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인터뷰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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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인터뷰수석
  • 법률저널
  • 승인 2008.02.2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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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최고령·최연소, 그 이력도 남달라

제48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인터뷰

 

수석 "오답 · 요약노트 최고의 병기"

최고령 "답안작성 연습이 중요"

최연소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독"

 

올해 48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가 발표되었다. 수석의 영광은 2차 시험 평균 62.07점으로 합격한 박정은(26, 서울대 법학과 졸)씨에게 돌아갔다. 최고령 합격자는 김재용(46, 전남대 철학과 졸업)씨, 최연소는 최승호(21, 연세대 법학과 4학년 재학)씨로 밝혀졌다.


수석과 최고령, 최연소 합격자는 그 이력도 남달랐다. 수석 합격자 박정은씨는 서울대 법대 99학번 동기들이 사법시험 준비에 열을 올리던 4학년 무렵 법대 학생회장으로 활약했고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 민주노동당 관악을 지구당 대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을 세우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박정은 수석합격자는 “2차 합격 전까지도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했다”며 수석합격은 예상치도 못했고 지금도 당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고령 합격자 김재용씨는 10여년간 노동운동에 참여했다고 알려졌다. 철학도로써 80년대의 사회 현실에서 고민하던 끝에 노동운동에 참여해온 김재용씨는 이번 합격으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연소 합격자인 최승호씨는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교 과정을 마치고 2001년 연세대 법학과에 진학하여 사법시험 준비를 해왔다.


이런 그들의 특이한 이력들이 수험생활에는 어떻게 반영됐는지 세 합격자들로부터 직접 자신의 수험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합격자들과의 일문일답.

 

-합격소감


박정은(이하 박): 우선 기쁩니다. 붙여만 주면 고맙겠다고 생각했는데, 수석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당황스럽고, 감사하고, 기쁩니다.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


최승호(이하 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는 홀가분함과 함께,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와 각오를 품고 있습니다. 최연소 합격은 결코 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지난 수험생활을 뒤 돌아 보면 모든 순간마다 돕는 손길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좋으신 하나님과, 사랑하는 부모님과, 늘 고마운 벗들에게,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김재용(이하 김): 우선 기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영광을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람이 사는 일생동안 몇 번의 자기전환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저도 이제 새로운 길을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응시동기


박: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법대에 진학하면서 이쪽으로 진로를 잡고 있었습니다. 다만 입학할 때부터 부모님께 대학 다니는 동안에는 사법시험 공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었고, 학교 다니면서는 놀기도 많이 놀고, 이것저것 많이 했습니다. 2003년 여름에 졸업하고 나서, 2004년 초까지 하던 활동들 정리하고 2004년 초에 이제 시험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응시했습니다.


최: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라고 할 수 있겠지요. 힘이 없고 아는 것이 없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적인 힘이 되어주고 싶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깊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범죄피의자와 피해자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돈만 있으면 잃지 않아도 되는, 돈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아직 변변치 못해서 누리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고, 아직 다른 사람보다 저 자신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사법시험에 대한 동기를 물으신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김: 제가 1999년부터 신림동에 와서 사법시험을 준비하였는데, 동기라고 한다면, 먼저 사회의 변화발전에 따라 앞으로 법전문가의 역할이 커질 거라고 생각하였고, 다음으로 제가 당시 30대 후반으로서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수험기간, 수험장소


박: 2004년 3, 4월에 하루 5시간 정도씩 민법학강의(김형배저)와 형법총론(이재상저)을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공부습관 들이기 기간이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는 5월부터 보통 다른 수험생들 하는 것처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2006년 3월까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했고, 2006년 3월말에 신림2동의 독서실로 자리를 옮겨 2차시험을 치렀습니다.


최: 고시생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것은 2003년 3월부터였습니다. 1,2학년 때에는 법대에서 전공수업을 듣긴 했지만, 공부 외의 것들에 더욱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었고, 경험삼아 응시했던 2003년 2월의 1차시험에서는 평균 50점이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공부는 시기에 따라 학교 고시반과 신림동을 오가며 했습니다. 학교 고시반은 시간을 통제해 주고 같은 학교 사람들끼리 동료의식을 느끼며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신림동은 각종 수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수험기간은 약 7년 정도 됩니다. ‘99년부터 시작하여 1차시험에 3번 붙고 올해 2차시험을 6번 만에 통과하였습니다. 수험장소는 제 거주지가 인천인데 신림9동 고시원에 와서 주로 공부하였습니다. 초기에는 고시원방에서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학원근처 독서실에서 주로 공부하였습니다. 개인마다 공부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지만 특히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태해지기 쉬우므로 독서실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장 힘들게 했던 과목과 대처 방법은?


