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의 함정(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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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의 함정(7)
  • 법률저널
  • 승인 2008.01.2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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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자질을 담보하기 위하여



Ⅰ. 기술로서의 소송


변호사강제주의를 채택하지 않은 우리 법제하에서는 당사자가 직접 소를 제기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런 경우를 보통 “본인소송”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사람들은 필요한 서류의 종류와 형식을 모르다보니 당사자의 소송 수행이 난잡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송을 하다 보면 필요한 모든 서류를 정확한 양식에 맞추어 적시에 제출하는 당사자들도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십중팔구 법무사 사무실(간혹 변호사 사무실)을 통하여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였다고 보면 된다. 좀 심한 경우는 송달장소도 본인의 주소가 아니라 법무사 사무실인 경우도 있다(대법원의 2006도4356 판결은 이러한 관행에 제동을 걸 듯하다). 이 경우 비록 법정에는 당사자가 출석하여 있으나 실제로는 배후의(?) 법무사가 리모트 컨트롤러로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런 “리모콘 소송”(?)의 경우, 서면의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잘 된 것 중에는 변호사가 쓴 서면 못지 않게 잘 쓰여진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상당수는 당사자의 주장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적은 듯한 것들이다. 좀 심한 경우에는 당사자의 법리적·사실적으로 불이익한 주장을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황당한 것들도 없지 않다.


어느 경우가 되었건 절차적으로는 매우 충실하게 서면이 작성되어 있다. 따라서 당사자들로서는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패소하는 경우도 있다. 절차로서의 소송은 이처럼 기술적으로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야 뭐가 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법원의 공무원으로 수년간 일해 보았다거나 법무사 시험을 합격할 정도의 공부를 한 사람 들이라면 어떻게든 소송은 수행할 수 있다.



Ⅱ. 교육의 이상과 실재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자는 측에서 기존의 법과대학 체제에 대한 공격의 무기로 전가의 보도처럼 삼은 명제 중의 하나가 “법대를 나와도 소장도 한 장 쓸 줄 모른다”는 말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법대를 졸업하고도 소장 한 장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이러한 문제의식하에서 출발한 로스쿨 제도는 “실무가”를 양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목표가 그러하다면 불가능할 것은 없다. 필자도 3년 동안 잘 가르치면 적어도 소송의 기술적인 측면은 어느 정도 습득시킬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3년 동안 절차법만 가르쳐서는 위에서 본 것처럼 절차적 측면에서의 기술만 있을 뿐 실체적 측면에서 법논리를 전개하는 능력은 키워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3년 동안 응당 실체법도 가르칠 것이다. 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화 시대에 맞추어 외국어 능력도 키워야 하고, 전문화 시대에 맞추어 전문 법률과목도 가르쳐야 한다. 무엇 하나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물경 10년도 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양창수 교수가 쓴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저스티스 28권 1호(1995년) 소재, 인용은 재수록된 양창수, 민법연구 제4권 57면에서].


도대체 어떠한 인간이 어떠한 인간을 가르치기에, 단지 4년 동안의 교육으로 그러한 技術者에다가 賢人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러한 기대를 충족할 능력도 신념도 없으며, 단지 이러한 비난의 지나침에 어이없어 할 뿐입니다.


다른 곳도 아닌, 사회 통념상 가장 우수한 고등학생들이 진학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양창수 교수의 글이다. 로스쿨 추진론자들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인류가 획기적으로 진화하여 과거의 가장 우수한 대학생들이 4년 동안에도 못 성취할 교육을 3년 동안의 대학원 교육으로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필자의 우려는 바로 이점에 있다. 과거 지나치게 이론적인 지식 주입에 대한 반발 내지 비판으로서 “실무”만을 강조하게 되는 폐단이다. 4년간 교육해도 부족했던 것을 3년에 다 마치기 위해서는 과거의 교육 과정 중 일정 부분은 희생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체법적인 지식을 희생한 대가로 소송의 절차적인 측면만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Ⅲ. 이상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더욱 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제화·전문화시대에 부응할 전문적 변호사를 양성하고자 하는 이상은 좋다. 로스쿨이 그러한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인지도 필자로서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여기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기로 한다.


좋은 법률가는 법치질서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로스쿨에서 좋은 변호사가 나와 준다면야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국가적인 재앙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일본처럼 우선은 로스쿨을 수료한 이후에도 사법연수원의 교육을 거치게 하는 완충장치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혹시라도 로스쿨에서 부실한 법률가가 배출되었을 경우 재교육(경우에 따라서는 퇴출)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기존의 사법시험 제도도 상당 기간 로스쿨 제도와 병치시킬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법연수원에서 양 시험의 합격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게 하여 누가 진정으로 우수한지를 비교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로스쿨 출신들이 더 낫다는 것이 입증되면 그때 사법시험을 폐지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법질서의 근간을 바꿀 제도를 모험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러한 중복투자는 결코 낭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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