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역사의 창조자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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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역사의 창조자는 인간이다
  • 법률저널
  • 승인 2007.12.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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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등급제의 세상이다. 명품에서 짝퉁까지,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최상등급에서 최하등급까지 각종 등급이 판을 치고 있다. 선의 축과 악의 축으로 이원화된 등급제는 이라크 침공을 낳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또 다른 분쟁의 핵심에 있다.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도 신용등급이 낮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고, 점수가 1점만 낮아도 상위 등급에 오를 수가 없다. 등급은 일정 범위를 한 울타리로 엮어 판단의 기준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편리한 점이 많다. 그러나 등급제는 인위적이다. 자연적이지 못하다. 수능점수를 받아든 수험생들은 등급제의 부당함을 열변한다. 어떤 과목은 상위 6%까지가 1등급이 된다고 한다. 100점에서 90점까지가 1등급이고 89점은 2등급이 된다. 100점과 90점까지는 무려 10점의 차이가 나는 데도 같은 등급으로 평가되어 동일한 배점을 받는데, 89점은 90점과 1점 차이인데도 엄청난 차별을 받아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 마치 에이 학점과 비 학점이 천지 차이가 나듯이. 10점의 차이를 동일하게, 1점의 차이를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과연 공평한 것인가? 그러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가리지 않고 한 등급이라도 더 받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한 등급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탄다. 불공평을 비난하면서 그 불공평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 그 발버둥을 되돌아보면 스스로 그 불공평의 특혜를 받겠다는 마음 그 이상도 아니다. 아이러니하다. 활을 쏘는 자와 활을 맞는 자가 동일하다. 그게 역사다.


이제 일주일 후면 이 나라의 17대 대통령이 결정되어진다. 그는 상쾌한 새벽을 맞이할 것이고, 나머지 11명의 후보는 통한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들 중 몇몇은 장난삼아, 돈자랑하려고 선거에 나온 이들도 있지만, 몇몇은 목숨 걸고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선거결과가 밝혀지는 순간 역사의 물줄기를 뒤틀어지게 만든 책임을 느껴야 할 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신이 된다.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기에, 역사의 창조자는 신이 아닌 인간이다. 매일 환상의 거울을 만들고 환멸로 거울을 부순다. 희망으로 새벽을 깨웠다가 절망으로 어둠을 잠재운다. 인간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어리석다. 내가 그렇고 네가 그렇다. 우리가 그렇고 그들이 그렇다. 그러기에 신은 존재와 부존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을 조롱한다. 강화 부근 군부대에서 초병을 살해하고 무기를 탈취했던 범인이 체포되었다. 수사기관에 스스로 보낸 편지에서 채취된 지문이 단서가 되었다고 한다. 왜 범인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초병 살해 및 총기 탈취 후 수 만 명 군경의 검문검색을 조롱하듯 전국을 누비며 휘젓고 다니더니 자수를 하였을까? 수 만 명의 군경이 초소마다 검문검색을 강화하니 그 강압의 기운을 견디지 못한 양심이 항복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속에 우주의 신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해바다가 삼성중공업 유조선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간의 사소한 실수가 위와 같은 대재앙을 가져오고, 수많은 어민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그 넓은 바다에서 왜 하필이면 같은 회사 선박과 크레인이 부딪혀 이와 같은 참사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폭로로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삼성에 또 다른 재앙의 책임이 전가된다는 것, 그게 역사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약성경 창세기는 노아의 홍수 설화를 담고 있다. 인간의 흉악함을 보다 못한 하나님이 노아 가족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지시하자, 그들은 120년 동안에 걸쳐 배 한 척을 만든다. 그 후에도 참고 참던 하나님이 인간의 교만과 패역을 벌하기 위해 세상을 온통 홍수바다로 만들어 멸망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지막에는 뚜껑을 연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모든 것은 백일하에 드러나고,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기 시작한다. 단지 신은 뚜껑을 열어놓을 뿐이다. 왜냐하면 신은 어둠 속에도 존재하시기에 그 어둠 속에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마침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뛰쳐나오기 때문이다. 신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우리 인간은 신조차 숨을 쉬지 못하는 세상을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 어쩌랴. 이처럼 신조차 숨 쉬기 어려운 세상에서 용케 인간은 잘도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하지 아니한가?


등급제 세상에서 모두들 못 살겠다고 야단들이다. 최상등급이 아니어서 힘들다는 것이고 1등급이 아니어서 괴롭다는 것이다. 나만은 죽어도 1등급이 되어야 한다고 야단이다. 1등급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못 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1등급에 속하게 된 후 그들이 이제 잘 산다라고 환호작약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니 이를 어쩌랴. 그들도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기는 마찬가지니 말이다. 인간이 역사의 창조자인 한 두려움은 언제나 함께 한다. 그러기에 등급제의 포로가 되어 명품에 현혹되고, 성형에 매달리고, 사교육에 매달린다. 모두가 놓아 버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에 모두들 매달려 동아줄이 끊어질 때까지 발버둥을 치는 게 인간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들도 참으로 많다. 태안반도를 찾아 기름띠 제거에 온 정성을 다 쏟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고,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이들도 있다. 연탄은행에서 독거노인들에게 무료로 연탄을 배달하거나 매일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는 이들도 있다. 구세군 냄비를 따뜻하게 데우는 선한 손길이 있고,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로하는 열린 마음이 있다. 등급제의 울타리를 벗어나 낮고 낮은 데로 임하는 발길이 있고, 눈길이 있다.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역사의 주제자로 남겨놓으신 것이 아닐까? 윌 스미스가 주연인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가 다음 주에 개봉된다. 지구멸망으로 혼자 남게 된 인간 로버트 네빌 역의 윌 스미스가 변종인간들과 최후일전을 벌리며 지구를 구한다는 그렇고 그런 내용의 영화이다. 그렇지만 지구를 멸망시키는 변종바이러스는 결국 등급제에 목을 매고 앞만 향해 질주해 나가기를 강요당하는, 미칠 대로 미쳐버린 인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니 가슴이 덜컥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해안은 다시 생태복원될 것이다. 인간은 순간이지만 등급제를 모르는 자연은 영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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