박: 행정법이 힘들었습니다. 뭔가 확실히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바운더리가 넓은 공법쪽에 자신감이 없었고 특히 행정법은 개념이 잘 잡히지 않고, 기본서에 계속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평도 많이 하면서 공부했습니다. 1순환 때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2순환 때 뭔가 더 많은 노력을 투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했습니다. 계속 학원에 다니지 않았었는데, 2순환 때 처음으로 학원에 다녔습니다. 이 때 행정법 강의를 들으면서 좀 빡빡하게 일정을 돌린 것이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기본서와 학원에서 쏟아내주는 자료들, 사례집 전부를 가능하면 놓치지 않고 봐야겠다고 맘먹고 보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물론 결국 100% 소화해내지는 못했어요. ^^;)


최: 가장 좋아했던 과목도, 가장 힘들었던 과목도, 민법이었습니다. 민법은 정말로 방대하고 정치해서, 공부하면서 깨닫는 바도 많지만 끝은 보기 힘든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민법 공부를 할 때에는 작은 논점 하나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민법의 거대한 구조를 늘 염두에 두고서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본서의 목차 부분만을 따로 복사해서 봤던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 처음에는 2차과목 중 행정법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2차과목은 각 과목마다 사례해결방법이 있으므로 그것을 잘 익히는데 노력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각 방법을 응용하는 연습을 많이 하였습니다.

 

-특별한 수험 노하우


박: 사실 그런게 없어서 도움이 될까 싶다. 보통 수험생들 하는 것처럼 똑같이 일정 짜서 공부했습니다. 스스로를 들볶는 성격이라(^^;) 그나마 밀리지 않으려고 애쓴게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1차 때는 오답노트를 만들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마지막에 워낙 책 볼 시간이 없으니까, 오답노트를 꼼꼼하게 만들었었는데, (선배들이 막판에 시간 없단 얘기를 많이 해서, 겁먹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말 막판에는 오답노트만 보는 것으로도 기본서, 문제집, 판례집 함께 보는 효과를 냈던 것 같습니다. 2차 때도 시험 전날 한번 다 훑어보는 것이 관건이라고 선배들이 조언한 것도 있고, 특히 헌민형은 전날 다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하셔서, 아예 헌민형만 요약노트를 만들었습니다. 요약노트 만드는 과정도 공부가 되고, 시험 전날 두 과목씩을 훑어보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시험장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보는데 유용했습니다. 가벼우니까... ^^


최: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기간, 모의고사 점수, 교과서, 하루 공부시간, 다른 어떤 것이 되었든 말이죠.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고시생’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건 자신감을 무기로 살아가야 하는 고시생에게는 정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김: 1차시험의 경우 무엇보다 과목별 시간배분과 공부순서를 잘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차시험준비 때 가령 가족법이나 헌법부속법령 그리고 선택과목 등을 먼저 정리하고, 시험이 임박할수록 기출문제나 모의고사를 시간을 정해서 풀고 점수를 확인하는 일을 꼭 하였습니다. 2차시험의 경우 학원 모의고사를 등록하여 순환별로 진도를 맞추어 따라갔는데 무엇보다 답안작성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들 때는 언제?, 극복방법은?


박: 정말 다행인 것이 특별한 슬럼프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슬럼프를 맞으면 힘들어질 것 같아서, 시험 직전이 아니면 가능한 일요일엔 신림동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쐬기로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남자친구가 많이 고생했다. 거의 강박적으로 관악구를 벗어나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 정말 그 때문인지 특별히 슬럼프가 없었고, 공부시작하기 전2003년에 근 8개월가량 수영을 꾸준히 했었는데 체력도 그 덕분으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2차 2순환 때 안다니던 학원을 갑자기 다니려니까 내 공부시간도 확보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하고 하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가 몸이 가장 힘들 때였는데, 그나마도 1차 끝나고 1순환 때까지 1주일에 한번씩 요가를 했던 덕으로 무사히 견뎠던 것 같습니다. 수험기간 내내 가장 절실히 느꼈던 건 역시 체력의 중요성이었던듯. ^^


최: 47회 재시에 낙방했을 때 많이 힘들었고, 48회 1차시험에서 평균 80점 남짓이 나왔을 때는 더욱 힘들었습니다(주관적으로 불합격을 확신했었습니다).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법시험 합격이 아닌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소유권자로서가 아니라 선량한 관리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 때 배웠습니다.


김: 2003년 2차시험에서 민법과락으로 떨어졌던 때가 가장 힘들었고 그해 1차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2004년 여름까지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남동생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어 다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방법은?


