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가면무도회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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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가면무도회의 슬픔
  • 법률저널
  • 승인 2007.11.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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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장중한 서막을 듣는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의 암살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작곡된 가면무도회는 대본에 나오는 당초의 사건 장소인 스웨덴의 스톡홀름이 스웨덴 정부의 검열에 걸려 공연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이 독립하기 전 영국 식민지였던 18세기 보스톤으로 배경장소를 바꾸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보스톤 총독인 리카르도는 아멜리아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의 친구이자 충신인 레나토의 아내이다. 베르디 오페라의 전형적 포맷처럼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하지 못한 채 애간장만 태우는 불륜의 연인관계 내지 삼각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울리카라는 흑인 여점성술사의 예언처럼 레나토는 아내인 아멜리아의 정부인 리카르도를 죽이기로 작정한 뒤 모반자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고, 아멜리아는 이 사실을 알고 리카르도에게 암살계획이 있으므로 예정되어 있던 가면무도회를 취소하라고 비밀편지를 보내지만, 아멜리아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잊기 위해 애쓰던 리카르도는 레나토 부부를 멀리 떠나보내면 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레나토를 본국인 영국으로 발령내면서 마지막으로 아멜리아를 한 번만 더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면무도회를 강행하게 되고, 가면을 쓰고 나타난 레나토에 의해 암살을 당하게 된다. 마지막 죽어가는 장면에서 리카르도는 아멜리아를 진정 사랑했지만 육체적 관계는 없는 순결한 사이였음을 밝히면서 자기를 죽인 레나토를 사면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숨을 거두고 만다. 뒤늦게 친구를 오해한 사실을 알게 된 레나토는 자기의 실수를 자책하는 가운데 리카르도의 덕망을 칭송하며 명복을 비는 장중한 노래가 울려퍼지며 가면오페라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주요 아리아인 “Eri tu che maccjiave quel'anima - 그대가 나의 명예를 더럽혔도다"가 울려 퍼질 때면 가만히 눈을 감게 된다.   


11월의 마지막 날, 대한민국도 한참 가면무도회가 진행 중이다. 한쪽은 무능하다는 좌파정권의 연장인 통합신당의 정동영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며 공격을 가하고, 다른 한쪽은 부패한 이명박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공격이 심하다. 그 틈새에서 진정한 보수라고 주장하는 이회창 무소속 대통령 후보와 진짜 경제를 일구겠다는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함께 어우러져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모두들 자기의 잘못과 흠을 감춘 채 국민에게 보여지는 얼굴에는 자기들만의 가면을 쓰고 대한민국 곳곳을 활보 중이다. 가면무도회의 전체 주인공들의 하나하나를 관객이 다 알고 있듯이 정치판에 출연중인 가면무도회의 배역들을 국민 모두는 다 알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연기에 심취하여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 가면무도회처럼 점쟁이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것까지 닮았으니 이를 어쩌랴.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무능한 쪽을 선택할 것인지, 부패한 쪽을 선택한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풍자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무능에 지친 사람들은 부패해도 좋으니 잘 먹고 잘 살게만 해달라는 심정으로 부패의 혐의를 더 많이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무도회의 멤버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줄 듯하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대표는 이러한 정국 현상에 대하여 노망이 든 민심이라고 한탄하지만, 반대쪽에서는 민심은 올바른 것이어서 그렇게 말한 자가 노망이 든 것이라고 반격을 가한다. 무능과 부패의 패악 중 어느 쪽이 더 심할까? 무능은 수동적인 것이지만 부패는 능동적인 것이다. 무능은 대체될 수 있지만 부패는 대체되지 않는다. 수동의 피해는 적지만 부패의 패악은 치유될 수 없을 만큼 크다. 능동의 부패는 새로운 부패구조를 공고화하기 때문이다. 무능이야 유능한 지도자가 나오면 고칠 수 있지만, 부패의 해악은 도려낼 수 없게 되고, 그들이 만든 쇠사슬은 더욱 단단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선뜻 부패 아닌 무능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 못하겠으니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하기야 세상이 온통 성형수술천국으로 변하는 바람에 옥황상제가 진노한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시중 우스개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가면이 넘쳐나고 있으니 외형과 내실이 함께 가면무도회의 연극진행 중임을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보고 당연히 해야 할 것인가? 저승사자가 데려 오기로 예정된 사람이 하도 성형수술을 많이 받는 바람에 다른 사람 얼굴로 바뀌어 잘못 데려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중 우스개로 부모도 자식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열연했던 존 트라볼타와 한국인 처를 둔 것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니콜라스 케이지”가 열연했던 “Face/Off”도 FBI 수사관과 범죄인의 얼굴을 맞바꿔 범죄를 소탕한다는 내용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도지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국영화 “신데렐라”는 성형의인 주인공이 불에 타 죽은 딸과 닮은 아이를 데려와 친딸처럼 키우면서 딸의 모습과 비슷한 아이들을 성형수술이라는 미명하에 그들의 얼굴 일부를 옮겨 키우는 딸의 얼굴을 친딸의 얼굴처럼 성형한 후 다른 아이들 네 명을 살해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가면이 아름다움으로 평가받는 세상, 진면목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환호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다.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성형을 통해, 위장을 통해, 거짓을 통해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이 정당화되어가고 있다. 1966년에 미남배우 록 허드슨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Seconds”라는 영화도 죽음이 얼마 남지 않는 주인공이 수술을 통해 다시 태어나 두 번째 삶을 살아간다는 스토리이다. “모질라”의 윈도 스나이더 보안전략 사장은 “10년 안에 가상세계가 현실세계를 대체할 것이다”라면서 3D 버추얼(가상현실)월드가 결국 웹 브라우저마저 바꿔 놓게 되고, Second Life의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진실보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 가면이 진면목보다 더 평가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거짓과 가면에 익숙하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 가면의 노예가 되어 무능보다는 부패를 선택하는데 더 감각이 무디어져 있는 것도 세태이다. 특히 성형문화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의 정신적 성형의 관대함이 특징 중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얼굴도 뜯어고치는데 마음도 진실과 다르게 뜯어고치는 것이 무에 그리 힘드는 일이냐고 반문한다. 위장취업으로, 위장전입으로, 위장분식회계로, 위장학위취득으로 좀 위장한들 무어 그리 문제냐고 되묻는다.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도끼눈을 치켜뜬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희망을 갖는다. 가면무도회에서 레나토가 바리톤의 장중한 목소리로 절규하듯 부르는 “그대가 나의 명예를 더럽혔도다”가 들려오고 있음에. 명예를 존중하고, 진실을 존중하며, 가면이 아닌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아가 있을 것임을 믿는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야 우리의 내일이 덜 비참해질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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