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의뢰인 비밀 유지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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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의뢰인 비밀 유지 의무
  • 윤배경
  • 승인 2007.11.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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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배경 변호사·법무법인 율현

 

몇 년전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혼사건을 수임한 적이 있었다.


의뢰인은 당시 결혼한 지 6년쯤 되었고 4살된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의뢰인은 미혼의 여성과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로부터 간통죄로 고소를 당하고 이혼 소송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이혼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상대방이 제기한 위자료와 재산분할 액수를 다소나마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런데, 의뢰인은 상대방이 제기한 4살된 아들에 대한 양육권은 빼앗길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통상적으로 미취학 아동의 양육권은 엄마가 행사하는 것이 원칙인 까닭에 아내에게 양육권을 넘기는 편이 옳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였으나, 막무가내였다. 결국 적반하장격이었으나, 이쪽도 반소를 제기하면서 이혼,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비청구 등을 하였다.

 
이 사건은 1년 이상을 끌면서 나의 정신과 육체의 진을 거의 소진하다시피 했다. 그는 아침과 저녁,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를 찾았고, 수시로 의견을 물었다. 준비서면의 문구 하나 하나를 따지고, 제출될 증거자료 하나 하나를 살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의뢰인과 수시로 접하게 되면서 그의 성격, 사물을 대하는 태도, 결혼 전후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등을 알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증오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가정 밖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여성편력에 대하여도 인지하게 되었다. 그는 한 마디로 인간적인 매력이 '꽝'인 사람이었다. 사건이 끝난 이후에도 그는 내가 제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했다고 불평(항의)하더니 변호사 보수비도 떼어 먹어버렸다. 물론 나도 그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 의뢰인이 나의 주변을 떠났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 의뢰인의 사생활을 누군가에게 말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의 행적이 흥미진진한 것도 까닭이 되겠지만 그것이 나를 괴롭혔던 한 사람에 대한 복수심일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난 그 일을 결코 입 밖에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의뢰인의 비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변호사법이나 변호사윤리강령이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를 믿고 나에게 자신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던 의뢰인의 신뢰를 배반하면 아니 된다는 도덕적인 부채감이 더 나를 짓누른다. 비록 그가 나를 그토록 들들 볶고서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수임료를 떼어 먹었다는 것이 괘씸할 망정 한 때나마 나를 자신의 전처만큼, 자신의 애인만큼 믿어 주었다는 그 신뢰는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최근 삼성그룹의 법무팀장으로 있다가 퇴직한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이 몸 담아 왔던 삼성의 비자금 및 그 용처 등을 폭로함으로써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김 변호사를 대변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물론이고 일부 시민 단체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위와 같은 뒤늦은 폭로를 거대 재벌에 대한 의거로 규정하는 한편, 그의 용기를 칭찬해 마지 않는다. 공익을 위하여 삼성그룹의 비행을 폭로한 것이라는 김 변호사의 변명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평화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염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하루 하루 '법으로 밥 세 끼 먹고 살기에 급급한' 변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보건대, 김 변호사의 이번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특수부 검사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응당 삼성이란 대그룹의 존재와 실체를 잘 알고 있었을 법한 그가 스스로 삼성그룹의 법무 팀에 들어가 일을 하였다면 본인이 이미 어떤 일을 하리라는 것쯤은 각오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런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왜 진작에 사표를 쓰지 않았단 말인가? 삼성 법무팀을 나올 때도 전별금조로 얼마 정도는 받아 나왔음직 하고 그 후에도 몇 년간 삼성그룹의 계열사를 자문하기까지 하였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왜 이제 와서 그런 폭로를 하기에 이르렀을까?


자신을 섭섭하게 한 삼성그룹에 대한 복수심인가, 대선정국을 이용한 공명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고독한 결단의 발로란 말인가? 한 때 삼성그룹 이너서클(INNER CIRCLE)의 한 멤버로서 보기 드물게 출세하여 젊은 변호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 변호사의 최근 행보가 변호사 업계 전체를 위기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삭풍의 계절에 광야에 내몰린 신출내기 변호사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지 않는 것인지, 실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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