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70세 인턴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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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70세 인턴 벤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4.02.02 11: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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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최근 기사를 쓰다가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에 봤던 영화라 사실 대략적인 설정 정도만 기억이 나는 그 영화의 제목은 ‘인턴’이다.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 규모로 사업을 키운 열정과 능력을 겸비한 30대 여성 CEO 줄스와 그의 개인 인턴 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로 그 인턴이 세간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인턴 벤의 나이는 70세. 세련되고 신선한 감각,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요구되는 의류 업체의 인재상에도 맞지 않고 통상 사회 초년생들이 경험을 쌓기 위해 하는 인턴이라는 직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 나이 어린 동료들에게도 불편한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됐다.

줄스도 처음에는 그의 활약을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벤은 기업 차원의 사회 공헌이라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그런데 벤은 연륜에서 비롯된 지혜와 역량으로 직원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동료가 되었고, 줄스에게도 단순한 부하 직원을 넘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인생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소중한 친구가 됐다.

고령자의 취업과 활약,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일본의 ‘요코비키셔터’는 직원의 절반이 넘는 인원이 60~80대의 고령자로 구성돼 있다. 요코비키셔터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 지난해 11월 기준 최고령 직원은 81세이며 몇 년 전에는 95세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현 최고령 직원은 원자력 업체에서 근무하다 74세에 퇴직한 후 76세에 재취업해 5년을 일했다. 요코비키셔터는 고령자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직무, 근로시간 등에 따라 급여를 조정한다. 정년 이후에도 역량에 따라 승급을 하거나 급여가 늘기도 한다.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다시 영화 인턴으로 돌아가자면 한 회사의 임원으로 재직했던 벤은 퇴직 후에 오히려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요가, 요리, 화초 재배, 중국어도 배우러 다녔고 그동안 쌓인 마일리지로 여행도 즐겼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즐거운 여가 생활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있었다. 벤은 사람들과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량과 경험을 나누고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영화 인턴을 떠올린 계기가 된 기사는 최근 5급 공채 지원자의 연령대 변화를 다룬 것이었다. 올해까지 5년간의 연령대 현황을 살펴보면 20대는 줄고 있는 반면 30대 이상, 특히 40, 50대 이상 지원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5급 외에 7, 9급 공채 지원자, 합격자의 연령대 통계, 40~50대 수험생의 공무원시험 준비에 대한 여러 의견, 합격 후 어떤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등에 관한 기사 등 여러 자료를 찾아 읽어봤다.

현재는 제도 변화 등으로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공무원시험의 유인 요소가 되는 연금도 연령대가 높은 수험생들에게는 그다지 메리트가 없다. 급여 자체도 사기업에 미치지 못하니 단순히 ‘돈’만을 이유로 40~50대가 합격까지 몇 년씩 걸릴 수도 있고 그나마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공무원시험에 도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니, 돈을 버는 게 주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공무원시험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게 여러 자료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그것은 바로 ‘가능성’. 최저, 정년 외에는 나이, 학력, 학벌, 경력 제한 없이 현재의 역량을 증명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도전을 결심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폐쇄적이다. 도전 자체에 제한이 많다. 사기업은 물론 전문자격사시험에서도 관련 학점 이수를 요구하는 등 일정 수준의 학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중에서도 로스쿨은 대학원이라는 특성상 명백한 학력 제한이 존재하고 사실상 학벌, 나이 등도 당락에 영향을 준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로스쿨이 풍부한 사회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법조인으로 양성한다는 취지로 탄생했지만 학점, 어학 성적 등 당락을 좌우하는 주요 입시 전형 요소들이 사회 경험이나 전문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70세의 인턴 벤에게 가졌던 선입견은 틀렸다. 어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학벌, 학력, 나이만으로 가늠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공무원시험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보다 열린 시선으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개방된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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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4-02-09 09:25:28
이 지구상에 이런 폐쇄적 법률가 양성제도를 가진 나라가 있나요? 어찌된게 미국변호사 응시자격 갖추는게 더 쉽더군요ㅋㅋㅋㅋㅋ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예요??
이 상황이 납득이 가면 약간 정신 나간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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