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월에
상태바
[칼럼] 4월에
  • 최용성
  • 승인 2024.04.05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4월은 신록(新綠)이 새롭게 펼쳐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찬란한 5월을 준비하는 설렘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복과 희망을 노래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제주 4·3 사건)이자 찬란한 승리의 달이기도 했다.

잔인한 비극과 승리의 기억을 함께 담고 있는 사건이 4·19 혁명이다. 3월 1일과 함께 대한민국헌법 전문이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며 특별히 기억하는, 중요한 날이다.

여기서 불의를 저지른 주체는 이승만 정권이다. 이승만을 찬양하거나 좋게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에 정부조차 나서서 기념관 건립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이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4·19 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안다면 이럴 수는 없다.

제헌헌법에서 대통령은 임기 4년이고, 재선에 의하여 1차 중임할 수 있었다(제55조). 이승만은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1952년 발췌개헌으로 도입된 직선제로 대통령에 중임되었으니, 당시 헌법에 따르면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었다.

장기(종신)집권을 꿈꾼 이승만은 “이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이승만]에 대하여는 제55조 제1항 단서의 제한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부칙)는 기괴한 규정을 둔 개헌안을 1954년 11월 18일 국회에 상정하였다.

개헌안이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203명의 3분의 2 이상, 즉 135.333…이상이 찬성해야 하므로 136명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11월 27일 비밀투표 결과 135명의 찬성표가 나왔고, 국회부의장은 당연히 부결을 선포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이승만과 자유당은 203의 수학적 2/3는 135.333⋯인데 0.333⋯은 0.5 미만으로 수학의 사사오입(四捨五入)의 원칙에 따라 소수점 이하를 버리면 135명의 찬성표를 얻은 것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부결을 뒤집고 가결시켰다. 이로써 이승만의 종신집권의 길이 열렸고 자유민주주의는 부정되었다.

1960년 3월 15일 대통령,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당시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한 2인자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하여 부정선거를 획책한다. 내무부 비밀지시를 각 기관장에게 내려 4할 사전투표(당시 사전투표 제도가 없었다),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 활용, 야당참관인 축출 등을 통하여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을 85%까지 올리라는 공작을 하였다.

1960년 3월 15일 마산시의 민주당 간부들은 경찰의 제지를 뚫고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40% 사전투표와 3인조 공개투표를 비롯한 자유당의 부정선거 현장을 확인하여 이를 알렸고 마산을 중심으로 시위가 번져나갔다.

이 마산 3·15 시위 현장에는 남원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와 있던 김주열(당시 만 15세)이 있었다. 김주열은 그날 이후 행방불명이 되었고 가족들은 애타게 그를 찾았다.

그러던 중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부터 뒤통수까지 알루미늄제 최루탄이 박혀 있는 상태로 김주열의 시신이 떠오른다.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생긴 비극을 은폐하기 위하여 김주열을 수장한 것.

분노한 시민들이 가세하여 시위는 전국적으로 더 확산되었고, 4월 18일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던 고려대학생들을 자유당 정치깡패들이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분한 시민들이 총궐기하여 4월 19일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의 발포로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라는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다. 그러나 시위는 사그라질 기미가 없었고 분노한 민심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였지만, 계엄사령관 송요찬은 선제 발포를 금지하였고 군이 본분을 지킨 결과 이승만은 국민을 강제로 억압할 최후 수단을 잃었다. 중단없는 국민의 저항에 결국 이승만은 4월 26일 하야한다.

남산과 피고다 공원에 세워져 있던 이승만의 동상은―사실이다. 동상이 세워진 권력자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를까. 굳이 답하지 마시라―시민들의 손으로 끌어내렸다.

국민의 한 표 한 표가 귀하게 존중받는 세상은 이렇게 불의에 저항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올 수 있었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