잘못을 책임지는 놈은 없고 모두 변명거리만 찾으니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놈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책임지는 분”이라고 하랴? 잘못했으면 놈이 되는 거고, 잘 했으면 분이 되는 게 세상이치 아닌가? 놈 소리 듣기 싫으면 잘 해야지. 하모 잘 해야지. 부실한 소방시설 점검과 그 사이에 부정한 소방공무원들의 행태는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철저한 가상훈련이 실시되어 언제 어디서든 출동이 가능해야 하고 출동 즉시 진화에 나설 수 있는 상시체제가 갖추어져야 한다. 적어도 주요시설물을 중심으로 하여 현장훈련 및 시물레이션 훈련이 병행될 수 있도록 소방법 관련규정의 개정도 선행되어야 하고, 실행되어야 한다. 소방공무원들이 출동하지 않은 시간에는 그러한 시물레이션을 통한 가상현장실습이 상시화되어야 하고, 가장 단거리로 짧은 시간에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 누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임무가 주어져 있어야 한다.


군에서는 정기적으로 CPX 훈련을 실시한다. command post exercise - 군사 지휘소이동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전시작전통제가 원활하게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시행되기도 하고, 특수상황을 가상한 뒤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훈련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상훈련을 통하여 인적, 물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주어진 화기와 인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훈련과정을 통해 발견된 잘못을 수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며,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작전을 수립한다. 이러한 훈련의 반복이야말로 실지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게 아니라, 소를 잃지 않기 위해 외양간을 평소에 수시로 점검하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해마다 엄청난 재해를 반복해서 당하고, 또 다시 길게 늘어선 국민들의 성금대열, 그렇게 해서 걷혀진 재해성금은 다시 분배를 위한 과정에서 몇 달씩 방치되고, 관련 취급자들이 또 그 중의 일부를 횡령해서 사회문제가 되는 악순환의 되풀이 구조를 잘라내야 할 만큼 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일까?


과학이 발달하는 것 이상으로 비현실적인 점술이 판을 치고,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는 세상, 그게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임을 볼 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불안해지면 말이 많아진다. 불안해지면 더욱 점쟁이를 찾고 종교를 찾아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혹세무민의 잘못된 종교지도자들이 양산되고, 그들이 스스로 신처럼 행동하려고 할 때 세상은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잘못은 되돌아보지 않고, 모든 게 남의 탓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총체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가치모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고, 힘 있는 자들만이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는 것 같이 느껴지면, 다른 쪽에 위치한 모든 사람들은 적개심과 분노만을 키우게 되고, 교언영색의 자들이 출세하고, 눌언민행의 사람들이 도외시되는 세상이 되면 누가 선을 행하겠는가?


문득 내 어렸을 때 하셨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높은 곳에는 무거운 것을 두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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