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광장]늦은 밤 택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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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광장]늦은 밤 택시에서
  • 이승훈
  • 승인 2007.12.07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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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사법연수원생ㆍ37기

 

늦은 밤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내가 술을 좀 마신 상태이거나 입담 좋은 기사님을 만나면 그 시간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 사회, 스포츠 이야기 혹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이슈거리가 있을 때면 신나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기사님의 말을 듣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해 있다. 기사님은 단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장단을 맞추어 주는 어린 손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야기는 기사님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거나 그 분이 만난 수많은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여기에는 그 기사님뿐만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택시에 타서 기사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매우 불편해졌다. 법조계가 부패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법원, 검찰 혹은 변호사 이야기에 이르게 되는데 언제인가부터 택시 기사님의 입에서 법조계에 대하여 그리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는 법조계에 대하여 듣기 거북한 욕까지 듣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손님의 직업은 무엇인지, 법조의 현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니다. 법조계에 있다고 말하는 순간 기사님의 혹독한 비판과 애절한 당부 혹은 충고가 끊임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무엇을 잘못 했기에 이렇게도 비난을 받는 것일까. 처음에는 법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고 기사님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분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같은 법조계를 감싸는 직역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했고 법조는 부패한 집단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바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속된 말로 ‘무엇을 하든 욕먹는’ 상황이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법조 브로커로부터 뇌물을 받은 법조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던 무렵 택시 기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사법연수생임을 밝히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그 기사분은 나에게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런 줄 알았으면 태우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며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 분은 자신의 동료가 사소한 실수로 운전면허가 취소되어 직장을 잃게 되었는데, 그 동료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는 원칙을 들먹이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법조인들이 뒤에서는 검은 돈을 받고 스스로 법의 잣대를 꺾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는 자신의 택시에 법조인들을 태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과 똑같이 될 사법연수생도 포함하여…


생각해보면 위와 같은 비난과 비판은  법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그것은 국민들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법조 자신의 책임인 것 같다. 왜 국민들이 법조에 등을 돌리는지, 법조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택시기사님들의 입을 통해 들은 일반 국민의 법조에 대한 요구는 단지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준을 적용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부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제 사법연수원 2년차에 불과한 20대의 나는 위와 같은 요구에 무엇이 공정한 기준이고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보여 주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믿음이 있다. “많은 법조 선배들이 위와 같은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그 분들에 의하여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단지 그분들은 우리 눈에 띄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소수에 불과한 몇 명에 의하여 법조 전체가 검은 집단으로 오해 받는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나는 법조 선배들에 대한 믿음을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위와 같은 국민들의 요구에 응하고자 하는 그 분들의 노력이 언제인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법조 후배들로서는 선배들로 인하여 받은 좋지 않은 시선을 선배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꾸어 줄 것을 기대할 뿐이다.


요즘은 늦은 밤 택시에서 기사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고역이지만 언젠가는 존경받는 법조인으로서 혹은 존경받는 법조인이 될 사법연수생으로서 떳떳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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