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아,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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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아, 숭례문
  • 법률저널
  • 승인 2008.02.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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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오호 통재라, 숭례문(崇禮門)이 불타 한 줌 잿더미로 변했노라. 온 백성, 두 눈 뻔히 뜨고 지켜보아야만 했나니, 그 순간 내 혼 함께 불타고 있었으니, 그 통탄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예부터 禮를 숭상함이 자긍이었던 우리 민족, 숭례문 네가 우뚝 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예를 지켜왔음을 우리 어찌 모르랴? 그런데 우리가 먹고 살기 바쁘다며, 아니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최고라며 예의염치 없이 살았더니, 그 예를 지켜내지 못했더니 네 스스로 불길 속에서 예가 사라짐을 보였나니, 어찌 하늘이 무너지지 않고 땅이 꺼지지 아니하랴.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나의 예는 어떠하였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해야 하지 아니 하겠는가?

 

우리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 못한 죄,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그 무서운 독선의 죄가 숭례를 뒤엎었나니 예의염치를 모르면 그게 바로 금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한 필부의 어리석은 방화라며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하여서야 어찌 숭례문이 제 몸 태우며 흘렸을 눈물을, 울부짖었을 통한의 절규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다고 할 수 있으랴! 우리 모두가 그 필부였음을 고백해야 하지 않겠는가? 숭례문 출입의 홍예는 600년 역사 속에서 무지개 되어 우리를 춤추게 했고, 2층 누각의 위엄 있는 자태는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하였나니 600년을 민족과 함께 한 그 생명력을 오늘 우리가 상실하였음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노라. 관악산의 화기를 억제하고자 현판의 글을 세로로 썼다는 양평대군의 넋이 통탄할 일이려니 이게 정녕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숭례문 현판 뜯어 가슴에 안고 내려오는 것으로 제 할 일 다 했더란 말이냐?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백성이 예를 알아야 한다며 창건한 숭례문, 성군 세종이 더 크고 웅장하게 고쳐지은 숭례문, 조선의 제도를 완전히 정비한 성종이 대대적 보수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저 숭례문, 숭례문을 사랑한 그들 모두 조선 최고 임금들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할지니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따라 지어진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지(智)를 정(靖)으로 고쳐 지은 숙정문(肅靖門, 북대문)과 함께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인의예지신의 덕목을 가슴에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의 자존을 지켜온 숭례문, 그러면서도 민족의 아픔도 함께 한 숭례문이었으니, 사대문 안에 사는 자와 사대문 밖에 사는 자는 엄연히 차별되었나니, 남대문 밖에 사는 힘없는 백성들의 슬픔은 크고도 크다고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국가의 헐값 토지수용이 부당하다며 억울하다며 호소를 끊이지 않았던 한 노인, 아무도 그의 억울함에 귀기울여주지 않은 그 막막함이 낳은 국가원망이 재앙이 되어 나타난 사회적 병리현상이 숭례문방화사건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러한 국가원망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병든 사회인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숭례문은 또 다른 국가제도의 상징이었으리니, 남대문을 들어서는 자, 아 여기가 한양이로구나 얼마나 가슴 설레었으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응시를 위해 한양을 들어서던 백면서생들의 휘둥그레진 모습들이 상상이 되고, 이문을 남기고자 남대문에 짐을 바리바리 싣고 드나들었을 상인들의 기대가 떠오르고, 남대문 문지기가 문을 걸어 잠그며 출입을 통제했을 때 낙심했을 힘없는 백성들의 환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철거가 논의되었다는 숭례문, 임진왜란 때 일본의 적장 고니시 유키나카가 숭례문으로 입성하여 한양을 정복하였다는 이유로 철거를 면하였다고 전해지는 슬픔을 지닌 숭례문, 1907년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 친왕의 서울 방문시 비루한 숭례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숭례문의 좌우를 헐고 지나갔다는 멸시받은 역사 속의 숭례문, 조선시대 동쪽의 남산에서 내려온 성곽과 서쪽의 서소문에서 연결된 성벽과 연결되었던 숭례문의 성벽을 전차 개통을 위해 스스로 허물어버린 후 양쪽 날개를 잃은 채 홀로 섬이 되었던 숭례문, 얼마나 많은 백성이 기쁨과 슬픔을 간직한 채 그 성문을 통과하였을까?

 

600년을 민족과 함께 한 숭례문이 한순간의 화마로 잿더미가 되어 모든 국민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고난과 위험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은 기개를 가진 우리이기에 곧 정신을 추스를 것이고, 다시 복원할 것이다. 하지만 남대문에 문턱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농담만으로도 모든 국민을 웃게 만들었던 숭례문,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이 닫힌다라는 노랫말로 어린 시절 흥얼거리던 추억에 상처를 입게 한 숭례문방화사건은 그나마 방화범을 조기에 체포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화재초기단계부터 제대로 진압작전을 펴지 못한 관계공무원들에 대한 엄중한 조사와 그에 따른 응분의 문책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국민의 성금으로 숭례문 복구비용을 마련하자”라는 말을 앞장서서 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조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면 앞으로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강구책을 마련하겠다는 결의만을 말했어야 했다. 많은 이들의 복구성금이 벌써 모여들고 있지만, 나도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낼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기에 대통령당선자는 그 제안을 국민의 몫으로 남겨두고 말을 아꼈어야 했다. 대통령당선자가 국민의 선한 마음을 가로막아버린 위 발언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기도 하다. 국가예산으로 복원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건립한다면 국채보상운동이상으로, 아이엠에프사태 때 전국민의 금모으기운동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던 그 헌신과 애국애족의 정신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인데, 국민화합의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의 위 한마디로 모든 국민의 뜨겁고 순수한 진심이 황당하게 퇴색되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그 말을 둘러싼 적절성 여부에 국민의 여론이 반분되는 것을 보면서 또 한 번 정치지도자의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본 모든 국민은 허탈과 분노, 상심과 통한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다른 문화재 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화재예방 및 도난예방 등 문화재를 문화재답게 보존하여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제대로 지켜나가는 방편이 되기를 바란다. 진정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숭례문은 잿더미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예를 숭상하고, 인의예지신의 덕목을 삶의 가치로 여겨왔던 선조들의 맑고 고운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아, 숭례문, 그 뜨겁게 타들어왔을 화마에 살이 삭고 뼈가 녹아내리면서 얼마나 쓰라리고 아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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