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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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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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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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칼레해협, 장꼭토의 귀
  
유로터널을 통해 기차를 타고 영국으로 향한다. 우리에게 도버해협이라고 잘 알려진 영불해협을 프랑스에서는 칼레해협이라고 부른다. 마치 우리의 동해를 일본이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처럼. 유로터널은 프랑스의 칼레(Calais)에서 영국의 Folkestone까지 49.9km를 관통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channel tunnel이다. 영불관계는 한일관계처럼 오래된 앙숙이자 친구인 복합적 감정이 뒤엉켜있는 사이라고 할 수도 있다.


로댕의 대표작 중 칼레의 시민이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도 오랫동안 전시된 적이 있는 칼레의 시민은 칼레시청 앞에 전시되어 있다. 칼레의 시민상은 6명의 칼레 시민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로 고통스럽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품이다. 1347년 영불사이에 있었던 100년 전쟁 초기에 영국 에드워드 3세의 공격 앞에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11개월 가까이 항쟁을 하지만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고, 칼레 시민 모두를 살려준다는 대가로 여섯 명의 칼레 시민의 목을 요구한 영국왕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일곱 명의 시민이 나서게 되는데, 그 중 한 명을 빼야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영국왕에게 끌려가야 할 시간에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을 빼자고 합의하고 헤어진 후 다음날 아침이 되자 여섯 명의 시민은 그대로 모였으나 나머지 한 명, 가장 먼저 나섰다가 다음날 아침에 만나자고 제안한 생 피에르가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그를 비겁한 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나머지 여섯 명의 용기가 흔들릴 것을 채찍질하듯 이미 자결함으로써 그의 의지를 나타낸 생 피에르의 시신을 발견하고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감동한 영국왕비는 에드워드 3세에게 그들을 살려줄 것을 간청하고, 결국 칼레의 여섯 명의 용기 있는 시민들에 의해 칼레의 시민 모두는 전쟁의 패배에서 빚어진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데, 5백여년의 세월이 지난 뒤 이들을 기리기 위해 로댕이 10여년을 고심 끝에 완성한 작품이 조각품, 칼레의 시민이다. 칼레의 시민은 그 날의 슬픔을 잊지 않고 있고, 그 날의 치욕을 잊지 않고 있다. 영국인들이 도버해협이라고 부르는 그 해협을 프랑스에서 칼레해협이라고 고집하는 것 또한 그 날의 슬픈 역사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로터널-channel tunnel을 뚫고 현재 유로열차를 운행하고 있는 회사이름이다-이 경영적자로 인해 파산위기에 몰렸다가 지난해 11월 40여 억 원의 유로 달러를 금융기관으로부터 탕감 받고 기사회생하였다는 소식이다. 영불을 잇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영국이 강하면 프랑스를 침략하고, 프랑스가 강하면 영국이 피해를 보는, 앙숙이자 친구 사이인 영불은 도버해협-칼레해협을 두고 서로 도전하고 도전받고 있다. 1994년도에 위 터널이 개통되자, 영국은 비행기나 배로만 갈 수 있었던 섬나라에서 차나 기차로 갈 수 있는 육지나라로 변하였고, 유로터널이 그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잘 될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운영하는 회사는 10여년 만에 40억 유로 달러(우리 돈으로 5조원이 넘는다)를 탕감 받지 않고서는 회사를 운영해 나갈 수 없을 만큼 적자에 허덕인 사실을 보면서, 관계개선을 위한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남북 분단으로 우리 남쪽은 섬나라 아닌 섬나라가 된지 6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섬나라인 영국조차도 터널을 뚫어 육지로의 소통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육로가 막히고 하늘길이 막힌 채 대륙으로의 직행이 불가능한 불통의 세계에 살고 있다. 유로터널이 적자에 허덕이며 파산의 껄떡고개를 넘듯, 남북터널이 뚫리게 되면 얼마나 많은 적자와 껄떡고개가 도사리고 있을지 한반도를 벗어나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유럽문화는 유화와 석상, 브론디의 조각상으로 대변할 수 있다. 물론 수많은 음악의 고전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어디를 가도 유화가 전시되어 있고, 석상과 청동조각상이 넘쳐난다. 이는 초가지붕과 목조건물로 상징되는 한국 등 동양 문화에 비해 그만큼 보존의 역사가 길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문화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옛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우리네 문화에 비추어 부러운 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손쉽게 옛것을 버리는 것, 온고지신의 미덕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현세태 속에서 이번 유럽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예술의 전당으로 소풍 나왔던 칼레의 시민상에서 받았던 인상보다 직접 현지에서 접한 칼레의 시민상은 더욱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고, 칼레해협을 사이에 둔 영불의 갈등과 화해, 그 기회비용의 상호분담을 지켜보며, 우리의 남북이, 동서가 화합하는 터널공사를, 기회비용을 공동으로 지는 내부적 화해상생의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창시절,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읽고, 헤르만헷세의 데미안을 읽고, 까뮈의 이방인을 읽으면서 느꼈던 희열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듣고, 베토벤의 비창을 들으면서 느꼈던 그 환희들, 그 유럽의 문화를 추월할 수 있는 우리의 예술과 지적 문화가 하루 속히 갖추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문학의 아름다운 서정과 철학과 감성들이 영어로, 불어로, 독어로 번역되어 서방세계에 보다 많이 전파되기를 간구한다. 우리의 시와 음악이 한류가 되어 아시아권을 뛰어넘어 세계의 역사 앞에 우뚝 서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러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져야겠고, 그러한 문화에 젖어드는 것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내고 다투는 어리석은 상잔의 역사가 스러지기를 바래본다. 제발 우리의 정치가 신문의 전면에서 사라지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영불해협을 관통하는 터널처럼 소통의 터널이 뚫리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내 귀를 활짝 열고 가만히 시 한편을 읊조려 본다. “내 귀는 소라껍질/바다소리를 그리워한다.”(장 꼭또의 “귀” 전문). 귀를 열고 눈을 열고 마음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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