박: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요일엔 꼭 관악구를 벗어나 여기저기 쏘다녔습니다. 1차 시험 직전 한 달, 2차 시험 직전 3달을 제외하고는 남자친구랑 일요일 서울 투어(^^;)한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를 워낙 좋아해서 좋아하는 드라마 보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 방법^^


최: 사실 저는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못 되고, 틈틈이 스트레스를 풀어주지 않으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타입이기 때문에,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 만화나 소설책을 읽는 것은 공부하는 자리에 앉아서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점이 좋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야구연습장에 가서 배팅볼을 치는 것도 몸이 재산인 고시생에게는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각자 알맞은 것을 정하시면 될 텐데, 뭐가 되었든 스트레스를 여럿이서 같이 풀기 시작하면 위험해지는 것 같습니다. 재시 준비시절에 매일같이 위닝과 스타로 보냈던 것은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김: 저는 될수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가령 진도계획표를 짜서 학습을 하더라도 진도는 조금씩 밀리게 마련이므로 조금 여유있게 짜서 수정하면서 학습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휴식은 잠을 자거나 라디오프로그램을 청취하거나 음악을 들었습니다. 저는 술과 담배는 하지 않습니다.

 

-면접시험 어떻게 준비했나?


박: 사실 선배들이 면접 분위기가 매우 우호적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마음 푹 놓고 아무 준비 안하고 있었는데, 전날(나는 둘째날 면접을 봤다.) 심층면접자가 나왔단 얘기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녁 늦은 시간이었고, 난 또 오전조여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었기 때문에 인상 펴고 들어가는게 최고의 방법이다..라는 생각으로 일찍 잤습니다.(선배가 웃기나 하라고, 넌 표정 굳으면 무섭다고 했었다.. ^^;) 혹시 법조문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생각나지 않을까봐 법전을 챙겨가지고 갔습니다.


최: 특별한 준비는 하지 않았고, 신문을 챙겨 보는 정도였습니다. 침착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 이번 48회 사시의 경우 심층면접을 신설한다고 하여 저 뿐만아니라 모든 2차합격생들이 긴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7명을 탈락시켜 우려가 현실화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2차과목을 1회독하려고 생각하고 한두과목을 조금 보았는데 사실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후배들의 경우에도 긴장은 되면서도 책이 읽히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면접에 대한 소감 및 평가


박: 나 같은 경우 질문이 법리에 관한 것과 여성이어서 법조인이 되었을 때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것이어서 별 무리없이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집단면접도 개별면접도 선배들이 얘기해줬던 것처럼 나쁘지 않아서 어떤 기준으로 심층면접자가 가려지는걸까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게시판 등을 확인해보니 개인의 양심과 사상에 관한 질문이 나왔고, 그것이 면접관들의 생각과 다를 경우 설득을 계속 해오시거나, 심층면접으로 가기도 했다고 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법리 등 전문지식 부분이야 당연히 면접관들이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사상과 양심에 대해 평가를 내려 걸러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무원 임용시험도 아니고, 사시는 일종의 자격시험인데 생각이 면접관들과 다르다고 해서 탈락시켰다면 그것자체로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기본틀을 위협한 것이 아닌가.


김: 먼저 심층면접을 첫 시행하면서 7명을 탈락시켜 사실 충격이 큽니다. 탈락된 분들께 위로의 말씀과 함께 내년까지 힘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자격시험인 사법시험에 면접이 강화되는 것이 시대적 상황의 추이라고 본다면 내년부터는 3차면접준비가 강화되고 면접스터디 면접준비학원 프로그램등이 개설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앞으로의 진로


박: 궁극적으로는 여성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부분의 사회적 평등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법대에 가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사실 성적이 다행히 허락했으니 가능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 상상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지만..) 대학입시를 치렀고, 그래서 대학 때 무작정 시험공부를 하기는 겁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다니면서 이것저것 해보며 많은 사람들 도움으로 겨우 내 생각이란걸 갖게 됐는데, 그나마도 서울대 법대 나온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가 이거라 이 길을 택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이 자리에서, 내가 선택한 길에서 열심히 해서 내 생각들을 실천해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연수원 성적이 허락한다면 판사 일을 해보고 싶고, 그 후에는 공부를 좀 더 한 후 사회단체 등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운 후에 구체적인 진로를 결정하게 되겠습니다만,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법조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김: 아직 명확히 정한 바는 없습니다.  다만 늦게 시작하지만 실력있는 법조인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법학과목 뿐만아니라 철학, 사회학, 문학등의 책을 꾸준히 읽을 계획입니다. 

 

-수험생들에게 한마디


박: 사실 고시공부는 수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수단이 좀 우리를 힘들게 해서 그렇지.. ^^; 그런데 목표를 잊고 살다보면 자꾸 수단이 목표의 자리로 차고 올라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하곤 했었습니다. 수단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고, 수단이니 만큼 공부하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시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서 열심히 하시라는 것! ^^ 다들 화이팅입니다~!


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꿈을 사랑해서, 오늘도 그 독한 하루를 살아내신 모든 분들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날들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눈물 흘리며 기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김: 지금 사법시험을 위해 노력하시는 수험생 분들께는 무엇보다 ‘나는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공부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학습방법을 세워 꾸준히 밀고 나가면 좋은 결과가 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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